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대물 심해어 '돗돔'의 황금어장

황호택 2024. 1. 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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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보석, 신안 천사섬 20] 달뜬목 해뜰목의 비경, 가거도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 <기자말>

[황호택]

국토의 서남쪽 끝에 자리한 가거도(可居島)는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섬이다. 한자 이름을 풀면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이다. 하루이틀 섬을 둘러보고 배를 타고 인근 바다에 나갔다 오면 이름을 겸손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거도는 섬 전체가 독실산 줄기에서 뻗어 나간 형상이다. 독실산은 송아지 독(犢)에 열매 실(實)자를 쓴다. 가거도의 주봉인 독실산은 높이가 639m로 서해에서 가장 높다. 서해를 건너 한국과 동남아를 오가는 철새들의 정거장이다. 윤무부 박사 등 철새 연구자들이 가거도를 자주 찾는 이유다.

'송아지 열매' 독실산 이름 유래

가거도에 9대째 사는 임명옥(任明玉)씨는 "예로부터 산비탈에 송아지와 염소를 방목했다"고 말했다. 논이 없는 가거도에서 소는 경작용 가축이 아니고 염소와 함께 식용으로 길렀다. 송아지는 따듯한 산비탈에 나는 풀을 뜯어 먹고 키 작은 후박나무 열매도 따 먹었다. 독실산 안내판에는 '이름의 유래를 알 수 없다'고 써 있지만 '송아지가 좋아하는 후박나무 열매'라는 추론이 맞을 것 같다.
  
 가거도항과 대리 마을 전경
ⓒ 신안군
  
섬에는 후박나무와 함께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사스레피나무 등 난대식물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가거도 산림의 80%가 후박나무. 한약상에서 유통되는 후박나무 껍질의 70~80%가 가거도 산이다. 후박나무는 비둘기가 열매를 먹고 똥을 싸면 거기서 싹이 터 자연적으로 퍼져나간다.
가거도 주민들은 밭에도 후박나무를 심었다. 껍질은 한약재로 팔고 나무는 땔감으로 썼다. 지금은 값싼 중국산이 밀고 들어와 시세가 폭락해 채취하는 인건비에도 못 미친다. 후박나무 잎은 짙은 청록색에 반질반질한 윤채(潤彩)가 있다. 임씨는 "귀한 손님이 온다고 해서 후박나무 잎을 콩기름으로 닦아 놓았다"고 우스개를 했다.
  
 대리에 있는 멸치잡이노래비.
ⓒ 황호택
 
가거도는 한반도의 영해(領海)가 시작하는 기점(基點) 중의 한 곳. 한국에는 영해의 기준이 되는 섬이 23개가 있는데 이 중 10개가 유인도다. 이 섬들을 이은 기선(基線)에서 영해 12해리가 시작한다.
가거도 북서쪽에 위치한 섬등반도(半島)는 문화재청이 지정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섬등'이라는 지명은 '성등(城嶝)'에서 '성'의 받침 발음이 변화한 것으로 짐작된다. 병풍바위가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보인다. 기암절벽의 해식애(海蝕崖)가 아름답다. 해식애는 수억 년 동안 파도의 침식과 풍화 작용에 의해 해안에 형성된 낭떠러지. 해가 질 때 낙조(落照)가 일품이다.
 
 문화재청이 2020년 국가명승으로 지정한 섬등반도.
ⓒ 신안군
   
가거도는 국제교역선이 지나는 길목에 자리해 통일신라 시대부터 중국 무역의 중간 기항지로 활용됐다. 가거도에서 새벽에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도 있으나 턱없는 과장법이다. 중국과의 최단거리가 385㎞. 해무(海霧)가 없는 날이면 가거도에서 제주도와 추자도가 보인다.

"어선 한 척 하루 1억"… 조기철 국제도시
 

인근 해역에 조기 떼가 들어오면 가거도는 섬 전체가 파시(波市)처럼 흥청거린다. 한 주민은 "조기잡이 철에는 어선 한 척이 하루에 1억 원을 번다"면서 "바람 거센 날에는 어선들이 방파제 안으로 다 들어오지 못하고 방파제 밖에서 밧줄로 서로 연결해 묶어 놓는다"고 했다. 겨울 조기잡이 철에 바람이 불면 어선 수백 척이 피항(避港)해 가거도항은 국제도시로 바뀐다. 온갖 인종들이 작은 방에서 네댓 명씩 함께 묵는다.

