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일상에서 찾은 소소한 행복… 하루하루가 감사하죠”

민태원 2024. 1. 2.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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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건강 책방 찾는 사람들의 새해 소망 들어보니
결혼 53년 유인선·김숙자 부부
“행복한 결혼생활, 음식·운동보다
건강수명 연장에 도움을 준다”

선천성심장병환우회 ‘등반’ 도전
내달 안나푸르나 트레킹 맹훈련
편견 깨고자 등반 프로젝트 시작

삼중음성유방암 환우회 대표
“환우들이 암과 싸울 때 옆에서
힘이 되어줄 한 해 됐으면 좋겠다”

유인선(왼쪽)·김숙자씨 부부가 최근 찾은 건강 책방 ‘일일호일’에서 책을 골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일일호일 제공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매일 매일 건강한(좋은) 하루’라는 의미의 한옥 책방 ‘일일호일(日日好日)’이 있다. 2021년 1월 문을 연 국내 최초의 건강 책방이다. 서울 서촌의 ‘건강 사랑방’이란 별칭에 걸맞게 이곳에선 지역 주민은 물론 부산·제주도 등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 어린이 건강교실에 참여한 꼬마, 백발이 아름다운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쉼을 누린다. 또 독서 모임으로 삶을 치유하는 암 환자, 건강 책을 출간한 작가, 봉사활동을 하는 의대생 등도 종종 발걸음한다. 국내 1호 건강 책방을 찾는 이들의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올해로 결혼 53년을 맞은 유인선(77) 김숙자(74)씨 부부는 일일호일의 단골이다. 노부부는 건강에 관심이 많고 좋은 책에서 발견한 생각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해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

함께 책방을 찾아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지인들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는 부부를 보면 “행복한 결혼생활이 좋은 음식이나 운동보다 건강수명 연장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마르타 자라스카의 저서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 중)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처럼 남편과 매일 산책하고 좋아하는 곳을 방문하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고 싶어요. 동네 문화센터에서 동양화를 배우는데, 아주 재미있어요. 늦게 시작한 그림이지만 작은 전시회를 여는 꿈도 이뤘습니다. 요즘에는 산책하며 만난 꽃과 나무들을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김숙자)

김씨는 “새해에는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길 희망한다”며 활짝 웃었다.

남편 유씨는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뒷산을 오르고 있다”며 “올해에도 나의 건강한 두 다리로 세상을 누비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는 특히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소중함을 느낀다고 했다.

“나 같은 노년의 남성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거예요. 일상을 함께 할 짝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죠. 새해에는 우리 왕비(아내)를 더 사랑하고 함께 건강한 곳을 찾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보내고 싶어요.”(유인선)

다음 달 히말라야의 해발 4130m 안나푸르나 BC 트레킹에 도전하는 선천성심장병환우회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 대원들. 일일호일 제공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는 다음 달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BC(4130m) 트레킹에 나선다. 선천성심장병 어린이는 체력이 약해 등산 같은 운동은 무리일 것이라는 세상의 편견을 바꾸기 위해 시작된 등반 프로젝트다. 전국에서 모인 선천성심장병 환아와 보호자, 의료진, 스포츠과학 연구원 등이 팀을 꾸려 매년 새로운 산을 오르고 있다. 추운 날씨와 고산병에 대비해 히말라야 원정대는 지난해 3월부터 20여 차례 단체 산행 훈련을 진행했다.

이번 원정대에 참가한 문준호(14) 함우진(13) 강찬율(13) 조병준(12)군은 일일호일이 운영하는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등반 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해 환우회 대표와 함께 얼마 전 책방을 찾았다. 문준호군은 “처음 산에 오를 때는 정말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 ‘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오르다 보니 히말라야 등반도 도전하게 됐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문군은 다른 친구들보다 등반을 늦게 시작해 연습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 매일 5번씩 29층 계단을 오르며 체력을 키우고 있다. 문군은 “히말라야 원정대는 초등학교 졸업식도 포기하고 도전하는 목표”라며 “많은 어른이 아직 저 같은 선천성심장병 아이들은 ‘몸이 약하고 달리기도 못 할 것이다’고 생각하는데, 올해 히말라야 트레킹에 도전해 그런 편견을 꼭 깨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다섯 살 때 처음 산에 올랐다는 강찬율군도 “그땐 지금보다 작았고 힘도 약해서 중간에 업히기도 하며 등반했는데, 8년이 지난 지금은 원정대 앞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뿌듯해 했다. 강군은 또 “그동안 많은 산을 올랐지만 히말라야가 갖는 의미는 남다른 것 같다. 엄마와 함께 꼭 트레킹에 성공해 대원 친구들과 신나게 눈싸움도 하고 깨끗한 눈도 맛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삼중음성유방암환우회 ‘우리두리구슬하나’ 이두리 대표(왼쪽)가 환우들과 활동하는 모습. 이두리씨 제공


