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봉투 값도 못냈다"…북적이던 송탄터미널, 쓸쓸한 폐업 [르포]
“예전엔 굉장했지. 분식이라는 게 빨리 나오고 빨리 먹고 가는 음식이잖아. 버스 타기 전에 손님들 내가 많이 먹여 보냈지. 추우면 여기서 먹으면서 기다리고. 연말 되면 어디 가는 사람들로 터미널이 꽉 찼어. 북적북적 연말 분위기가 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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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1200명 기댄 송탄터미널 ‘마지막 날’
1989년 문을 연 송탄터미널은 34년 동안 시민들의 발 역할을 했다. 수년 전까지 10평 남짓 작은 대합실에 직원 6명이 상주하며 표도 직접 팔고, 승객들을 안내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승객 수가 줄어든 데다, 모바일 앱을 통한 발권이 늘면서 대합실에 머무는 유동 인구도 줄었다. 그러자 상가 임대료가 급감하고 경영이 악화하면서 지난해 1월부터 매표소 대신 무인발권기가 자리 잡았다. 운영 업체 김범수 지사장은 “인건비가 안 나오는 상황에서 난방비, 전기세, 쓰레기봉투 등 최소한의 유지비도 감당하기 어려워 폐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200여명에 달하던 하루 이용객은 지금은 100명 미만, 버스 노선도 19개에서 10개로 쪼그라들었다.
매일 평택과 동서울을 오가며 승객을 실어나르는 버스 기사 나성국(60)씨는 “승객들이 거의 다 출퇴근하는 분들인데 ‘당장 새해부터는 어떻게 출근하냐’고 걱정한다. 버스로는 1시간이면 가는데, 지하철론 환승도 하고 2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평택시는 대안으로 터미널에서 동쪽으로 80m 떨어진 도로변에 간이 정류장을 만들고 일부 노선을 유지해 이용객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터미널 없어지면 병원 못 가”…지방 고립 위험
특히 이날 영월터미널에는 병원을 가려는 노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터미널은 절대 없어지면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 영월에 병원이 많지 않아 제천·원주까지 통원해야 하는 데 노인들로선 버스 없이는 병원을 못 다닐 상황이기 때문이다. 손모(78·여)씨는 “이빨이 아프고 다리도 아파서 한 달에 대여섯번은 버스를 타는데 터미널이 없어지면 불편해서 못 산다. 없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연신 말했다.
전국 교통망을 잇는 모세혈관 역할을 하던 터미널이 사라지고 있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터미널협회)에 따르면 전국 버스터미널 수는 2018년 326곳에서 지난해 296곳으로 6년 만에 31곳 줄었다. 송탄터미널이 1일 문을 닫으면 폐업 터미널 수는 총 32곳으로 늘어난다. 지난 한해만 1월에 경기 성남터미널과 전북 익산 고속버스터미널, 6월 경기 고양 화정터미널, 11월 서울 상봉터미널까지 총 4곳이 폐업했다.
내년에는 문 닫는 터미널이 더 많아질 수 있다. 김정훈 터미널협회 사무국장은 “인구 밀도가 낮고, 고령화 비율이 높은 군 소재지 터미널 157곳도 내년에 상당수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했다. 여당은 국민의힘과 국토교통부도 터미널 줄폐업을 막기 위해 지난해 8월 ‘버스·터미널 서비스 안정화 방안 당정협의회’를 열고 시설 규제 완화와 재산세 감면 등을 논의했지만, 수익성을 개선할 묘책은 내놓지 못했다.
터미널이 사라지면 지방 고립을 더욱 심화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터미널이 없어지면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일부 지역에선 철도 노선을 무작정 늘리는 것보다 보다 탄력적 대응이 가능한 버스를 존치하는 게 교통복지에도 좋고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장서윤ㆍ김대권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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