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의 식사는 어딘가 다르다? 남다른 2024년의 식탁

2024. 1.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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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감 없이 ‘나’를 드러내고 브랜딩하는 시대. 이제 그 영역은 패션과 뷰티, 라이프를 넘어 매일 먹는 음식으로 향한다. 아무거나 먹을 수 없는 젠지들에게 식사의 의미란 무엇일까? 한 끼 식사로 ‘나’를 말하는 2024년의 식탁을 점쳐봤다.

쳐내도 쳐내도 밀려드는 일, 나만 괴롭히는 것 같은 상사, 마음대로 잘 안 풀리는 연애, 이유 없이 몸도 마음도 축 처지는 기분···. 평탄해야만 하는 일상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생길 때면 친구들을 불러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를 외치며 고깃집으로 향하곤 했다. 마치 이 고통을 고기에게 보상받겠다는 듯(고기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삼겹살, 곱창, 치킨 등 각종 고깃집을 찾았으며, 스트레스 지수에 비례하는 만큼의 고기가 식탁을 가득 메우곤 했다. 그랬던 루틴에 뜻밖의 균열이 생겼으니, 그건 고기와의 이별을 선언한 친구들이 부쩍 늘어난 탓이었다. 인간의 ‘미식’을 위해 폭력적으로 착취당하는 동물의 다큐멘터리를 본 날, 취미로 시작했던 요가가 삶의 일부가 된 이후 자연스럽게 찾아온 변화였다고 그들은 말했다. 친구들의 결심은 숭고했으나 이미 습관이 돼버린 고기를 향한 나의 열망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그저 고깃집에 함께 가는 일행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훈장처럼 올리던 인스타그램의 ‘고깃집’ 인증샷만큼은 왜인지 올리기 어려웠다. 내가 무심코 올린 사진이 더는 고기를 먹지 않는 이들에게 무례한 폭력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그건 곧 어떤 욕망으로 커져갔다. 비록 나는 여전히 고기를 먹고 있지만, 인스타그램 속 세상에서만큼은 무분별하게 고기를 소비하지 않는 의식적인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으로 말이다. 불판 위에서 기름진 자태를 뽐내며 익어가는 고기 대신 초록초록한 샐러드나 포케를 찍어 올리며 #green #veggie #vegan 따위의 해시태그를 끼워 넣었다.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이상 가야먹을 수 있었던 시기스(Siggi’s), 초바니(Chobani) 등의 그릭 요거트가 한국에 처음 들어오게 되면서 별안간 품절대란이 일었던 때도 마찬가지. 여유로운 주말 아침, 식탁을 그럴싸하게 연출한 사진을 올리며 스스로 이런 생각에 도취되기도 했다. 남들이 사고 싶어 안달인 ‘그 요거트’ 를나는 집에서 여유로이 먹을 줄도 아는 사람이라고. 먹어치우면 그만인 음식을 우리는 왜 욕망하며, ‘나’라는 사람을 포장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된 것일까? 그저 남들처럼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증명해야 할 것만 같은 인

스타그램이 부추긴 위선일 뿐일까? 근원부터 고찰해본다. 물론 여기에는 인스타그램의 과시적인 속성을 비롯해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먹는 행위, 즉 ‘식(食)’이 가지는 목적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변화했다는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제 식은 생존도 타인을 위한 것도 아닌 ‘나’를 위한 행위이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화는 언제, 왜 생겨났을까?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식문화 트렌드가 변화하게 된 중요한 변곡점을 코로나로 꼽는다. 코로나19 이전, 코로나19 시기 그리고 코로나19 이후로 구분했을 때 식 분야에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는 것.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스스로 몸을 관리하고 식단을 조절하며, 영양제도 야무지게 챙겨 먹는 루틴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오운완’, ‘운동 식단’, ‘모닝 루틴’ 등의 새로운 해시태그가 생겨난것도 이 시점 이후의 일이다. 타인과 멀리 떨어진 폐쇄된 공간에서 건강을 지키며 생활해야 했던 사람들은 일정한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고 행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골몰한 것이다. 매일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그날의 식단을 기록하고 챌린지를 인증하며 온라인으로나마 타인과 소통을 이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코로나19가 종식된 지금까지 유지되는 메가트렌드가 됐다. 거리두기로 집 안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기에 집밥, 배달 음식 위주의 식사 방식이 주를 이룬 데 반해 코로나19가 지나간 최근의 흐름은 외식에 집중된 양상을 보인다. 웨이팅이나 오픈런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끼 식사를 즐기고자 하는 행위는 그동안 누리지 못한 것을 온전히, 어쩌면 두세 배 즐기겠다는 보상 심리에서 오는 것일 테다. 음식의 맛과 아름다운 비주얼의 플레이팅, 식사하는 공간의 분위기, 서버의 서비스까지 미각을 넘어 오감을 충족하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젠지들은 시간과 돈을 쓰는 데 망설임이 없다. 과거 소수만이 누리던 오마카세가 대중화된 것도 코로나19 시대가 낳은 대표적 산물이다. 그렇게 오마카세는 자연스레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언제일지 모르는, 어쩌면 내겐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를 위해 무작정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우리는 지금의 ‘나’를 위해 그럴 만한 사치를 부릴 줄 아는 세대가 된 것이다.