삼중음성유방암 환우회 ‘우리두리구슬하나’ 이두리(36) 대표는 환우들과 매달 일일호일에서 독서 모임을 가지며 인연을 맺었다. 삼중음성유방암은 호르몬 수용체 2가지와 HER2 수용체를 모두 갖지 않은 난치성 유방암의 한 유형이다. 비교적 젊은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하고 암의 진행이 공격적인 데 반해 쓸 수 있는 치료제가 제한적이다. 이 대표 역시 2019년 해당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재발·전이로 인해 80차례 넘는 항암과 수술,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매일 여섯 살 딸과 함께 맞이하는 아침이 선물처럼 감사해요. 암 4기 판정을 받은 후, 곧 죽을 것만 같던 하루하루가 감사하게도 그렇게 한 달, 두 달 쌓이더니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크게 욕심내지 않고 지금처럼 감사한 매일이 이어지며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가족과도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이두리)

아울러 이 대표는 “환자단체 대표로서 책임감도 크다”면서 “환우들이 암과 싸울 때 옆에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2024년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책 출간을 계기로 ‘일일호일’과 인연을 맺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씨. 안주연씨 제공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의 저자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안주연씨는 일일호일에서 책 특별전시와 인터뷰, 강연 등을 진행하며 우리 사회의 번아웃 문제를 지속 제기해 왔다. 그는 “번아웃의 근본 원인은 개인이 취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을 착취하는 기업과 사회 전체에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업과 사회의 각성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안씨는 부모 대상으로 ‘육아 번아웃’에 관한 강연을 진행하며 행복한 육아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저는 사회의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자신과 타인의 정신건강을 돌볼 수 있는 동기를 증진하는데 관심이 많아요. 이를 위해선 ‘심리적 안전’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심리적 안전은 원래 기업 정신건강에서 ‘일에 관련돼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비난받거나 처벌받지 않는 분위기’를 뜻하는데요. 사회 전반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빈틈과 실수를 포용하고, 오히려 이를 통해 성장하고 연결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안주연)

난치성 환아와 함께 펴낸 에세이집 북토크를 일일호일에서 진행했던 의대생 조홍찬씨. 조홍찬씨 제공


의대생 조홍찬(30)씨는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 희귀난치성 환아와 함께 제작한 에세이집의 북 토크를 일일호일에서 열었다. 또 학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의료봉사 활동을 이어가며 마음 따뜻한 의료인이 되려 노력 중이다. 그는 “제 소망은 사회에서 소외된 많은 이들이 힘든 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한 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봉사하다 보면 쪽방촌 주민, 노숙인, 병원에 계신 희귀난치질환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들이 병원비가 현실적으로 부담돼서, 질병에 맞는 적합한 치료제가 없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무엇보다 아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 더 외롭고 고통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이들을 위한 행정·제도적 대책에 앞서, 같이 공감하고 따듯한 말이나 눈빛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요? 새해에는 조금 더 온기 어린 세상이 되길 바라봅니다.”(조홍찬)

책방지기 김민정씨 새해 소망은
“오늘의 건강에 집중하면 새해에도 건강한 한해가 될 것”

‘일일호일(日日好日)’은 헬스커뮤니케이션 회사 엔자임헬스가 60년 넘은 전통 한옥을 개조해 책방으로 꾸민 공간이다. 145㎡ 공간 한 켠에 건강한 사회, 동식물과의 공존, 환경과 생태 등 확장된 개념의 건강책 100여권을 전시해 놓았다. 이곳은 책방을 넘어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인 건강을 함께 공부하고 경험하고 이야기하며 나누는 소통의 플랫폼을 지향한다.

건강책 관련 큐레이션 전시와 저자와 함께하는 북 토크, 독서모임, 건강교실, 환우회 교류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월 2500명 안팎이 찾아와 지금까지 9만여명이 방문했다. 책방지기 김민정(사진)씨의 새해 소망은 뭘까.

“2024년 저의 소망은 일일호일입니다. 매일 매일 건강한 하루라는 의미는 매일 매일이 완벽하게 건강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언제부터인가 건강도 스펙이나 자산과 같은 목표로 삼고 있는데요.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란 말처럼 건강도 결과나 목표가 아닌, 만들어가는 매일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씨는 “‘내일의 식스팩’ ‘미래의 건강’이 아니라 오늘의 건강, 나의 하루를 조금 더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하다 보면 매일 매일이 건강한 2024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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