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엄지손톱만 한 우박…金과일 만든 '미친 날씨' 더 온다

천권필, 정은혜 2024. 1. 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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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에서 지난 10월 말에 발생한 우박 등의 기상 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과. 최효열씨 제공

" 매달 날씨와 전쟁을 치른 한 해였어요. "
경북 예천에서 30년 사과 농사를 한 최효열(64)씨는 지난 1년 동안 어느 때보다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봄에는 이상 고온으로 사과 꽃이 보름 일찍 피었다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져 꽃이 얼었다. 20%가 착과(열매가 열림)를 못 했다. 여름과 가을에는 폭우와 고온이 겹치면서 과수 전염병이 돌았다. 출하를 불과 2주 앞둔 10월 말에는 굵은 우박이 떨어지는 바람에 사과가 줄줄이 멍들고 썩었다. 최씨는 “천재지변으로 사과 수확량이 1년 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주변에는 우박 때문에 며칠간 밥도 못 먹고 앓아누운 농장주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세기 만에 가장 덥고 기온 변화 컸던 2023년


지난 1년간 “날씨가 미쳤다”고 했던 농부와 시민들의 하소연은 허언이 아니었다. 중앙일보가 기상청이 전국 관측을 시작한 1973년부터 지난해까지 51년 동안 전국 62개 지점의 기온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지난해 평균기온은 13.7도로 반세기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높았다. 기존 최고 기록이었던 2016년(13.4도)보다 0.3도 올랐다. 평균 최고기온과 최저기온 역시 각각 19.2도와 8.9도로 신기록을 세웠다.
김경진 기자

특히 기온 변동이 심했다. 겨울철을 중심으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1월과 11월, 12월의 평균기온 격차(일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과 낮았던 날의 격차)는 각각 월별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지난 12월은 20.6도의 기온 편차를 보이면서 계절에 관계없이 가장 큰 차이가 났다.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우면서도 극단적인 날씨를 오간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기후변화의 두 얼굴로 불리는 온난화와 변동성 증가가 동시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런 ‘미친 날씨’로 인해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하고 과일은 금값이 된 셈이다.


줄어든 생산량에 과일 금값 됐다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사과. 연합뉴스
기후과학자들은 최근 온난화보다 기온의 변동성에 주목하고 있다. 온난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것과 달리 급격한 기온 변화는 계절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동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등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같은 봄, 가을 같은 겨울이 나타났던 것처럼 이상고온·저온 현상이 잦아지면 농작물의 생장에 직접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봄부터 이어진 이상기후 현상의 여파로 과일을 비롯한 농작물 생산량은 줄줄이 감소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와 단감 생산량은 전년보다 각각 25%와 32%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배 생산량 역시 19%가량 줄었다. 생육기에 기상 악화로 착과 수가 줄고 서리·우박 피해가 컸던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김원태 농촌경제연구원 원예실장은 “2010년대 이후부터 냉해 같은 기상재해로 인한 피해가 잦아지고 있다”며 “집중호우 이후 고온이 지속되면서 수확기에는 탄저병이 크게 퍼져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생산량 감소는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2일 기준으로 사과와 배의 가격은 10개당 2만 9700원과 3만 3900원이다. 1년 전보다 각각 35.7%, 32.5% 비싸졌다. 겨울이 제철인 딸기 역시 이상고온 여파로 초겨울에 출하량이 줄면서 금값이 됐다. 경기 안산에서 딸기 농장을 하는 정미근 대림농장 대표는 “올가을부터 날씨가 더워서 보통 12월 초에 딸기를 출하하는데 12월 셋째 주까지 출하가 늦어졌다”며 “딸기 농가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라 딸기 가격이 급등한 것”이라고 했다.


한겨울 부산에 우박…“더 극단적 기상 변화 온다”


위에서부터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내린 비. 보름 뒤인 30일에 경복궁에 폭설이 내리는 모습. 뉴스1, 연합뉴스
기온 변동성이 극대화되는 겨울에는 혹독한 한파나 기상 이변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겨울에도 12월 한 달 동안 이상고온과 북극한파, 폭우와 폭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부산에는 엄지손톱만 한 우박이 쏟아지는 등 전례 없는 기상 현상도 경험했다. 기후학자들은 계절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계절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기상 재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12월 6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의 한 보행로에 우박이 낙엽과 함께 떨어져 있다. 뉴시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겨울철의 급격한 기온 변동과 한겨울 우박 등의 이상 현상은 더는 한반도의 겨울이 춥고 건조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반도 남쪽의 웜풀(Warm Pool·열대 해역)과 북쪽의 북극이 빠르게 온난화되면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두 세력 간의 힘의 충돌이 강해지고, 이는 더 극단적인 기상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변동성 증가로 기후 리스크 커져…대비 시스템 갖춰야”


겨울비가 내린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스1
올해에는 기후변화와 엘니뇨의 영향으로 더 강력한 기상 이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여름에 발생한 엘니뇨는 이듬해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2024년은 지난해보다 덥고, 극단적인 날씨 변화가 나타나는 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금 추세대로 날씨의 변동 폭이 커지고 사계절의 경계가 무너지면 농업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기후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며 “기상 변화에 대한 예측 능력을 키우고 모니터링을 강화해 극한 기상에 즉각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권필·정은혜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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