「 식탁이 대담해진다? 」
미국의 식재료 기업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는 2024년, 우리가 먹는 음식이 더 대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롭고 대담한 맛, 이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기발하고도 이국적인 조합, 눈·코·입이 즐거운 색의 재료를 선택하게 될 거라는 것. 개인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목적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식음료 분야에서도 타협이 없을 거라는 말이다. 그것을 그들은 ‘Luxe SelfExpression’, 즉 사치스러운 자기 표현이라 명명했다. 새삼스럽지 않은 표현이다. 오마카세, 위스키, 미슐랭 레스토랑 등과 같은 작지만, 완벽한 사치를 즐기는 지금 서울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한편 매년 식음료 트렌드를 예측하는 홀푸드 마켓의 트렌드 위원회는 틱톡이 ‘작은 간식 문화(Little TreatCulture)’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조했다고 진단한다. 매일 출퇴근길에 마시는 한 잔의 밀크티, 충동적으로 사먹는 마카롱 등의 음식을 통해 스스럼 없이 욕망과 본능을 충족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브랜드 역시 이러한 트렌드를 프로모션에 활용하는 추세라 말한다. 뉴욕의 프랜차이즈 식료품 매장 더키친은 10달러 이하의 디저트나 간식을 살 수 있는 ‘Little Luxuries’ 매대를 따로 구비해뒀을 정도다. “국경과 지역을 넘어 새로운 자극을 주는 맛은 소비자의 식욕을, 나아가 그들을 행동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의 욕구는 접시 위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어요. 그것이 더 빠른 속도로,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은 소셜 미디어죠.” 이제 소셜 미디어의 계정을 스크롤하며 발견한 음식, 더 정확히 말해 바이럴을 타고 화제가 된 음식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맛보고자 한다. 실제로 지난 한 해 우리에겐 익숙한 에그드랍 샌드위치를 만드는 레시피 영상이 틱톡에서 960만 조회 수를 기록했는데, 이 또한 태평양 너머 미지의 맛을 정복하려는 이들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수많은 맛 중에서 2024년 ADM이 주목하는 맛은 바로 달콤함. 주요 재료로 시나몬 슈거, 캐러멜라이징한 과일을 선정하며 궁극의 단맛을 통해 쾌락과 희열을 발산할 것이라 설명했다. 음식의 색 역시 채도 높은 컬러가 선정됐다. 처음 보는 재료나 음식일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도전해보는 심리는 볼드 레드(Bold Red), 리치 퍼플(Rich Purple), 바이브런트 핑크(Vibrant Pink)와 같은 원색으로 대변될 수 있다고 본 것. 또한 이런 진하고 강렬한 컬러는 감각적 경험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상의 수많은 게시물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

다.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탕후루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결국 이 모든 흐름의 밑바탕엔 ‘경험’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알고 당신은 모르는 것, 나는 해봤고당신은 해보지 않은 것, 나는 먹어봤고 당신은 먹어보지 않은 것. 그리하여 나는 당신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아주 쉽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소셜 미디어는 더 많은 경험을 촉진한다. 해본 것과 아직 해보지 못한 것, 그 차이를 메우고 싶은 욕망이 식탁 위의 트렌드를 추동하는 법이다.

