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를 만나 뜯고 긁고... 첼로의 경계를 허문 '민요 첼로'

이규승 2024. 1. 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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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민요 첼로>

[이규승 기자]

 ‘빅바이올린 플레이어(빅바플)’이라는 예명으로 실험적인 연주 활동활동을 해온 임이환은 현악기로서 첼로가 갖는 가능성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작곡가이자 첼리스트이다. 첼로 한 대만을 이용한 솔로 라이브 루핑(Solo Live Looping) 퍼포먼스를 통해 고전 악기의 대표 주자인 첼로에 완전히 다른 매력을 부여하며 현악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서양에 클래식음악이 있다면, 우리나라엔 전통음악이 그러하다."

아마도 오랜 역사를 자랑할 만큼 순수 혈통을 중요시하는 오리지널리티가 변형되는 수많은 시도들이 달갑지 않은 영역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하지만 오랫동안 갇혀 있는 이 철옹성같은 곳에서 동시에 색다른 도전을 하는 연주가 있어 눈길을 끈다. 단지 호기심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왜 이 공연이 주목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클래식. 시대를 초월해 당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를 배출했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다 하여 'Endless'라는 수식을 붙여 설명한다. 그런데 지난 2022년 제15회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의 마지막 연주장면을 보면서 그동안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져 버렸다. 수세기 전에 그려졌던 베토벤의 악보를 100% 재현하는 것이 최고의 퍼포먼스라는 생각이.

연주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주에 혼을 불어넣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섬세함을 알아차리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임윤찬의 실황중계를 보면서 그동안 맹신했던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게다가 연주자만의 색깔을 공연에 불어넣는 과정도 무궁무진하다는 것까지 알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의 정통성에서 일탈하는 가능성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영역은 단일 민족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성을 이수해야 하는 성질이 강한 전통 음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국악을 전공한 수많은 졸업생들이 학교를 벗어난 이후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친구, 동료들과 함게 자신만의 살길을 찾기 위해 돌파구를 모색한다. 그렇게 찾은 방법이 다른 악기와 협연이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경계선을 넘나들어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 것이다. 비단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올곧은 정통성을 저해한다는 지적과 함께 그들의 퓨전과 융합은 오리지널리티와 정 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이환의 <민요 첼로>(1월 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앞서 예로 들었던 공연의 색다른 시도와 같은 결이라 주장한다면 필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파격을 시도하는 영역에서 몇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동양음악을 토대로 동·서양의 악기가 협연을 펼친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번 공연을 특정짓고 싶지 않다. 이처럼 단순한 협연이나 컬래버레이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연주 방식뿐 아니라 그것이 완성되어가는 악기 구성, 청중과 관객에게 느낌을 전달하는 과정이 다른 점을 언급하려 한다. (공연 실황 영상 보기)

오리지널리티를 변형시키는 놀라운 시도들
 
 <민요 첼로>는 '두꺼비 집', '문지기', '녹두꽃', '파랑새' 등의 민요를 다섯 대의 첼로와 드럼, 기타, 베이스 등 밴드 악기로 새롭게 해석한 공연이다. 전래놀이 노래의 짧고 단순한 선율에 새로운 멜로디를 탑처럼 겹겹이 쌓아 올려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갔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클래식을 취미로 듣기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일상에서 클래식을 틀어놓지 않으면 정서가 불안해질 정도로 일상의 내면 깊숙이 파고 들었다. 차로 이동할 때는 물론이며, 심지어 일하는 동안에도 잔잔한 클래식의 선율을 듣지 못하면 집중이 안 될 정도다. 하지만 클래식에 마음을 열기 전에 필자는 한때 재즈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흑인 특유의 그루브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연주에서 풍기는 냄새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가사의 전달보다는 음악이 주는 느낌에 매료됐다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5중주가 완벽하게 차려져 있었고, 당시에 인종차별이 심했을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구수한 보이스를 자랑하는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혼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요 첼로>의 놀라운 점은 내가 클래식 음악을 들은 것인지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에 빠진 것인지 착각할 정도의 혼돈에 빠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악기구성과 연주기법에서 피어나오는 '즉흥성'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재즈의 퀸텟 구성에서 그대로 클래식으로 옮겨와 다시 생각해보자. 

이번 공연은 일반적인 퀸텟인 '바이올린2, 비올라1, 첼로1, 콘트라베이스1'의 정형성에 벗어났다. 악기는 다섯 대의 첼로가 무대의 전면에 배치됐고,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밴드가 9인조를 완성시켰다. 이처럼 공연은 전형적인 퀸텟 구성에서 벗어나 다섯 대의 첼로를 활용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들었다. 보통 첼로는 저음 악기라는 인식이 강한데, 피아노 다음으로 넓은 음역대를 자랑하는 악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무려 4옥타브까지 활용이 가능해 다섯 대의 첼로가 서로 다른 역할을 자청했다. 또한 일반적인 현악 연주법에서 벗어나 "현을 뜯거나 긁는' 등의 주법들을 시도한 것은 연주의 백미로 보인다. 

공연이 완성되는 과정에 관하여

필자가 두 번째로 주목하고 싶은 점은 완성되는 방식에 집중하라고는 것이다. 굳이 '완성되는'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공연이 '제작되는' 과정과 '보여지는' 과정을 구분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선 제작되는 과정이 어떻게 다른지 소개하려 한다. 

