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하는 여성도 있다니... 후속작이 간절한 이유

고은 2023. 12. 2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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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올해 최고의 예능]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 불의 섬>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23년 나를 가장 즐겁게 한 '최고의 예능'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고은 기자]

12월이 되면 마음이 분주하다. 거리를 잇는 알전구들과 흘러나오는 캐럴이 한몫했지만 아무래도 각종 분야에서 '올해의 키워드'가 쏟아져서인 것 같다. 음악 어플이 보여주는 '올해의 음악'을 친구들이 SNS에 공유하면 나도 서둘러 내 취향의 통계를 살피게 된다. 아마존, 월 스트리트 저널이 뽑은 '올해의 책'은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데 멋쩍게도 책 표지만 익숙하다.

한 해를 갈무리하는 '올해의 OO' 키워드가 놓친 것을 주워담는 장이 될 때 마음이 급해진다. 각자에게 중요하게 남은 한 장면을 알게 되는 정도로 키워드를 읽으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꼽은 '올해의 한 장면'은 바로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불의섬>이다. 읽는 사람도 아이 쇼핑하는 기분으로 2023년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넷플릭스] 사이렌: 불의 섬 | 공식 예고편 캡처
ⓒ 넷플릭스
 
<사이렌: 불의 섬>을 통해 만난 구체적인 얼굴들

집으로 가려면 소방안전센터와 치안센터를 순서대로 지나야 한다. 소방센터 건물 외관에는 숫자 119가 쓰인 커다란 빨간 간판이 있는데, 내릴 곳을 가늠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119를 발견하면 세 정거장 뒤에 도착하니 이어폰 한쪽을 빼는 식이다. 나만 아는 랜드마크에서 구체적인 얼굴을 발견하게 된 것은 <사이렌: 불의 섬>을 정주행한 이후부터였다.

확률과 실익은 모른다는 듯이 그저 돌진하고 보는 '소방팀' 같은 사람들이 내가 지나치는 소방서 안에 있다니.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에 타는 건물 안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장면이 자동으로 연상됐다. 집 가까이 소방서와 치안센터가 있다는 게 안심이 된 순간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사이렌: 불의 섬>(이하 사이렌)은 대한민국 전체는 아니더라도 나와 주변 친구들의 여름은 확실하게 뒤흔들었다. <사이렌>은 소방팀, 경찰팀, 군인팀, 스턴트팀, 운동팀, 경호팀 총 6개의 직군에 종사하는 직업인들이 6박 7일 동안 직업적 명예를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직업을 내세워 벌이는 서바이벌 예능은 지금껏 많이 나왔지만 사이렌은 달랐다. '남성'으로 대표되는 6개 직군에서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여성'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일이 곧 생존 투쟁의 과정이었던 사람들
 
 <사이렌> 소방팀 리더 '김현아' 소방관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이런 경향
 
출연진들은 서로 다른 직군에 종사하지만 비슷한 감각을 공유한다. 이들은 두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 사람을 살리고 구하고 지키는 직업인으로서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여성으로서 과연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 안팎의 편견 섞인 시선을 깨면서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이들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동료가 아니라 여자의 대명사로 인식된다. 뭐 하나면 잘못해도 '역시 여자가', '여자니까 안돼'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환경에서 무엇 하나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터가 이미 거대한 서바이벌의 장이었던 출연진들 앞에 제대로 된 판이 깔렸다. 이들은 도착 첫날부터 맨몸으로 갯벌을 가로지르는 미션에 던져진다. 걸을수록 발이 푹푹 빠지는, 신발이 벗겨져 각종 조개껍질에 발이 찔리는 갯벌이 그들이 지나온 길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팀별로 60kg짜리의 깃발을 들고 무인도를 돌아와야 했는데 낙오의 위기를 몇 번이고 이겨내면서 모든 출연진이 끝까지 완주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왔던 끈기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사이렌> 첫번째 미션인 갯벌 횡단을 진행하는 경찰팀의 모습
ⓒ 넷플릭스
 
출연진들은 서로를 '여성'이라는 대명사로 인식하지 않으니 화면 너머에서도 직업적 역량이 마음껏 드러났다. 직업군마다 달라지는 집단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을 따라가며 다름 화를 홀린 듯이 클릭했다. 경찰팀의 경우 첫 번째로 탈락해서 더 많은 플레이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팀 기지가 정해지고 나서 가장 먼저 순찰을 도는 모습에서 작은 단서라도 놓치기 않고 쫓는 경찰의 모습이 그려졌다.

군인팀의 경우 호전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있었다. 국가를 지키는 최전방에서 있는 사람들답게 아군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팀별 기지를 뺏고 빼앗는 과정에서 군인팀이 무력으로 상대팀에 위협을 가하는 순간이 있었고 페널티까지 받았다. 군인팀에 대한 여론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고, 이를 두고 친구와 심각하게 토론까지 한 적이 있다. 

물론 이기는 방법까지 정의로울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겠지만, 여성들 안에서도 '비겁하게 싸우는 여자'가 낯설어서 그런 것 아닐까 나름의 정리를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반칙까지 동원하면서 각 팀이 무엇을 지키는지 보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서는 나 또한 이 예능이 새롭게 보였다.

<사이렌: 불의 섬>을 시작으로 지금껏 발굴되지 못한 여성들의 구체적인 얼굴을 보고 싶다. 신체를 활용하는 직군뿐만 아니라 두뇌를 활용하는 직군으로 뻗어가도 새로운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여성들의 능력과 개성을 만날 수 있는 '다음'이 우리에겐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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