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이 가깝고 엄청나게 소란스러운 거실의 여정, <데코·데코: 리빙룸 아케이드>
컵과 포크, 커피와 쿠키, 단추나 실처럼 매일의 삶을 이루는 사소한 것들의 기원과 역사를 좇다 보면 놀랍다. 당연하게 여겨온 집의 구성 요소도 마찬가지.현대에 이르러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지는 현관은 아프리카의 전통 건축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거실은 신전의 일부였다. 성직자가 외부인을 맞이하고 접대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거실을 뜻하는 영단어 ‘Parlor’의 어원은 프랑스어 ‘Parler’로, ‘말하다’라는 의미다. 거실은 오랫동안 외부와 교류하는 공식 장소였으며, 집 안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놓아둔 얼굴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3년, 대원사가 출판한 책 〈거실 꾸미기〉에는 한옥에 마련된 거실, 마당이 한눈에 보이는 거실, 책이 가득한 거실, 음악을 듣기에 최적의 공간으로 구성된 거실 등 20인의 특색 있는 거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거실에 담긴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일까.
건축과 예술, 디자인과 공예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일상 영감의 테를 확장해 온 〈엘르 데코〉 코리아가 선보인 첫 전시 〈데코 · 데코 Décor · Décor: 리빙룸 아케이드〉(이하 〈데코 · 데코〉)는 주거공간의 거점인 거실을 모티프로 다양한 풍경을 문화적 관점과 현대미술로 재구성하고, 우리가 머물렀던 시대와 유행, 가치를 포괄하는 거실의 의미를 탐색한다. 일민미술관 1층부터 3층까지 총 3개 섹션으로 구성된 〈데코 · 데코〉는 집과 사람 그리고 사물이 맺는 관계와 경험에 관해 고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돼준다. 〈데코 · 데코〉 기자간담회에서 초대 기획자 이미혜는 디자인 바 ‘꽃술(kkotsul)’을 운영하며 창작자의 작품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고객의 공간을 회상했다. “수십 평의 널따란 거실부터 작은 원룸까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그들이 디자인 가구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각자 집 안에 두고 사용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덧대는 과정을 거치겠죠. 이 전시를 단순한 스타일이나 디자인 전시가 아닌 ‘생활 이야기’로 풀고 중심이 되는 공간인 거실을 다루게 된 것은 이때의 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시 〈데코 · 데코〉는 국내외에서 주목받아 온 20팀의 미술가 · 디자이너 · 공예가 등이 참여해 거실이라는 삶의 공간을 다각적으로 비틀고 탐구하며, 다시 해석한다. 전시의 시작점인 1층 ‘만남의 공간’에서는 거실을 자연물과 인공물, 안과 밖, 과거와 현재, 개인의 주관과 사회적 시선이 매 순간 교차하는 만남의 장소로 재구성했다. 작가 김동희 · 연진영 · 이윤정 · 슈퍼포지션은 탁 트인 광폭 거실의 풍요로운 일상 풍경을 연출했다. 연진영이 몽클레르의 지원을 받아 검은색 다운 재킷으로 완성한 중정형 소파 ‘푸퍼 홀’에 앉으면 슈퍼포지션이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나무와 들판, 푸른 숲을 픽셀 기반으로 구현해 온라인 시대의 생활 풍경을 은유적으로 해석한 영상 풍경이 보인다. 자연 풍경이 그려진 아일랜드 식탁과 파티션을 지나 너른 거실을 가로지르면 벽면에서 미처 인지하지 못한 작은 오브제들이 발견된다. 이윤정이 주물 방식으로 크고 작은 못과 은괴를 닮은 보도블록 조각들, 일상의 부수적 존재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작업으로, 미처 모르고 지나친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3층 ‘오늘의 풍경’은 거실을 빌려 오늘날 한국의 주거문화, 도시와 사회를 바라 보게 한다. 이미정이 조립식 가구처럼 공간에 따라 새롭게 구성한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그림 조각들은 실내 풍경 속에서 메타적 이미지를 길어 올린다. 1인용 소파의 형태를 띤 박미나의 도형 회화는 주거문화의 시대적 변화를 인지하게 하고, 정보영의 조각보 작업은 평면도상의 거실이 보여주는 다양한 크기와 생김새로 한국인의 생활방식을 보여준다. 최용준이 탐색한 구도심의 도시와 건축사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생기고 또 사라져온 ‘뉴 서울’에서 누군가의 거실이 담아온 일상적 전망을 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거실은 집의 얼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관념에서도 자유롭다. 특수한 의무나 기능을 가지기보다 빈 곳에서 출발해 마음껏 상상하며 채울 수 있는 가장 사적인 영역이자 세계일 것이다. 오피스 혹은 다이닝 룸, 침실 등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둘 수 있는, 각자의 삶을 관통하며 축적하고 재건한 ‘집’의 의미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전시 〈데코 · 데코〉는 꾸밈의 대상이 아닌 정서와 문화가 반영된 생활의 일부이자 내밀한 표현 방식으로서의 거실, 이를 통해 지금 삶에 스며든 ‘데커레이션(Decoration)’을 재탐색하게 한다. 우리가 머물고 살아가는 장소, 그 안에 살아 있는 사물들이 맺어온 관계와 그로 인해 축적된 변화가 곧 ‘주거’그 자체라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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