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죽고 달라진 마을 사람들... 가뭄 오자 본색을 드러냈다

김상목 2024. 1. 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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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립세의 사계>

[김상목 기자]

 영화 <립세의 사계> 포스터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반 고흐에서 19세기 폴란드 시골마을 재현으로

<립세의 사계>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들의 태반은 이 작품을 만든 감독들의 전작 <러빙 빈센트>의 기억에서 출발할 테다.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 스릴러 구조로 전개되다 거장에 대한 지극한 헌사로 귀결되는 전작은 무엇보다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통해 고흐의 그림이 흘러넘칠 듯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니 좀 독특하긴 한데 그게 뭐 대수인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단 실제로 보고 나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애니메이션의 주류인 '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수백 명이 달라붙어 일일이 유화를 그려내 프레임으로 돌렸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구현하고자 한다면 수만 개의 원화가 필요한 작업을 그야말로 '저질러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물은 고흐의 작업을 화면에서 무빙 이미지로 보는 듯 진귀한 체험 그 자체가 되었다.

그 결실로 탄생한 <러빙 빈센트>는 일약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스토리 구성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을지 몰라도 전대미문의 이미지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할 수 있구나 하는 그런 경험치를 획득하는 순간이었던 셈이다. 여기에서 살짝 의외성 하나를 들자면, <러빙 빈센트>는 영국과 폴란드 합작 형태로 제작되었지만 그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 다수는 폴란드 애니메이터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에 비해 저렴한 인건비 같은 실용적 조건 때문이었을 테다. 그래서 <러빙 빈센트>는 폴란드 영화라는 인상은 상대적으로 옅었기도 했다.

하지만 표면에 가려져 있던 실체가 마침내 드러나게 된다. 5년의 시간이 지나 폴란드 스태프들은 도원결의하듯 똘똘 뭉쳐 두 번째 장편 도전에 나선다. 이번에는 지독히 '폴란드'적인 내용을 가득 담아서다. <립세의 사계>는 그렇게 우리 앞에 등장했다.

기구한 운명에 매매혼 당하는 주인공의 사연
 
 영화 <립세의 사계>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19세기 중후반의 폴란드 시골마을 '립세', '야그나'는 마을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모를 자랑하는 처녀다. 마치 풍요로운 자연과 대지의 정령처럼 야그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다. 마을의 남자들은 누구나 야그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런 인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질시와 험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은 별반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야그나를 그냥 두지 않는다. 야그나는 찬란히 빛나지만 그의 가족 형편은 넉넉하지 못하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젊은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게 마련이다. 야그나의 엄마는 집안에 이득도 얻을 겸, 딸의 인생역전을 노리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마침 가을 추수와 함께 동네 청년들이 구애를 위해 활발히 돌아다니는 참이라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누가 곱게 키운 딸을 채어가려 시도할지 모르니 말이다. 마을에서 가장 형편이 넉넉한 중년 농부 '보리나'가 최근에 상처하고 홀아비가 되자 마을 촌장이나 유지들과 상의해 비옥한 토지를 받는 대신에 딸 뻘 나이인 야그나와 보리나의 혼인을 추진한다. 야그나는 내켜하지 않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한데 돌발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 난감한 건 야그나 뿐이 아니다. 보리나의 아들 '안테크'는 이미 결혼했지만 그의 마음속엔 야그나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야그나 역시 안테크의 배려나 마음 씀씀이에 호감을 보이던 중이다. 그런데 졸지에 연인의 아빠에게 후처로 가게 된 것이다. 야그나는 가족의 요구에 시달리며 수동적인 태도로 혼인을 기다리지만, 안테크는 그로 인해 보리나와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다.

안테크는 연정과 상속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부친과 갈등을 빚지만 문제는 그 뿐이 아니다. 안테크의 아내 '한카', 그리고 보리나의 딸과 결혼한 사위까지 야그나가 후처로 들어와 (언제 과실이 떨어지나 기다리던) 상속권을 독차지하게 되는 게 불만스럽다. 결혼이란 의식이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재산과 지위가 걸린 사회적 관계로서 간주되는 것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립세 마을에선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작은 사회'는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마침내 보리나와 야그나는 결혼식을 치른다. 팔려온 것처럼 잠자코 있던 야그나도 성대한 혼례와 가난하던 처지에서 벗어나 부농의 본처가 된 변화에 들뜨게 된다. 하지만 연인 안테크는 보리나가 자신의 몫으로 재산을 상속해주지 않고 일꾼처럼 부리기만 하는 데 쌓여있던 분노를 (마치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 주인공처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다. 연인을 빼앗아간 적개심은 덤이다. 결국 부자는 주먹다짐까지 곁들여 크게 충돌하고, 부친은 패륜아를 쫓아내고 만다. 형편 어려운 처가로 들어간 안테크와 한카 가족은 감자와 소금만 남은 궁핍으로 빠져든다. 그런 사건 속에서도 이제 가을이 끝나고 마을은 수확을 마친 후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성탄축일과 연말연시 전통축제가 이어진다. 겉으로는 평온한 립세의 나날이 흘러간다. 하지만 신세 확 고친 걸로 보이는 야그나에 대해 보리나의 다른 가족과 이웃들의 모함은 점점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일이 또 있다. 야그나를 향한 욕망을 참지 못하는 안테크와의 밀회가 이어지는 것이다. 불안한 긴장은 점점 폭발 직전으로 치닫는다. 

