날잡고 집 정리, 간만의 대청소가 가져온 뜻밖의 효과

이유미 2024. 1. 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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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까지 평온... 내면의 공간도 함께 정리해주는 정리 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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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기자]

 바닥을 드러낸 아일랜드 식탁. 그전엔 각종 잡동사니로 가득했던 곳
ⓒ 이유미
 
나는 정리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내 손길이 닿는 서랍장 속 물건들은 순식간에 하나로 뒤엉켜버린달까. 그런 내 성격으로 인해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에 물러나있지만 학창 시절 내 별명은 덜렁이였다. 

별명에 걸맞게 책상은 늘 교과서와 문제집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고 먹다 남은 간식쓰레기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기 일쑤였다. 그 습관은 학교로까지 확장되어 주인 잘못 만난 내 책상 서랍 속은 늘 삐져나온 책들, 구석에 처박힌 학습지들로 몸살을 앓았다. 

게다가 학창 시절의 엄마는 늘 일주일에 서너 번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내 뒤꽁무니에 대고 "유미야, 또 놓고 가버렸다 얼른 이거 가지고 가라" 말하는 게 일상이었다. 정리정돈이 안 되는 습관으로 인한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 지금까지도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하는 에피소드는 바로 대학 면접고사날 있었던 일이다. 

신분증을 집에 놓고 왔다는 딸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온 엄마아빠가 급히 동사무소로 뛰어들어가 팩스로 신분증 사본을 수험장으로 보내온 일. 아마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우리 엄마아빠의 심장는 골백번 바깥여행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숱한 고비를 아슬하게 넘기며 37년을 살아오면서도 큰 경각심이 없던 나는 , 여전히 정리정돈엔 소질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두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하게 된 지난해에는 아예 손을 놓게 되었다. 

집 현관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아일랜드 식탁은 아이들의 학습지, 가정통신문, 진단서 약봉투 등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식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내 방 옷장은 아무렇게나 걸린 옷들과 바닥에 마구 놓아져 한데 뒤엉켜 하나의 옷산을 만들었으며, 냉장고는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과 먹다 남은 반찬들이 뒤죽박죽 자리를 차지했고, 팬트리는 잡동사니로 가득 찬 하나의 잡화점으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유독 일에 지친 날의 퇴근길엔 내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집이 아닌 동네 카페가 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매일 하루를 보내던 내게 최근 정리를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생겼다. 

이사가 코 앞...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바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이사.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가장 정리가 시급한 곳부터 먼저 정리를 하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부엌과 거실 사이의 아일랜드 식탁. 4년 전, 이사올 때만 해도 이 식탁 위에 꽃병을 놓고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겠노라 생각하며 빙그레 웃음 짓던 그곳, 불현듯 그때로 다시 돌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뭉게구름처럼 솟아올랐다. 

정리에 돌입하기 전에 얼마 전 우연히 본 정리정돈 책에서 본 대로 모든 물건 바닥에 늘어놓기-분류하기-정돈하기 법칙을 적용키로 했다. 먼저 아일랜드 식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바닥에 늘어놓았다. 그리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정리정돈이 필요했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그리고 남은 물건들. 문구류, 연고, 지금 복용 중인 약들을 수납함에 용도별로 가지런히 놓았다. 유치원에서 받아온 아이의 사진이 들어간 작품들은 파일에 차곡차곡 넣어 정리하고, 사용 빈도가 낮은 물건들은 아래의 수납장에 정리해 넣었다. 

그렇게 내 손길을 거친 지 십여분이 지나자 지난 4년간 형체를 숨기고 있던 아일랜드 식탁이 뽀얀 낯빛을 드러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자 복잡하게 얽혀 있던 내 속도 일순 개운해짐을 느꼈다. 

다음타자로 내 시야에 든 곳은 4층짜리 부엌 팬트리장. 각종 생필품들이 숨바꼭질을 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그곳. 얼마 전 남편이 팬트리에서 치약을 한참을 찾다 한숨을 내쉬며 급히 편의점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 사온 일을 떠올리며 팔을 걷어붙이고 1층부터 4층까지 물건을 꺼내어 바닥에 다 늘어놓았다. 불필요한 물건은 제거 후 남은 물건을 품목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욕실용품, 주방용품, 영양제, 아이들 관련 용품으로 나누고 흰색 수납함에 각각 넣어 자주 쓰는 물건은 2,3층에, 가끔 쓰는 물건은 가장 위층인 4층과 1층에 가지런히 놓고 정리했다. 

