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400억 금호강 르네상스 삽질, 고민 끝에 벌인 일

정수근 2023. 12. 3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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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팔현습지에서부터 포항 죽장 가사리까지 금호강의 시원을 찾아가다

[정수근 기자]

 첩첩산중 금호강 발원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협곡 가운데 보이는 저수지가 금호강 발원지 '가사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금호강에 위기가 찾아왔다. 2023년 12월 금호강 팔현습지에는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토건 '삽질'을 강행하고 있고, 대구시는 올 연말에 금호강 르네상스 예산으로 400억 원 정부 예산을 따내 2024년부터 본격적인 금호강 르네상스 '삽질'을 예고하고 있다.

이것은 금호강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강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 생명에는 물론 인간도 포함될 것이다. 금호강은 대구의 젖줄이요, 인근 경산시의 식수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위기의 시간을 어떻게 맞을 것이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금호강을 전체적으로 한번 조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금호강 대구 구간을 넘어 금호강 발원지를 찾아 상류로 이동해보고 싶어졌다.

지난 29일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함께 금호강 발원지를 찾아 길을 나선 이유다. 금호강의 원류를 찾아가 그곳에서 이 위기의 시간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금호강 발원지 탐사는 시작됐다.

금호강 발원지
 
 첩첩산중을 금호강의 원류가 흘러가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발원지라 함은 금호강이 시작된 지점으로 그곳은 첩첩산중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첩첩산중에는 수많은 '생명의 신'이 인간 세계를 굽어보고 있을 것이다. 그 생명의 신들을 만나 이 위기를 극복할 묘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이번 금호강 발원지 탐사는 팔현습지를 시작으로 금호강을 따라서 이동하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곳곳의 금호강의 모습을 조망해봤다. 이동 동선은 팔현습지에서 시작해 안심습지를 지나 하양을 거쳐 영천으로 가서 영천의 여러 습지도 둘러보고 영천댐으로 향한다.

영천댐 너머는 협곡으로 첩첩산중을 향해 길을 재촉해 포항 죽장으로 달려 가사리 발원지에서 이번 여행은 마무리된다. 대구에서 시작된 기행은 영천시를 거쳐 포항시에서 마무리됐다.
  
 팔현습지 가천잠수교에서 본 고니 부부. 지척까지 와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먼저 팔현습지에서는 운 좋게도 가까이서 고니 부부를 만났다. 그것도 지척에서. 가천잠수교에서 고니들의 우아한 유영을 한참 구경하다 바로 지척인 안심습지로 향했다.
이른 시간 둘러본 안심습지는 철새들의 영토였다. 특히 수십 마리의 고니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 마치 안심습지의 터줏대감마냥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안개 피어오르고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이 역광으로 비치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곳에 고니들이 노닐고 있다. 신비한 분위기가 풍기는 안심습지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철새들과 습지와 아침햇살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은 경산 하양으로 이어지고 금호강을 따라 난 길은 영천시로 곧장 이어진다. 금호강은 영천시가지를 관통해서 흐른다.

영천이 바로 금호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도시란 것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금호강이 영천시의 큰 상징적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상당한 부분 하천둔치에서 개발이 이루어졌지만, 이와 반대로 도심에 너른 갈대밭도 함께 존재해 인공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가는 듯한 인상이다.

도심을 벗어나면 금호강은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을 찾아간다. 영천시가지를 벗어나면 시골이고 개발이 크지 않아 산과 강이 자연스레 연결된 그런 중요한 핵심 생태 구간이 적지 않다.
 
 산과 강이 연결된 생태적 온전성이 살아 있는 금호강. 그러나 뒤쪽 둔치엔 파크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영천시 영록교 주변 금호강 둔치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중에 한 곳이 영록교 주변인데 이곳엔 아쉽게도 그 너른 둔치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서 있어 큰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너른 둔치를 그대로 금호강의 영역으로 놔뒀다면 이름난 습지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입지였다. 아쉬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대환교 주변은 온전한 습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낮은 산과 그 앞에 작은 마을 그리고 금호강이 연결된 곳으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필시 저 습지엔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그곳을 안식처 삼아 살아가리라 짐작해본다.
 
 산과 강이 연결된 생태적 온전성이 살아있는 영천 금호강 습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다양한 형태의 습지 구경을 마치고 이번엔 금호강의 물길을 막아세운 영천댐으로 향했다. 영천댐 고갯마루를 넘어서는 순간 댐에 가득한 물을 보고 우선 놀랐다. 한겨울임에도 많은 물을 저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은 댐을 끼고 구불구불 이어진다. 영천댐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상류로 이동했다. 댐의 중간 지점에 이르면 망향공원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영천댐을 만들면서 수몰된 마을과 그 주민들, 즉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을 위로하고자 2013년 만들어진 기억의 공간이다.

2층으로 이루어진 전시실에는 주민들로부터 기증받은 물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특히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빛바랜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그 사진 안에는 댐으로 수몰되기 이전의 아름다웠던 마을 공동체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망향공원 내부 전시실. 실향민의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딱 걸린 금호강 상류의 엉터리 '삽질' 현장

망향공원을 나와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댐을 벗어나 상류 골짜기로 접어든다. 그 상류는 전부 협곡이다. 산과 산 사이를 요리조리 흘러가는 협곡 사이의 금호강이 이어진다.