여기에 마을 전체가 휘말려드는 일대 사건이 더해진다. 전통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공유자산이던 숲에 대해 지주가 일방적으로 벌채권을 팔아치운 것이다. 주민들은 무력으로 항의할 것을 결의한다. 마을의 유지인 보리나가 대열의 선두에서 지휘한다. 벌목하러 온 일꾼들과 우발적 충돌이 격화된다. 급기야 무기를 들고 유혈극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증명처럼) 안테크는 부친을 구하려다 그만 보리나를 공격하던 자를 해치고 감옥에 갇힌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에 파묻혔지만 해소되지 않은 갈등은 높아져만 간다. 기나긴 겨울이 그렇게 흘러간다.

봄이 왔지만 마을 분위기는 여전히 침울하다. 소송과 항의에서 패배한 바람에 안테크 외에도 많은 주민이 감옥에 갇힌 상태다. 보리나는 그날 이후 병상에 누워 환자 신세다. 안테크의 구명은 물론 보리나의 재산을 노리고 가족 내 암투는 계속 더 치열해져 간다. 하지만 야그나는 재산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위협적 상황을 감당하기도 힘들다. 야그나가 혼란스러울수록 기회를 틈 타 그를 어찌해 보려거나 재산을 노리는 유혹은 더 빈번해져 간다. 봄기운이 만연해져 파종할 때가 되었을 때 보리나는 끝내 세상을 떠난다. (보호막이 되어온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야그나를 둘러싼 마을 내의 암투는 더 가팔라진다.

안테크는 감옥에서 풀려나 돌아오지만 야그나와 둘의 관계는 예전과 같지 않다. 보리나의 유산 상속문제로 원한을 품은 이들과 홀몸이 된 젊은 과부를 함부로 대하는 주민들의 무정함은 더해져만 간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 그리고 여름이 되자 가뭄이 든다. 출구 없는 분노가 팽배해 있던 마을 분위기는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희생양을 찾으려 한다. 여름의 폭염은 마치 제물을 요구하듯 뜨거워져 간다. 급기야 야그나를 향한 공격은 봉인이 풀리고 이제 끝장을 볼 기세로 치닫는다.

왜 페인팅 애니메이션을 도입했는지 증명해내다
 
 영화 <립세의 사계>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러빙 빈센트>의 기억을 간직한 채 후속작업인 <립세의 사계>를 찾은 이들이라면 극한의 경지에 이른 유화 페인팅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일 순위로 기대했을 테다. 그런 기대는 이번 작업에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해줄 게 분명하다. 100여 명의 화가가 4만 점의 원화를 그려내 완성한 시각적 황홀경이 115분 내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전작에서 반 고흐의 화풍을 화면 가득 재현했다면, 이번에는 19세기 폴란드 풍경화와 역사화의 기운이 시작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넘실거린다.

실제로 배우들이 연기하고 동작한 것을 다시 원화로 일일이 그려내는 수고를 감수한 성과는 실로 압도적이다. 그냥 실사로 연기하고 모자란 부분은 소품이나 배경으로 소화하면 될 걸 굳이 이중삼중으로 작업할 필요가 있을까 하던 의구심은 작품을 보고 나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애니메이션 기법으로만 전달 가능한 표현력과 수위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전체관람가 수위로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할 애니메이션을 기대했다면 충격에 빠질지도 모르지만, 실사 화면이었다면 차마 보기 힘들 격렬하고 잔인한 순간들이 적절히 완화되거나 혹은 오히려 증폭시키는 기능을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능수능란하게 구현한다. 해당 작품의 15세 이상 관람연령은 아마 실사 화면이었다면 18세 이상으로 올라갔을 테다. 그만큼 우리가 흔히 애니메이션에 설정하던 수위를 (호러나 고어 장르가 아닌데도) 가뿐히 초과하는 결과물이다.

