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 반응 쏟아진 서울점자도서관 폐관... "살아남기 힘들겠구나"

박수림 2023. 12. 29. 18: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부 공공지원으로 민간 운영 사립도서관... "열악한 여건, 비장애인 도서관처럼 역할 확대해야"

[박수림 기자]

 2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서울점자도서관 입구 앞에 도서관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배너가 놓여있다.
ⓒ 박수림
 
"서울점자도서관 소식을 듣고 다른 점자도서관들도 살아남기 힘들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서울점자도서관이 이달을 끝으로 폐관하는 가운데, 서울 소재 다른 점자도서관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서울점자도서관 측은 지난 18일 공식 누리집을 통해 "운영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15기 제10차 이사회 결과에 따라 2023년 12월 31일부로 폐관하게 됐다"고 알렸다.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단행된 폐관 공지였다.

갑작스러운 공지에 페이스북과 X(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일부 누리꾼은 "서울점자도서관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더라", "서울점자도서관에 들어가는 서울시 예산이 얼마길래 폐관을 시키는 걸까?", "점자도서관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분들(시각장애인)은 책을 어디서 (대출받나)" 등의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관련 글 상당수가 서울시에 책임 소재를 물었는데, 혹자는 서울시가 예산을 축소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간이 운영하는 점자도서관...공공 지원은 매년 1억 원 안팎
 
 지난 18일 서울점자도서관 누리집에 게재된 폐관 관련 공지.
ⓒ 서울점자도서관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서울점자도서관은 1992년 1월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한시연)가 서울 노원구에 설립한 사립 도서관이다. 이름에 서울이 들어가 있을 뿐 서울시와는 상관이 없는 민간기관이다. 다만 그간 법인의 자체 예산에 서울시와 노원구청의 일부 지원을 더해 운영해 왔다.

최근까지 한시연이 서울점자도서관 운영에 들인 금액은 매년 2~3억 원대로, 최근 3년간 서울점자도서관이 지원받은 공공예산은 1억 원 안팎이었다. 한시연의 '공익법인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서울시는 ▲ 2021년 5215만 원 ▲2022년 4301만 원 ▲ 2023년 4200만 원 가량을, 노원구는 작년까지 매년 4900만 원을 지원하다가 올해는 4410만 원을 지원했다.

2~3억대에 불과한 재정으로는 점자책 등 제작과 임대료 등 최소한 운영만 가능한 실정이다. 서울점자도서관도 상주 직원을 따로 두지 않고 운영해왔다. 

현재 서울 소재 점자도서관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서초구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제외하면 모두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 구청이나 시에서 운영하는 비장애인 도서관이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유명 강사를 초빙해 특강을 하는 것에 비하면 열악한 환경이다.

서울 시내 한 점자도서관 관계자는 "점자도서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장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며 "이는 다른 점자도서관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또 다른 점자도서관의 관계자도 "일반적으로 시나 구에서 지원하는 점자도서관 지원금이 1억 원이 안 되는데, 인건비가 포함되지 않아 법인이나 단체에서 자부담하고 있어 많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노원구청 측은 29일 <오마이뉴스>에 "서울 시내 점자도서관들은 모두 사립도서관이고 각 도서관마다 자체 예산으로 운영한다. 시와 구는 운영 예산의 일부를 지원하는 개념"이라며 "점자도서관의 운영 법인이 소유와 의사결정에 대한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시나 구 차원에서 폐관에 대해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일반 도서관처럼 점자도서관도 역할 확대돼야"
 
 2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서울점자도서관 앞. '경비중'이라는 문구와 함께 입구가 굳게 닫혀있다.
ⓒ 박수림
이런 실정이다 보니 시설이나 홍보에 돈을 들일 수 없어 정작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도서관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점자도서관도 7호선 중계역 인근 상가 건물 7층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28일 <오마이뉴스>가 찾은 서울점자도서관은 불이 꺼진 채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입구엔 운영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 대신 누가 언제 붙이고 갔는지 모를 광고물 한 장만이 남아있었다. 아직 폐관 전이었지만 내부에 상주하는 직원도, 이곳을 찾는 이용자들의 발길도 없었다.

서울점자도서관 측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 도서관은 평소 직원이 상주해 있지 않고 잠겨 있다. 이용자들이 열람실을 잘 이용하지 않고 책나래 서비스(도서관 방문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도서관 자료를 무료 택배로 제공하는 서비스)로 책을 대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만난 타 점자도서관 관계자도 "도서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외에는 오프라인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는 대부분의 점자도서관이 비슷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비장애인들이 이용하는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기 위해서만 찾는 공간이 아니라 여가생활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점점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는 고민을 담아 점자도서관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한편 한시연 측은 "서울점자도서관이 제공하던 서비스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할 한국점자교육문화원과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등을 통해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