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 디자이너 부부가 일궈낸 가평의 아시 하우스 #홈터뷰

차민주 2024. 1. 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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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 가평으로 터전을 옮기며 사계절의 그림이 담기는 스테이 아시 하우스(@asi.house)를 연 디자이너 부부에게 그간의 여정에 대해 물었다. 정오의 따사로운 빛을 받는 그곳에서 나눈 투명하고 맑은 이야기. 열아홉 번째 #홈터뷰.

「 서울을 떠나 가평으로 」
서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자연과 가까운 가평으로 이사 온 하태웅(@hataewung), 송현정(@songhjung) 부부입니다. 덩치는 크지만 겁이 많고 느릿느릿한 밤이, 이제 두 살이 된 장꾸 벼루와 함께 주택 살이에 적응해 나가고 있어요.

이곳에서 매일 쓸고 닦고 먹고 싶은 빵도 만들어보고 텃밭도 가꾸면서, 도시에서 지내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작년 12월엔 오랫동안 공들여 지은 스테이 아시하우스(@asi.house)를 오픈해 첫 손님을 맞이하기도 했어요. 매일 아침이 기대되는 요즘입니다.

「 빈티지 창고 같았던 신혼집 아파트 」
이전에 살았던 아파트는 여행지에서 수집한 빈티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빈티지 상점의 창고와 같은 모습이었죠. 스테이할 계획이 없을 때 그저 예뻐서 구매했던 것들이 지금은 카페, 스테이 여기저기에서 활약 중이네요. 카페 도어 손잡이, 스테이 벽에 걸린 훅, 의자, 테이블 램프… 시선이 닿을 때마다 구매했던 가게의 풍경이나 그 시절 감정들이 떠올라 추억 여행에 빠지곤 해요.
「 소울 메이트 」
재작년까지만 해도 둘 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며 분주하게 지냈어요. 평일에는 일에 몰입하다 주말만 되면 항상 근교로 나가서 바람을 쐬고 들어오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꼭 서울에서 살아야 하지?’ 회사가 아니면 굳이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한적한 시골에 가서 살아보자고 마음을 먹었고 그때부터 주말마다 땅을 보러 다녔습니다.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3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둘 중 한 명이라도 도시의 삶에 미련이 있거나 커리어가 끊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면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테지만 저희는 다행히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잘 맞는 편이었어요. 서로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은 없었고 오히려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해 보면서 밤을 지새웠던 것 같아요.

「 파리로 가는 길 」
주말마다 이천, 양평, 가평, 양양, 강릉 등 많은 지역을 다녀보면서 대지의 기운을 느껴보곤 했어요. 울창한 숲 사이로 어떤 나무들은 뭐랄까 무서워 보이는 곳도 있었고 모든 조건이 완벽한데 예산이 안 맞는 곳도 있었고요. 조금 지쳐가고 있었을 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보고 이곳에 오게 됐어요. 오랜 시간 문을 열지 않아 거미줄이 쳐진 쾌쾌한 식당 건물 양옆으로 푸른 대지가 펼쳐져 있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예요. 직감이었죠.

험난하지만 즐거웠던 주말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던 그 날, 저희는 식당으로 쓰인 건물을 전체 리모델링하여 집과 스테이 리셉션으로 쓰고 스테이는 대지 위에 직접 지어 보기로 결정했어요. 집은 영화 〈파리로 가는 길〉에 나온 호텔 속 장면을 떠올리며 공간을 구상하고 디테일을 잡아갔는데요. 프랑스 여행을 좋아하는 저희는 영화 속 그 호텔에 한동안 푹 빠져 실제로 가서 묵은 적도 있어요. 앙티브에 위치한 Hotel Belles Rives라는 곳이에요. 로비 바닥의 패턴, 욕실 타일, 빈티지한 문고리, 수전, 세월이 흘러서 반들반들해진 나무 벽… 호텔 곳곳에 묻어나 있는 세월의 흔적들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웠어요. 집을 직접 고쳐보면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호텔처럼 1년, 5년, 10년 뒤 세월이 흐르면서 때 묻고 여기저기 덧입혀지고 우리만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채워질 공간을 상상하며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꼭 하고 싶었던 보조 주방 」
보조 주방은 꼭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아시하우스에 방문해 주신 손님분들께 내어드릴 조식, 쿠키류를 보조 주방에서 만들고 저희가 챙겨 먹을 음식들은 거실과 이어진 대면 주방에서 해 먹자는 계획이었죠. 하지만 한 7개월 정도 지내보니 보조 주방에서 모든 요리를 다 하고 대면 주방에서는 커피 정도만 내려 마시게 됐어요. 한 곳만 집중적으로 어지럽히는 게 관리하기 편하더라고요.
「 영감이 된 건축, 글라스하우스 」
집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자리한 아시하우스는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지은 글라스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아지었어요. 책을 여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글라스하우스만의 멋 부리지 않은 간결한 수직 구조,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실내로 끌어들인 미감에 반했었죠. 한 편의 시가 계절마다 다르게 읽히듯, 아시하우스가 계절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품고 투영해 주길 바라요.
「 가장 공들인 공정, 샷시 」
스테이 아시하우스를 지으면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샷시에요. 창밖의 자연과 온전히 체감할 수 있도록 3면을 크고 투명한 창으로 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가평이 워낙 춥다 보니 유리 벽이 과연 괜찮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요. 오히려 벽돌로 지어진 저희 집보다 스테이가 훨씬 더 따뜻해서 놀랐고 정말 다행이지 싶어요. 샷시에 제일 많이 투자했는데 후회가 없어요. 잘한 선택이었어요.
「 기억에 남는 빈티지 피스 」
테이블 램프예요. 디자이너 이름은 모르겠고 유명한 제품도 아니에요. 몇 년 전 파리 여행에 갔을 때 우연히 들른 빈티지 숍에서 발견한 조명인데요. 어지럽게 놓인 물건들 사이에서 이것만 반짝반짝 한눈에 들어왔어요. 갓은 한지와 비슷한 종이 재질이고, 바디는오렌지빛 가죽인데 두 소재가 아주 잘 어울리더라고요. 계산할 때 주인이 3대째 운영하고 있는 가게라고 소개를 해주셨는데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경우라 그런지 이 조명을 볼 때마다 그 가게가 생각나요. 아주 나이가 들어서 파리에 다시 가도 그 가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아요. 그때 또 멋진 피스를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 한 여름밤의 작은 영화제 」
가까운 미래엔 아주 작은 영화제를 열어보고 싶어요. 영화제라는 이름이 거창하지만, 아시하우스에 방문해 주신 손님분들과 함께 야외에서 영화를 보는 거예요. 밤이 되면 선선해지는 가평의 여름은 꽤나 운치 있거든요. 빈백에 누워서 와인도 마시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곤 합니다.

이 공간에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오래도록 편하게 찾아 주시는 곳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공간은 점차 바래 지고 머물고 가신 분들의 추억도 켜켜이 쌓여갈 거고요. 묵묵히 오래도록 이곳을 지켜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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