마치 영화의 태동기에 멜리에스가 선보였던 시도가 문득 떠오른다. <달세계 여행>을 포함해 초창기 흑백 기반으로 촬영된 필름 중에 천연색 컬러화면이 발견되곤 하는 이유다. 그런 초기 특수효과를 위해 거대한 공장 라인에서 수백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색칠을 덧입혀 최초의 컬러 효과를 창조했던 것이다. <립세의 사계>의 경이로운 페인팅들은 그런 시도와 겹쳐지는 유사한 감흥을 불러온다. 목표한 작업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과감히 가용자원을 쏟아낸 도전과 의지 측면에서 더욱 그렇게 연결된다. 그런 수고를 감수한 덕분에 19세기 폴란드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잔혹 군상극은 실사 재연으론 도달할 수 없는 특별한 감각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를 한데 압축한 결과물
 

이 영화에서 '폴란드'는 빼려야 뺄 수 없는 구성요소, 아니 알파이자 오메가 같은 대상이다. 우리가 흔히 유럽에서 한국과 닮은 처지의 나라로 인용하곤 하는 폴란드란 나라의 정체성이 이 영화 속에 온전히 압축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작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주도와 소재로 작업되기도 했고, 폴란드의 제작역량은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실행도구처럼 간주되었던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중동부 유럽, 즉 체코나 폴란드의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숙련인력은 늘 그렇게 활용되어 왔다. 애니메이션 하청작업 관련해서는 한국과 폴란드나 체코의 입장이 닮은꼴이었던 셈이다. 남북한 공히 세계 애니메이션 제작환경에서 수행해왔던 역할이 겹치는 지점이라 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은 주로 일본+미국 애니메이션 하청, 북한은 유럽 쪽 하청을 많이 맡았다)

그런 산업적 원·하청 분업구조의 특징은 자연스럽게 폴란드의 근·현대 역사로 연속된다. 영화 속 립세, 그리고 당대 폴란드는 당시 강대한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에 가까운 위치였다. 최소한의 자치권만 부여받고 러시아 황제를 군주로 모시며 차별을 당하던 상황은 자연히 서쪽 동네에선 산업혁명과 시민사회가 형성되는 순간에도 농노제에서 갓 탈피한 수준의 농촌사회가 지속되는 시대상으로 체감된다.

중세사회에서 이어져온 전통, 즉 마을공동체가 숲을 공유하며 땔감이나 사료를 얻던 공공자산이 초기 자본주의로 전환되면서 지주가 숲을 사유화하는 과정으로 접어든 게 영화 속 주민 봉기의 본질이다. 영국 같으면 이미 수차례 인클로저 운동 전후로 다 정리된 상황이 이제 막 폭발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후발 자본주의 주자인 러시아 제국에선 19세기 말이 다 되어서야 치르게 된 격변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세태가 영화 속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활용된다.

신기하게도 톨스토이의 동 시기 단편을 읽으면 그런 동유럽 사회의 동시대적 유사성을 인식할 수 있다. 그의 단편 중에도 대표작 반열에 속하는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읽은 이들이라면 <립세의 사계>에서 주요 전환점이 되는 공유지 문제가 거의 겹쳐 보이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겠다.

19세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폴란드 도농격차의 기원
 
 영화 <립세의 사계>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당시 산업화가 진행되며 그 당연한 결과로 시민혁명의 기운이 출렁이던 서쪽의 도시들과 달리 중세로부터 큰 차이랄 게 없이 연속되어온 폴란드의 농촌 공동체가 가진 명암이 <립세의 사계>에서 온전히 구현된다. 그런 개성은 곧 근·현대 폴란드의 정체성과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21세기에도 독일 등 서유럽과 밀착된 서부 공업지대와 도시지역 vs.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농업 기반인 동부 농촌 지대의 정치적 입장과 성향은 확연히 구분되는 중이다. 그중에서 립세 마을의 풍경은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서로 공동작업을 하고 공공의 이해관계엔 과감히 팔뚝을 걷고 나서는 소박한 전통은 시간의 흐름과 무관해 보인다. 미덕이라 해도 좋을 법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독립된 개인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집단의 일원으로만 간주하는 '작은 사회' 특유의 분위기가 야그나의 수난과 엮이면서 실감나게 묘사된다.

선량한 농민들은 그 소박한 속성과 동시에 낯선 존재나 새로운 문물에 대해선 '차이'와 '다름'으로 간주해 극도의 배타성을 드러내곤 한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과 같고 집단 주류의 입장은 거짓을 동원해서라도 관철해야만 한다. 영화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기막힌 상황은 '질서'를 지키기 위한 명목으로 허용된다.

