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성과급 두고 뒷말 무성…OPI가 뭐길래 [경영전략노트]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4. 1.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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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성과급 두고 뒷말 무성

“삼성전자, 그중에서도 대표 사업부인 반도체에 근무하며 성과급이 ‘제로’라니 당황스럽습니다.” (삼성전자 DS 부문 직원)

삼성그룹의 직원 성과급을 좌우하는 OPI(Overall Performance Incen tive·초과이익성과급) 예상 지급 범위가 공개되며 뒷말이 무성하다. 삼성전자와 타 계열사 간, 또 삼성전자 내부 사업부별로 성과급 기준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사내망을 통해 사업부별 OPI 예상 지급 기준을 공지했다. 삼성전자의 대표 사업부인 DS(반도체) 부문은 메모리, 파운드리, 시스템LSI 모두 OPI 성과급이 0%로 정해졌다. 한 해 연봉의 절반 수준에 달했던 OPI를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삼성그룹 직원 성과급은 OPI와 TAI (Target Achievement Incentive·목표달성장려금)가 양대축이다. OPI는 매년 1월 삼성 주요 계열사별로 전년 경제적 부가가치(EVA)의 20%에 해당하는 재원을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는 초과이익을 배분하는 PS(Profit Sharing)와 비슷하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었으니 직원과 공유한다는 개념이다.

TAI는 소속 사업 부문과 전체 사업부 평가를 합쳐 최대 월 기본급의 100%를 반기 말에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이다. 넓게 보면 PI(Productivity Incentive)로 생산성 격려금이다.

삼성전자 효자 사업이었던 반도체 부문 직원은 이 제도가 생긴 이래 줄곧 전체 사업부 가운데 최고 수준의 OPI와 TAI를 받아왔다. 예를 들어 연봉 6000만원 직원은 연말 TAI 300만원, 연초 OPI 3000만원 등 두둑한 성과급을 받았다. 앞서 2018년 메모리 초호황 직후 이듬해 DS사업부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 줄었을 때도 OPI는 29%를 받았다. DS사업부 직원은 2022년 실적을 기준으로 하는 2023년 OPI에서 상한선인 50%까지 지급받은 바 있다.

적자인 반도체, OPI 제로 알겠는데

‘대박 낸’ 삼성전기 OPI는 왜 낮나 ‘불만’

그러나 2023년 경영 실적을 토대로 한 성과급 분위기는 180도 돌아섰다. 반도체 업황 침체로 삼성전자 DS사업부 적자가 확실해서다. DS사업부는 지난해 1~3분기 누적으로 12조7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4분기도 조 단위 손실이 예상돼 연간 실적은 2022년 대비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연 2회 지급되는 또 다른 성과급제도인 TAI도 메모리 12.5%, 파운드리·시스템LSI 0% 등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축소했다.

삼성그룹은 강력한 성과급제로 정평이 났다. 우수 인재 채용을 목적으로 글로벌 기업 대비로 따져도 꽤 괜찮은 성과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송재용·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2013년 펴낸 저서 ‘삼성웨이’에서 “삼성이 2000년 미국 HP에서 종업원 PS를 벤치마킹했는데, 당시 HP의 지급 상한선이 최대 연봉의 20%였다. 삼성은 파격적으로 50%로 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계열사나 사업부 단위로 지급하는 집단성과급은 해당 조직 차원의 선택과 집중을 유도하는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기업이 성과급을 주지 않는다고 불법은 아니다. 성과급은 노동관계법상 규정된 금품이 아니다. 즉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지급 대상, 지급 시기, 지급 방법, 지급 금액 등을 정할 수 있다. 법으로 정하거나 정부가 권고하는 수준도 없다. 삼성전자 DS사업부 역시 이익이 나지 않아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뜻밖의 논란이 터졌다. 그룹 내 ‘형님’인 삼성전자를 우선시하는 분위기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예를 들어 삼성전기는 이번에 OPI 범위를 1~2%로 공지받았다. 2022년 성과에 따라 지난해 초 받은 18%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이 때문에 내부에서는 ‘1퍼 전기’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 직원은 “2017년 영업이익이 3100억원이었을 때도 OPI가 8%였는데, 2023년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5291억원인데도 1%로 책정했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전기 내부에서는 매출 30%가 넘는 ‘고객’ DS 부문이 OPI 0%로 성과급을 단 한 푼도 못 받자 ‘동생’인 삼성전기가 눈치를 보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 내의 다른 사업부에서도 말이 많다. 네트워크, 의료기기, 생활가전 등은 10~12%로 OPI 범위가 공지됐다. 이들 부서는 삼성전자가 신사업으로 키우는 중이다. 사업 초기에는 이익이 나기 어려운데도 굳이 OPI로 따져 상대적으로 낮은 성과급을 책정한다는 게 불만의 골자다.

