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70에 쓰는 투쟁기, 길 위에 선 사람들

최효진 2024. 1. 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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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숙씨와 조순희씨의 이야기… "조곡산단 들어오면 귀농·귀촌인 크게 줄 것"

[최효진 기자]

 조곡산단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조순희(왼쪽)·고의숙(오른쪽)씨. 이들은 길을 하나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 <무한정보> 최효진
고의숙씨를 처음 본 것은, 집회 자리였다. 단아한 얼굴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듯 해 기억에 남았다. 그 뒤 이곳저곳 행사장에서 고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혜전학원에서도, 물이야기 출간기념회에서도 만났다. 그때마다 조순희씨와 함께 1인 시위를 하거나 조곡산단 반대서명을 받고 있었다.

고씨는 11년 전 남편의 고향인 충남 예산으로 귀촌했다. 남편은 주교국민학교(현 예산중앙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남편의 말을 빌리면 초등학교 시절, 학교끼리 운동대항전이 열리면 응원을 할 때 매번 '주겨!, 주겨!'(주교와 발음이 비슷하다)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도 민망했다고. 

언젠가 주교리를 돌며 남편이 "기억나는 곳이 하나도 없구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씨는 남편이 '주교초등학교'가 '중앙초등학교'로 바뀐 것을 보고는 좋아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처음 예산에 내려왔을 때 아파트를 얻어 2년 동안 집 지을 땅을 보러 다녔다. 평생을 살거란 생각으로 그렇게 했다. 그렇게 다니다 신암면 예림리 용산 자락을 만났다.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3년 전 군도로 바뀌긴 했지만, 그가 사랑했던 언덕 오솔길이 있었고, '나무 터널길'이 있었다.

용산 자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좁은 고갯길 꼭대기에는 길 양옆으로 나란히 선 나무가 터널을 만들었다. 그가 너무 사랑했던 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무섭다고 접근도 못했지만 말이다.

결국 새로운 길이 나면서 그 풍경은 지워졌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른 것을, 그때 또 느꼈다. 

고씨는 "사람들은 도로가 넓어지고, 뭔가 달라지면 발전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산단이 들어와도 발전이 된다고 믿는다. 나한테 손해로 돌아온다는 생각을 못 한다"고 말한다.

예산에 온 지 벌써 11년이니, 그도 이젠 '예산사람'으로 가끔 친구들이나 친지를 만나러 서울로 간다. 하지만 요즘은 서울 나들이를 해도, 친지나 친구들에게 걱정을 듣는다.

그는 "산단이 들어오고,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너무 앞에 나서지 말라"는 걱정이다. 또 "군에서 한다는데 쉽게 바뀔 수가 있나?"라고 말을 듣기도 했다.

그때마다 "서울에는 내 집 앞에 산단이나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그런 말 하는 거야. 시골 사람이라도 건강에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은 알고 있다"라고 혼쭐을 내준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
 
 지난해 8월 충남도청에서 반대 주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 <무한정보> 최효진
고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몇 개의 글이 잔잔한 파장이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조곡산단 반대 투쟁을 참여하며 느낀 일종의 반성문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7일 올린 글에 따르면 "다른 지역으로 결정됐다고 믿고 우리 지역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심지어는 펼침막이 있어도 무관심했다"며 반성했다.

그러면서 반대행동에 전체 주민이 나서줄 것을 요청할 때 협의회장이 "산업단지가 들어오면 안된다는 것을 주민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왜 가만히 있겠는가? 그건 대형 양계장이 들어올 때, 고속도로가 생길 때 등 피해 당사자로 힘겨운 싸움을 할 때, 나몰라라 외면하지 않았는가. 결국 힘이 약해 다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에게 누가 동참하자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했을 때,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아픔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거대 권력과 싸우려면 눈곱만한 힘 하나라도 보태야 하거늘,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꽁무니 뺀 점. 나이 먹었다는 핑계로 마을 일에 무관심했던 점을 반성한다"는 글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고의숙씨와 조순희씨, 두 사람은 요즘 펼침막을 게시하러 다니고 있다. 하지만 펼침막이 하루 만에 떨어진 곳도 있고, 어느 곳은 일주일 혹은 2주일 만에 사라지고 있다. 그는 펼침막을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제발 걷어가지 마시라. 우리는 이 거대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울 무기가 없는 힘없는 주민이다. 이렇게라도 부당함을 알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호소한다.

언제나 함께인 조순희씨는 길을 사이에 둔 이웃사촌이다. 예산에 주소를 둔지는 2년이 됐다. 그 이전 5년을 부천과 예산을 오가며 지내왔다. 그의 남편인 김광호씨는 추사 김정희선생의 종손이다. 부천시 중동에서 주민자치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조씨는 첫 번째 주민설명회가 무산된 10월 31일 처음으로 조곡산단이 오는 것을 알았다.

"조곡산단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진짜 아무도 말 안 해줬어요. 심지어 원주민도 모르셨어요. 응봉으로 갔다는 소문을 들으니, 갔나보다 그러고 있었어요. 지나가다 펼침막을 봤는데 얘기를 안 해주니까, 어디 멀리 있는 데인 줄 알았어요. 그저 '예산 너무 좋아' 이러면서 다녔죠. 그런데 하루아침에 조곡산단이 바로 근처까지 온다고 했어요. 기가 막혀서"

사실 그는 조곡리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지도 조차 몰랐다. 2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은 조곡산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산을 선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실제 옆에 터를 닦고 입주를 준비하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고 있다.

조씨는 "올봄에 이사 오기로 했던 사람이었어요. 터를 닦다가 결국 그만둔 것 같아요. 입주를 포기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했다. 

이제 막 은퇴하게 돼,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였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조곡산단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함께하던 사람들은 떠나기도 하지만 반가운 소식도 있다. 지역의 시민단체가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얼마 전 예산참여자치시민연대, 전교조, 농민회 등에서 활동에 동참하겠다고 의사를 전했다.

이들은 "함께해 주신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반대대책위를 중심으로 주민과 함께 싸워 나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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