이런 격랑 속에서 같은 불륜이라도 안테크와 야그나가 받는 대우는 확연히 나누어진다. 물론 마을에선 야그나가 부당하게 모함 당하는 걸 알고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집단주의의 억압 속에서 그들은 다음 타깃이 자신이 될까봐 감히 나서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근대판 '마녀'로 야그나의 운명은 결정된다.

이런 이야기 전개를 보고 있자면 21세기의 관객은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영화에 담긴 배경과 상황을 일정 부분 참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는 19세기 후반 폴란드 농촌의 풍경이-21세기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정서와 속성마저 포함해-온전히 타임캡슐 마냥 압축되어 있다. 영화의 원작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문호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농민> 4부작(매 권이 가을-겨울-봄-여름 편으로 구성된다)이다. (국내에도 1993년에 출판되었지만 절판 상태다)

작가가 동시대 폴란드 농촌사회를 배경으로 삼아 집필한 해당 원작은 19세기 후반 당대의 폴란드 시골을 재현한 것이다. 하기에 21세기에 해당 작품을 보게 되는 이들은 그 시절의 분위기를 인지하고 감안해야 한다. 긍정과 부정을 떠나 그 시절에는 가능/불가능했던 표현과 사고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주인공 야그나가 취하는 수동적인 태도와 일방적인 고난에 대해 현재적 시각으로 슬퍼하고 분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고전에 대한 평가를 오직 지금의 척도로만 잡는 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는 수많은 동서고금의 고전들에 대한 독해방식과도 연결되는 지점일 테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속 인물들을 21세기 기준으로만 재단하는 것도 무리이지 않을까.

19세기 고전문학의 형상화라면 더 좋을 수 없는 결과물
 
 영화 <립세의 사계>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그리고 제작진은 '여름의 끝'에 현대적 해석을 덧붙이는 것으로 독자적인 인장을 아로새긴다. 지난한 고초 끝에 모든 것을 잃고 만 야그나가 비로소 극한의 상황에서 일종의 '각성' 혹은 '해방'에 이르는 건 가뭄의 끝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부터다. 어찌 보면 비참의 극한이지만 달리 보면 새로운 출발 혹은 부활의 경로를 구현하는 세이다. 이 인상적인 마무리는 결국 변화해가는 세상의 반영이자 전망을 상징하는 데 충분해 보인다.

영화는 문화대국 폴란드의 풍성한 자산을 전면적으로 품어 안는다. 자국이 자랑하는 대문호의 대표작을 과감하게 원작으로 삼았다(폴란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만 5명인 나라다!). 폴란드 19세기 거장들의 회화를 화면에 무빙 이미지로 옮겨놓았다. 아마 국내에선 해당 작가들의 그림을 이 영화 속 터치로 처음 만나는 경우가 적잖을 것 같다. 거기에다 강렬한 잔향을 남기는 민속음악의 전면적인 활용이 돋보인다. 음악은 대사 없이 진행되는 야그나의 결혼식 장면과 마을 축제 도중에 벌어진 무도회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의 내적 상황을 표현하는 데 비언어적 전달수단으로 더없이 효과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춤과 음악만으로 주인공의 격정과 충동이 온전히 전달되기에 영화 전체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손꼽힐 만하다.

당대 시골 사회와 전통의상, 일상 풍경까지 영화는 세밀하게 고증한다. 폴란드 식 만두인 '피에로기'를 송편 빚어내듯 만드는 풍경, 대서양 건너 도입된 감자가 유럽 전역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만나'처럼 받아들여졌는지 묘사가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다(전작의 주역인 반 고흐의 작품 중 유명한 '감자 먹는 사람들'이 떠오를 법한 찰나들이다). 그렇게 공들인 배경 디자인과 장치까지 곁들여진 덕분에 한 시대의 압축적 상징으로 <립세의 사계>는 모자람이 없는 완성도를 구현해낸다. 폴란드(+러시아)의 해당 시기 고전문학 애호가라면 머릿속에 상상해온 이야기가 무빙 이미지로 구현되는 진기한 경험에 도전해도 좋을 법하다.
 
<작품정보>
립세의 사계 CHŁOPI (The Peasants)
2023|폴란드|애니메이션
2024.01.10. 개봉|115분|15세 관람가
각본/감독 DK 웰치먼, 휴 웰치먼
주연 카밀라 우젱도브스카('야그나' 파체시우브나 역), 로버트 굴라직('안테크' 보리나 역)
출연 미로슬로우 바커(마치에이 '보리나' 역), 소니아 미에티엘리카('한카' 보리노바 역)
원작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 소설 [농민]
수입 ㈜퍼스트런
제공 ㈜엔케이컨텐츠
공동제공 ㈜블레이드이엔티
배급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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