"민요라는 익숙한 멜로디 위에 새로운 화성과 리듬으로 리패키징하듯 작업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짧은 멜로디가 어떻게 새롭게 변하는지 상상하면서 들어주길 바란다."

임이환 작곡가는 공연 중 소개멘트에서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새로운 화성과 리듬을 찾기 위해 '리패키징(repackaging)'이라는 용어를 언급한 것이다. 또한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라이브루핑 퍼포먼스(Liveloopping Performance)'라는 말을 사용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중간에 언급되는 '루프'는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이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첼로와 루프스테이션이라는 이팩터 페달을 이용해서 다양한 소리를 만들고 있는 첼로 라이브루핑 퍼포먼스를 한다. 첼로를 연주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재미있게 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우리나라에서 첼로 하면 클래식만 연주하고 아름답고 선율이 있는 음악만 연주하는데, 조금 신나고 재미있고 리듬감 있는 펑크 음악을 좋아하니까 이걸 나만의 악기로 구현하고 싶었다." 

'루프스테이션'이라는 장비는 녹음된 구간 위에 다른 소리를 켜켜이 쌓아올려 녹음을 해주는 기계를 말한다. 보통 즉석에서 여러가지 소리를 기계장치에 입힌 뒤에 반복 재생시켜서 음악의 반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MBC의 <나 혼자 산다>에서 천재 뮤지션인 가수 헨리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 연주방식을 선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여기에는 그가 주로 사용하는 바이올린뿐 아니라 드럼, 건반 등의 악기 소리를 물론이며, 심지어 비닐이나 소도구를 반복해서 두드림으로써 나오는 자연소리까지 음악적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작업이 완성되는 과정에 주목했던 라이브루핑 퍼포먼스는 작업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많은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별볼일 없는 작은 소리도 소리의 층이 겹을 쌓으면서 훌륭한 악보가 완성되어 과정을 보게 된다. 이것은 단층으로 되어 있는 레이어(layer)들이 여러 장 겹을 이뤄 수많은 음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보면 청중은 희열을 느낀다. 이런 과정은 임이환 작곡가가 작업을 해왔던 과정에서도 업그레이드를 엿볼 수 있다. 

임이환의 창작활동을 되돌아보며
 
 우리나라의 민요를 다섯 대의 첼로와 밴드 음악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민요 첼로’는 한국의 전통음악(민요)을 토대로 서양의 전통악기(첼로, 피아노)와 현시대성을 대표하는 악기(밴드)가 협연을 펼침으로써 시대의 흐름을 앞서나가는 임이환만의 작품 세계를 볼 수 있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19년 말, 수 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친 임이환은 거대한 꿈을 안고 귀국했다. 발렌시아 버클리 음대에서 첼로 연주가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연주 스타일과 클래식 악기의 신선한 사운드로 고국에서 새로운 청중을 사로잡을 준비가 마쳤다. 때마침 자신을 소개하는 기억에 남을 문구를 찾고 있었는데, "첼로가 바이올린보다 크다"는 것에서 착안해 자신을 '빅바이올린 플레이어'라고 애칭을 붙였다. 그렇게 2020년 이후의 연주계획은 발동이 걸렸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고, 모든 계획이 뒤틀어졌다. 라이브 공연을 하거나 다른 연주자들과 협연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 세계 청중을 대상으로 온라인 무대를 만들었다. 그는 함께 공부했던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을 기획했다. 결국 반년에 걸쳐 미국, 스페인, 이란, 터키 등 전 세계의 뮤지션들과 작업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는 즉흥적인 잼 세션 대신 음악의 포트럭 파티처럼 각 참가자들이 미리 준비한 것을 다음 모임에서 제공했다. 이것은 그가 다른 음악가들과 원격으로 교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온라인 작업 방식은 하나의 베이스라인을 만든 후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악보로 옮긴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미리 나눠주고 추가할 요소가 있는지 점검했다. 

임이환은 5살 때 클래식 훈련을 받으며 첼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같은 악보를 반복해서 연주하며 기술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전문적인 기반을 다진 후에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나갔다. 그는 어떤 음악이 자신에게 가장 큰 공명을 일으켰는지, 자신이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은지 고민했다. 그래서 임이환은 전통적인 첼로보다 현대적인 사운드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첼로의 경계를 허물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첼로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단다. 그리고 첼로를 가지고 다른 장르를 연주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대부분은 회의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의구심에 대해 그는 "첼로가 멋지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금세 배웠다. 첼로를 사용하여 다양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첼로는 매우 아름다운 음악도, 신나는 음악도 연주할 수 있다. 베이스나 바이올린 피치로도 연주할만큼 스펙트럼이 넓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민요 첼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공연이 보여지는 방법이라 자신있게 말한다. 활을 이용하여 OST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클래식 사운드를 만든다. 또한 활을 사용해 짧은 스트로크를 쳐서 펑키한 스타카토 리듬을 만든다.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활을 치우고 손가락을 사용해 현을 퉁기며 베이스같은 묵직한 소리도 만든다. 때로는 핑거기타리스트의 현란함이 보일 정도다.

이렇게 <민요 첼로>는 첼로도 멋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시켰다. 첼로를 사용해서 다양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첼로는 어둡고 정숙한 콘서트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과 신나는 음악도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명한 셈이다. 이렇게 첼로가 우리 곁으로 한 걸음 다가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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