금호강은 영천시가지를 막 벗어나고, 고촌천이 합수하는 딱 그 지점부터 자호천으로 바뀐다. 강이 천으로 바뀌는 것이다. 즉 금호강의 상류는 자호천이고 그 자호천이 발원지까지 이어진다. 자호천은 맨 상류 강답게 자갈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갈밭을 스치듯 흘러가는 강 그런데 맑은 강물이 아닌 흙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이 상류에 무슨 하천공사를." 혼잣말을 하고는 이내 흙탕물의 원인을 찾아 더 상류로 올라갔다. 이동한 지 그리 길지 않은 지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냈다. 그것은 경상북도가 발주하고 ㈜영안건설이 시공하는 '자호천 재해복구사업'의 일환이었다.
 
 흙탕물을 강으로 그대로 내보내고 있다. 침사지도 오탁방지막도 없이.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왼쪽은 공사를 하지 않는 곳을 흐르는 원래 물줄기고 오른쪽 공사 현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흙탕물이다. 어떠한 수질오염 방지 장치도 없이 흙탕물이 그대로 본류로 들어가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기존 교량 옆에 새로운 교량을 건설하는 공사를 하면서 터파기 등으로 그곳에서 발생한 흙탕물을 그대로 강으로 방출하고 있었다. 그 흔한 오탁방지막조차 하나 없이 그대로 흙탕물을 내보내는 '배짱 공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의 일단이다. 누가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즉 감시의 눈이 없는 시골이라 최소한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자기들 편의적인 막무가내식 하천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당장 현장 사무실을 찾아 항의했다. 현장을 비워 전화로 연결된 현장 소장은 오탁방지막이 사라진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오탁방지막을 몇 개 설치했었는데 지난 비로 다 쓸려내려간 것 같다. 당장 현장을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겠다" 해명한다.
 
 경상북도가 발주한 사업을 맡은 시공사가 엉터리 삽질을 벌이다 딱 걸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새로운 교량 공사 터파기 작업을 하면서 나온 흙탕물.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러나 오탁방지막만으로는 저 흙탕물을 잡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침사지를 만들어서 흙탕물을 충분히 가라앉힌 다음 그 물을 방류하는 것이 기본 매뉴얼인데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는 현장을 잘 본 적이 없다. 발주처인 경상북도의 꼼꼼한 점검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영천댐 바로 직상류에서 이루어지는 일로 이 흙탕물이 곧 영천댐으로 그대로 흘러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의 현장을 떠나 곧장 발원지로 찾아갔다. 조금 더 올라가지 않아, 시 경계가 나오고 시가 바뀌었다. 영천시에서 포항시로 바뀌어 포항시 죽장면으로 접어들었다. 죽장면 소재지도 벗어나 상류로 더 상류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이제 계곡의 형태를 보여준다. 자호천도 더 작은 하천인 가사천으로 이름을 바뀌어 흘러간다. 가사천은 골짜기를 따라 요리조리 흐른다. 이윽고 그 경계에 이르렀다. 가사4교에서 차를 내려 이젠 두 발로 탐사를 계속 이어간다.

금호강 발원지에서 '오래된 미래'를 희망하다
 
 금호강 발원지를 찾아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산길을 1㎞ 정도 올라가자 작은 사방댐을 만났다. 사방댐으로 작은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저수지는 꽝꽝 얼어 있었다. 그리고 저수지 왼쪽과 오른쪽으로 골짜기는 이어져 있고 그곳에서 졸졸 시냇물처럼 강물이 흘러들고 있었다.

그 상류는 사유지라 더 들어갈 수 없었다. 졸졸 흐르는 흐름은 더 상류로까지 이어지겠지만 서서히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결론을 내렸다. 졸졸 흐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 발원지를 이곳 저수지로 삼는 것이 합당하겠다고.

마치 낙동강의 황지처럼 이곳 금호강도 이 저수지가 실질적 발원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름 없는 이 저수지를 '가사지'로 부르기로 했다. 가사지가 금호강의 발원지가 된 순간이다. 우리는 기념으로 꽝꽝 언 가사지를 횡단하는 모험도 벌이면서 발원지를 만끽했다.
 
 골짜기들이 모이는 곳에 만들어진 사방댐으로 인해 작은 저수지가 만들어졌다. 이곳을 금호강 발원지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였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발원지 가사지가 꽝꽝 얼어 그 위를 횡단하는 모험도 벌여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렇게 금호강 발원지를 찾아 떠나온 여정은 마무리됐다. 금호강은 포항시 죽장면 가사리 인근에서 발원해 영천시와 경산시 하양읍을 지나 대구로 이어진다. 도도히 흐르는 강은 아주 맑았다. 저 상류에서부터 팔현습지에 이르기까지 겨울이라 특히 맑은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겨울 치고 수량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저 상류에서부터 맨 하류 대구 달서구까지 맑고도 도도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것은 정말 낯설지만 우리가 되찾아야 금호강의 '오래된 미래'였다. 산업화 시절을 기적적으로 극복하고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강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마치 내다버린 자식이 건장한 청년으로 멋지게 성장해서 되돌아온 그런 느낌이다. 그 청년이 이곳에 안착해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우리의 도리일 것이다. 환경부발 '삽질'과 대구시발 '삽질'을 크게 우려하는 이유이고, 지금이라도 근본에서부터 다시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삽질'이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발원지에서 시작된 강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간다. 이것이 금호강의 시작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포항 죽장에서 시작된 이 아름다운 흐름이 낙동강과 만나는 맨 하류까지 그대로 이어지기를 소망해본다. 내년에는 환경부도 환경부다운 처신을 하고, 대구시도 대구의 젖줄인 금호강을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공생하는 그런 희망의 공간으로 만들어갈 것을 기대해 본다."

함께 동행한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원회' 박호석 대표의 소망이다. 금호강을 사랑하는 우리들 모두의 소망이기도 한 것이고.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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