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보다 경이로운 60대…반팔∙반바지 차림 북한산 정상 올라
1일 새벽 4시 서울 강북구 북한산 국립공원 탐방로 입구가 열리자 방한용품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큰 배낭을 멘 등산객들이 하나둘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 속으로 들어갔다. 면식도 없는 이들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주고받았다. 탐방로 입구인 지원센터에는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에 나선 국민구조단원들이 “생각보다 아주 미끄럽습니다. 아이젠 착용하고 올라가셔야 해요”라고 외쳤다. 겨울철 등산용품을 미처 챙겨오지 않은 등산객을 위해서는 아이젠과 스틱을 빌려주기도 했다.
갑진년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400여명의 시민이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몰린 이 날, 수많은 등산객 뒤에는 밤낮으로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북한산 국립공원 특수구조대(구조대)가 있었다. 구조대는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탐방로 위 거점 4곳을 두고 각 거점에 2~3명씩 준비 태세를 완비했다. 새해 첫날처럼 사람이 몰리는 날에는 봉사 개념의 국민구조단 시민도 출동한다. 이날도 15명의 국민구조단 단원들이 탐방로 곳곳에 대기하며 등산객의 안전을 지켰다. 취재진은 구조대원들과 함께 새벽 일출 산길에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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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새해 첫 산행길…“아이젠 차도 안심 금지”
김 대장은 지난해 1월 1일 북한산에서 일어났던 사고를 생생히 기억했다.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500여명이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오른 날이었다. 일출을 보고 하산하려던 20대 여성이 저체온증으로 의식을 잃었다. 옷과 속옷까지 다 젖고, 이름과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도 대답을 못 할 정도였다. 특수구조대는 즉시 출동해 환자의 옷을 다 벗긴 다음 몸을 문질러 열을 내고, 소방헬기를 출동시켜 환자를 구조했다. 김 대장은 “헬기가 떠서 센 바람을 몰아 다들 난간을 잡고 내려가지 못하고 정상에 500여명이 적체되면서 구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이날 일출 산행은 큰 부상 사고 없이 끝났지만, 경미한 사고가 잇따랐다. 오전 8시 30분쯤 정상 부근에서 저체온증 환자가 발생해 국민구조단과 시민 2명이 장갑과 우의를 입혀주며 긴급 구호 조치를 취했다. 저체온증을 겪은 민모(26)씨는 “좀 춥긴 했지만, 몸이 안 좋은지는 몰랐는데 주변에서 많이 떤다고 알려줬다”며 “아이젠, 등산화는 준비했는데 경량 패딩은 챙길 생각을 못 했다. 다음엔 더 준비를 잘해서 또 일출을 보러 오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젠을 착용해도 빙판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도 간간이 보였다.
겨울철 산악 사고 잇따라…안전 책임지는 특수구조대
때문에 구조대는 구조 활동 뿐 아니라 산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위험해 보이는 등산객을 계도한다. 김 대장은 운동화에 트레이닝복 차림의 20대에게 “이렇게 입으면 안 된다. 올라가다가 힘들면 절대 무리하지 말고 내려오라”고 얘기했다. 이밖에도 스니커즈나 어그부츠를 신고 오거나 수면바지 차림 등 복장 불량 등산객이 많았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맨살을 드러내며 정상에 나타난 오주원(61)씨는 아이젠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 등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씨는 “20년 넘게 산을 탔기 때문에 이 정도는 끄떡없다”고 말했다.
오전 7시 47분. 해의 붉은 곡선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나타내자 사람들의 환호가 “오~” 하고 터져 나왔다. 백운대 꼭대기에 꽂힌 태극기 부근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리가 들려왔다. 인천에서 혼자 일출을 보러 온 곽성민(36)씨는 “여자친구가 체력이 약해 대신 소원을 빌러 왔다”며 “북한산은 처음인데 올라올 땐 힘들었지만 정상에 오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의지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온 심재희(24·여)씨는 “새해를 맞는 마음을 다잡고 싶어서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올랐다”며 “지금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더 의지를 갖고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서윤ㆍ박종서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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