맛있는 걸 먹고 싶지만

그렇다고 2024년을 살아가는 개인의 욕망은 단순히 음식의 맛, 색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맛도 있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큼 아름다워야 하며, 음식의 성분이나 재료가 건강을 해쳐서도 안 되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어떤 식당에 가든 제로 콜라를 쉽게 볼 수 있고, 빵집에 글루텐프리 빵이 함께 진열돼 있는 것을 떠올려보라. 어느새 익숙한 일상의 모습이 됐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생활의 변화를 관측하는 생활변화관측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1분기를 기점으로 소셜미디어상의 ‘제로 콜라’ 언급량이 일반 콜라를 앞서기 시작해 2023년 2분기에는 3배 가까이 차이 나는 수치를 기록했다. 제로 콜라에서 시작된 ‘제로’를 향한 사람들의 열망은 제로 음료, 제로 칼로리, 제로 소주, 제로 아이스크림 등 수많은 연관어를 낳았다. 미국 시장도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ADM은 2022년 3분기 대비 2023년 2분기에 각종 제로 제품, 저함량 제품이 54%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고기 대신 콩고기를 먹고, 우유 대신 귀리 우유나 두유를 먹었던 ‘대체 식품’ 트렌드가 당과 염분을 덜어내는 ‘제로’ 트렌드로 심화됐다는 건데, 흥미로운 사실은 반대로 무언가를 추가해 건강을 챙기려는 흐름도 동시에 보인다는 것이다. 바로 단백질(프로틴). 그동안 PT 선생님이 입이 닳도록 강조했던 단백질은 이제 밍밍하고 퍽퍽한 닭 가슴살이나 프로틴 셰이크를 먹지 않아도 섭취할수 있게 됐다.프로틴 바·음료는 물론이고 단백질이 함유된 과자, 케이크, 떡까지 프로틴 제품 시장이 빠른 시간 내 방대하게 성장한 것이다. 무얼 먹어도 단백질까지 섭취할수 있다니, 그야말로 프로틴 세상의 도래다. 여기서도 먹는 행위에 투영된 사람들의 욕망이 포착된다. 먹고 싶지만 살은 찌고 싶지 않은 욕망, 단맛을 즐기는 동시에 건강도 챙기고 싶은 욕망. 이 모순된 욕망은 ‘비우고’ 또 ‘채움’으로써 충족된다.

맛과 건강을 모두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욕망이 투영될 2024년의 음식은 무엇이 될까? 전문가들은 발효 음식을 꼽는다. 2023년 미국 내 소셜 미디어상의 ‘장건강’ 키워드 조회 수가 47억을 넘어서며, 장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발효 음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 특히 홍차나 녹차를 유익균과 과일, 당 등을 넣어 발효시킨 콤부차의 존재감은 2024년에 더 빛을 발할 전망이다. 어떤 재료를 넣고 발효하느냐에 따라 활용 가능성이 다분한 콤부차는 계속해서 새로운 맛으로 사람들의 소비를 유도할 것이며, 특유의 새콤한 맛 덕분에 다른 음식과의 페어링도 훌륭한, 만능 음료의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본것. ADM은 이와 비슷한 계열의 식재료로 톡 쏘는 신맛이 특징인 블러드 오렌지, 유자를 꼽았다.

또한 식단과 운동으로 대표되는 자기 관리와 관련해 국내에서 최근 언급량이 증가하는 식품은 잡곡밥과 그릭 요거트다. 두 식품 역시 오래전부터 꾸준히 소비되고 있지만, 포인트는 둘 다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라는 점에 있다. ‘갓생’을 추구하는 요즘 젠지들에게 중요한 건 효율, 즉 ‘갓성비’다. 시중에 판매하는 잡곡밥과 그릭 요거트 제품은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 않은 편이라 매일 사먹기에는 부담되기에 직접 조리하는 움직임이 생겼고, 이는 곧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인 전기밥솥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생활변화관측소는 말한다. 덕분에 원하는 양으로 얼마든지 잡곡밥을 지을 수 있고, 우유를 넣고 보온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그릭 요거트를 만들 수 있는 데다 자취방의 인테리어도 해치지 않는 감각적인 디자인까지 갖춘 전기밥솥은 지금 ‘갓생러’들에게 필수 가전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몇 년 전, 별안간 등장해 열풍을 일으킨 에어프라이어와 쿠커에 밀려 제자리를 잃었던 전기밥솥은 2024년 반등을 노린다. 맛있는 음식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즐기고픈 욕망, 그 필수 불가결한 옷을 입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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