가거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오염원이 없는 청정해역이어서 바다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높다. 두 번째 갔을 때는 낚시꾼들이 몰려와 방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가거도에서 가장 많이 나는 물고기는 단연 불볼락이다.

이곳 사투리로는 열기. 크기는 약 30cm 정도로 붉은색을 띠며 5개의 흑갈색 가로무늬가 나 있다. 열기는 연중 잡을 수 있다. 회나 조림으로 먹고 말린 후 구워 먹어도 맛이 좋다. 감성돔, 참돔, 노래미, 농어, 우럭, 돌돔이 많이 나온다. 학꽁치는 지천으로 흔하다. 바닷가를 걷다 보면 학꽁치가 물 위로 점프해 비상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거도 해양전시관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박제 돗돔.
ⓒ 신안군
 
돗돔은 해신(海神)이 허락한 자만이 잡을 수 있다는 전설의 물고기. 수심 400~500m 암초지대에 사는 심해어(深海魚)다. 사람 키보다 큰 2m짜리 돗돔을 잡기 위해서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장어 한 마리를 통째 미끼로 쓴다. 오징어 미끼는 네 마리를 한꺼번에 꿴다. 2013년 가거도에서 잡힌 돗돔은 길이 2m에 무게가 150kg이었다. 일반 낚싯대로는 돗돔을 들어 올리다가 줄이 끊기기 쉽다. 방어 등을 잡는 대물 전용 낚싯대라야 안전하다.

누에머리 암초에 돗돔 서식

소국흘도는 1970~1980년대 까지만 해도 돗돔의 황금어장이었다. 소형어선을 타고  가거도항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누에머리를 닮은 바위섬 일대에 거대한 암초가 있다. 암초에는 우럭과 볼락 등 돗돔의 먹이와 동굴이 많다. 돗돔은 이 암초의 동굴에 알을 낳고 몸을 은신한다.

가거도 어부들은 한창나이에 누에머리 어장에 하루 조업을 나가면 돗돔을 서너 마리 씩 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지금은 부산 제주도 가거도 등지를 통틀어서 1년에 고작 스무 마리 정도 잡힌다.

돗돔은 5~7월 산란기에 얕은 바다로 나온다. 암컷이 걸리면 놓아주어야 하겠지만 배를 갈라보기 전에는 암수 구분이 어렵다. 산란기를 금어기(禁漁期)로 묶는 보호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돗돔은 육질이 단단하고 담백하며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이 좋다. 참치맛 같기도 하고 일부 부위는 쇠고기와 비슷한 육즙의 향도 있다. 가장 맛있는 턱살을 입에 넣으면 씹는 듯 녹는 듯 천하일미. 나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유튜브와 신안군의 가거도 팸플릿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겼다.
 
 1907년 점등한 가거도 백년 등대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멀리 보이는 섬들이 국흘도.
ⓒ 신안군
가거도 백년 등대에서 잘 바라다 보이는 국흘도 소국흘도 개린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섬이다. 희귀한 여름철새들이 이동하는 길목에 있는 휴식처이자 번식지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국흘도는 바다제비 5만여 쌍이 번식하는 세계 최대의 번식지다. 높이 128m 정상부를 중심으로 까마귀쪽나무 예덕나무 군락이 거센 바람에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해안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경사가 가파르다. 바닷새는 사람이 살지 않고 포식동물의 접근이 어려운 무인도에서 번식을 한다.

국흘도에서는 바다제비 외에도 뿔쇠오리, 슴새 등 희귀한 바다철새들이 치어류를 잡아먹고 산다. 뿔쇠오리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개체 수는 1만 마리 이하로 추정된다. 슴새와 바다제비는 특이하게 바위틈이나 밀사초 사이에 굴을 파서 둥지로 이용한다. 후세로 종(種)을 이어가기 위한 힘겨운 삶의 모습이다.  

초대형 태풍에 맞서는 슈퍼 방파제

가거도 방파제는 1979년부터 2022년까지 40여 년간 공사를 벌여 완공했다. 2011년 8월 초강력 태풍 무이파가 가거도를 때렸을 때는 방파제 480m중 220m가 파손됐고 64t짜리 테트라포드(가지가 네 개 달린 마름쇠 모양 콘크리트 구조물) 2천여 개가 파손되거나 유실됐다.