정리를 하면서 각종 새 칫솔, 비누, 손세정제가 뭉텅이로 발견되는 걸 보며 "미리 정리를 했더라면 치킨 두 마리 값은 벌었을 텐데"라며 탄식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정리 후 마트처럼 품목별로 정갈히 놓인 4층짜리 팬트리를 보니 비좁은 공간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을 물건들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늘 여유 없이 꽉 차 있던 내 마음에도 빈 공간이 들어찬 순간이었다. 

그다음으로 내가 정리의 손길을 내민 곳은 바로 냉장고. 유통기간이 한참 지난 우유, 음료수, 각종 가공식품, 며칠째 방치된 반찬들은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자주 꺼내먹는 반찬은 손이 잘 가는 곳에, 고추장 간장 다진 마늘 된장 등 자주 사용하는 양념통은 냉장고 수납함에, 김치나 무거운 물건은 가장 아래에 두었다. 빨리 소비해야 할 야채들은 야채칸 맨 앞에 차례로 놓았다. 

저녁을 준비하며 냉장고 문을 열다 식재료나 양념장을 바로 찾지 못해 죄다 헤집느라 저녁시간이 늦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야채나 고기가 소비기한이 지나 급히 배달어플을 켜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적재적소에 배치된 그것들을 바로 찾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잠깐) 샘솟았다. 

37년 간 나도 미처 몰랐던 이 소질

다음은 늘 하다만 숙제같이 남겨놓은 옷장. 출근시간만 되면 아까운 아침시간을 10분 이상 잡아먹는 곳이다. 옷장의 옷을 제때 찾지 못해 속에서 화가 솟구치는 날들이 많았고, 한데 엉긴 옷들이 만든 '옷산'을 한숨 쉬며 바라보다 늘 입을 옷이 없다며 불평하며 한철 입을 값싼 옷을 사들이고 다시 옷산의 부피만 늘려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아침마다 옷과의 전쟁으로 둘째 아이 머리도 제대로 못 묶여 나간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나는 결단력을 발휘해 옷정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옷장의 옷을 바닥에 죽 늘어놓았다. 옷이 이렇게나 많았나 하는 생각에 갑작스레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 충격이 일었다. 

그 충격을 잠시 뒤로 하고 우선 유행이 다시 돌아오겠지 하며 늘 내 레이더망에서 벗어난 몇 년 묵은 옷들을 과감히 버렸다. 철 지난 옷들은 옷걸이에 걸어 다른 방 붙박이장에 정리해서 넣었다. 다음엔 옷을 용도별로 정리했다. 외투, 상의, 하의, 원피스 순으로 정리를 하고 얼마 전 이케아에서 산 나무옷걸이에 차곡차곡 걸었다.

상의는 색깔 별로 정리해서 나란히 걸었고 하의 중 스커트는 길이별로 집게에 걸었다. 청바지는 돌돌 말아 아래쪽 서랍에 세로로 넣었다. 그렇게 작업을 한 결과 보기만 해도 가슴이 턱 막혔던 옷장이 어느새 얼마 전 한남동에서 본 한 옷가게의 쇼룸처럼 근사해져 있었다. 

옷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더 이상 바쁜 아침 시간에 옷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새 옷을 사는 데 뭉텅이로 나가는 돈도 아끼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옷장을 열며 더 이상 한숨 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정리정돈이 내 손끝을 거치며 약 세시간여 후 대망의 막을 내렸다. 세 시간가량 정리를 하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바로 정리가 안 된 공간들이 그간의 내 마음과 꼭 닮아있었다는 점이었다. 

수납장마다 마구잡이로 늘어져있는 잡동사니들과 옷들을 너른 바닥에 널어놓고 불필요한 것은 제거하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용도에 맞게 분류해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내 마음속을 가득 채운 잡동사니 같은 잡념들도 함께 밖으로 내어 내게 유해한 것들은 제거하고 내게 무해한,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며 바쁘다고 미뤄둔 복잡한 내 마음도 함께 정리해 전에 비해 훨씬 가뿐해졌다.

부단한 정리의 과정을 통해 내 마음 정리도 수확이지만 뜻밖의 수확 하나가 있다. 바로 나는 정리정돈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 나도 모르게 37년간 내 안 깊숙이 숨어있던 소질이 정리정돈을 하며 같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비록 37년 만에 발견된 안타까운 소질이지만, 이제 더 늦지 않게 정리정돈을 소질을 꾸준히 발휘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이라는 수납장에 매일같이 생겨나는 잡동사니를 안고 있는 대신, 부단히 버리고 비워가며 내게 꼭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만 남기는 그런 쾌적한 삶을 위해.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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