OPI 예상 지급 범위가 높아도 ‘눈치 보기’는 여전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패널 수요 상승에 따라 3분기에만 1조9400억원의 영업 실적을 내는 등 최고 실적을 거뒀다. OPI 비중도 역대 최대치인 49%로 공지됐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삼성전자를 의식해 OPI 비율을 최대치인 50%까지는 지급하지 않고 40% 후반으로 맞췄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른바 ‘삼성전자와 삼성후자(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극명한 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사내망을 통해 사업부별 OPI 예상 지급 기준을 공지했다. 삼성전자의 대표 사업부인 DS(반도체) 부문은 메모리, 파운드리, 시스템LSI 모두 OPI 성과급이 0%로 정해졌다. (매경DB)
투명한 기준 공개 요구는 여전

성과급제가 동기 유발에 기여

삼성그룹 OPI를 놓고 시끄러운 이유를 정보의 불투명성에서 찾기도 한다. OPI는 영업이익을 토대로 하되 비용과 세금 등을 뺀, 순전히 임직원 노동 활동으로 발생한 초과이익을 따진다. 영업이익의 절대 숫자가 커져도 비용을 많이 썼다면 EVA가 낮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기도 직원들이 말하는 2017년(3100억원)의 영업이익보다 2023년(6000억원대 예상)이 더 높다고 하더라도 초과이익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EVA는 경영 전략상 비밀에 가까워 기업이 명쾌하게 공개하기 어렵다. 직원이 EVA의 세부적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다 보니 불만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는 해석이 나온다.

성과에 따른 보상을 해줄 수 없는 경우, ‘위로금’ 형태로 직원 사기를 높이기도 한다. 성과급을 특정 조건을 달성했을 때 지급하기로 사측이 약속한 경우 임금으로 취급된다. 반면 격려금, 위로금, 포상금 등은 지급 의무 없이 은혜적·호의적으로 지급된 금품으로 임금은 아니다. 즉, 위로금은 성과급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SK하이닉스 노조가 최근 회사에 요구한 ‘특별 격려금’이 위로금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한파’로 2023년 8조원 규모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PS가 불투명해지자 회사에 위로금을 요청했다.

성과급제가 직원 업무 동기를 높인다는 연구가 대세지만, 잘못된 성과급은 조직 문화를 해칠 수 있다. 조직원이 단기 성과에 매몰되고, 극단적으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문화가 조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강승훈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오직 목표 달성만을 강조하는 성과급제도는 과정의 정당성을 고려하지 않는 결과 지상주의를 유발할 수 있다”며 “성과급 목표가 되는 진정한 ‘성과’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기간과 지급 방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을터 군산대 경영학과 교수는 성과급 격차를 크게 벌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개인성과급 격차가 구성원의 일에 대한 피로도를 높여 번아웃(burnout)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개인성과급과 집단성과급을 적절히 혼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성원 간 협동과 신뢰를 중시하는 한국 기업의 집단주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2호 (2024.01.10~2024.01.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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