가거도항과 해룡산 사이에 있는 광장에는 이때 방파제에서 날아온 테트라포드가 2013년(인터넷 블로그에 그해 찍은 사진이 남아 있음)까지 보존돼 있었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태풍의 위력을 보여주는 실물을 유적으로 남겨두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무이파 태풍이 휩쓸고간 직후에 김황식 국무총리가 박준영 전남지사, 박우량 신안군수와 함께 가거도를 방문해 '살 만한 가거도를 편안한 가거도로 만들기 위하여 다같이 노력합시다'라고 글을 남긴 비석이 광장 한 구석에 서 있다. 초대형 태풍으로 손상을 입은 테트라포드 유적은 '편안한 가거도'라는 이미지와는 배치될 것 같기도 하다.

태풍은 육지에 상륙하면 서서히 힘을 잃지만 바다 한가운데서는 갈수록 힘이 붙는다. 방파제를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도 자연의 강력한 힘을 제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슈퍼 방파제가 드디어 완공됐지만 큰 태풍이 지나고 나면 보강공사가 벌어지곤 한다.
 
 태풍 때 가거도항으로 긴급 피항한 어선들.
ⓒ 신안군
 
가거도 주민은 2002년 기준 404명. 주민등록만 섬에 두고 목포 등에 나가 사는 사람이 많아 실제 주민은 200명 정도. 흑산면 가거도리에는 마을이 세 개 있다. 1구 대리는 가거도 항구가 있는 마을로 제일 크다. 2구는 섬등반도가 있는 향리, 3구는 바다낚시가 잘 되는 대풍리다. 향리와 대풍리에는 빈집들이 많다. 대풍리에는 낚시꾼들이 별장으로 쓰려고 사둔 집들이 많아 향리처럼 을씨년스러운 폐가는 없다.
  
 해뜰목에서 내려다본 해식애 윗부분.
ⓒ 황호택
 
가거도는 육지에서 뱃길이 멀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됐다. 조류와 식생(植生)은 아열대 특성이 두드러진다. 가거도에서는 등산로를 찾을 필요가 없다. 차들이 어쩌다 한 대씩 다니니 차도가 곧 등산로다. 가거도에는 7구간의 공식 등산로가 있는데 내외지인들의 평가를 모아보면 동개해수욕장-달뜬목-해뜰목-삿갓재의 1구간 경치가 으뜸. 신안군이 세운 해뜰목 안내판은 시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쓴 듯한 만연체(蔓衍體).
 
망망대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는 섬 가거도 동쪽 해안에 물둥개 절벽과 고래 물 뿜는 절벽 위의 양갈래 능선 사이로 아침 햇살의 일출이 장관인 곳이 해뜰목이다. 서쪽으로는 빈지암과 구절곡, 북쪽으로는 태도(상,하) 흑산도 홍도, 동쪽으로 만재도 진도 조도가 보이는 곳으로 제주 한라산 뒤에서 용암이 끓어오르듯이 붉게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 명소이며, 200m 절벽 단애와 세찬 바람에도 자태를 뽐내는 각종 나무들 또한 이곳만의 감상의 포인트다.
 
달뜬목 안내판도 동일한 사람이 쓴 것 같다. 해뜰목은 일출(日出)이 아름다워 미래형이고 달뜬목은 달이 이미 떠 있을 때가 좋아 현재형 시제(時制)로 작명한 듯하다. 물둥개, 빈지암, 구절곡은 지명.
  
 달뜬목에서 바라다본 해뜰목(왼쪽 봉우리).
ⓒ 황호택
 
한밤중 달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을 섬사람들은 달뜬목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아련히 그리면서 오순도순 평화롭게 사는 이상향을 상상한 것이 달이다. '푸른하늘 은하수'라는 동요 속에 달이 있다면 달뜬목일 것이다. 가거도의 달뜬목에서 푸른 밤하늘의 달과 바다에 비치는 달 속에 방아 찧는 토끼 부부의 모습을 상상하면 옛 첫사랑이 찾아온다는 구전설화가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달뜬목과 해뜰목에서 바라다본 망망대해와 해변 풍경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이곳은 가거도의 제1경승이고 가거도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강제윤, 신안, 21세기북스, 2020 신안군, 가히 아름다워 살고 싶은 섬 가거도, 2022 황호택, 아주경제, <황호택의 탐방> 조기·슈퍼태풍·국가명승…해 가장 늦게 지는 가거도, 2022년 11월 16일 KBS 다큐, 전설의 대물 돗돔을 찾아서(2008년 7월23일 방송) 유튜브 어양차 바다야 https://www.youtube.com/watch?v=v6MR7oTu-BE&t=91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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