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나가는 자들이여, 돌로 만든 배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길

완도신문 정지승 2023. 12. 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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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깎아 배를 지어 바다에 띄웠다는 완도 '황제섬'

[완도신문 정지승]

ⓒ 완도신문
황제도는 전남 완도 금일읍에 속한 섬이다. 

혹자는 진나라 시황제가 불로장생초를 구해 오라며 보낸 서불 일행이 제주도에 도착해 이곳까지 다녀갔기에 황제도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이 다녀간 것인지는 바위에 새겨진 흔적 같은 뚜렷한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 

그 대신, 섬의 서남쪽에 있었던 가마솥 터에는 황제 일행이 쉬면서 밥을 해 먹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보통 때는 물 속 깊이 잠겨 있어 볼 수 없고, 음력 2월 15일부터 3월 15일 사이 바닷물이 최저 수위가 됐을 때인 영등살에만 볼 수 있다고 <완도의 외딴 섬>이라는 책자에 소개됐다.

가마솥 터의 넓은 바위에는 누군가 새겨 놓았다는 뜻 모를 글씨들이 음각돼 있었는데, 지금은 풍파에 씻겨 그 흔적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퇴화했다며 그 이야기가 마을에 구전되고 있다. 

글씨의 주인공이 정말로 시황제의 명을 받고 온 서불 일행이었을까? 잠시 솔깃해진다. 

서복을 역사서에선 '서불'이라고 기록한다. 황제의 불로초를 구하려고 그는 동남동녀 3천명과 대선단을 이끌고 한중일 3국을 유람하는데, 일행이 다녀간 곳마다 '서불과차'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이것은 서불 일행이 다녀갔다는 표적이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도 서귀포다. 정방폭포 입구에 그 글귀가 뚜렷이 새겨졌고, 그곳에는 서복(서불)을 기념하는 전시관도 있다. 해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거제도 우제봉에도 글귀가 남아있었다고 하는데, 사라호 태풍 때 바위가 떨어져 나가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았다. 남해 금산의 거북바위에도 '서불과차'를 새겼다고 전한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로다

완도읍의 남동쪽 33km 정도에 있는 황제도는 옛날에 황제가 쉬어 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 맞다. 이곳에는 '석선(石船)터'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 또한 매우 흥미롭다. 

신라시대 당나라 사람들이 근해를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이곳까지 밀려왔다고 한다. 그들은 겨우 생명을 유지해 섬에 오르고 보니, 재질이 좋은 돌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곳에 있는 돌을 깎아서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웠는데, 예상 밖으로 배가 물에 뜨자 그것을 타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형태를 그대로 지닌 바위를 '석선터'로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다.

아뿔싸, 돌을 깎아 배를 만들었다니 옛 이야기답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돌을 깎아 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돌을 깎아 배를 만드는 일은 황제의 명령으로만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황제도에 전해 내려오는 '석선터'에 얽힌 전설은 이 섬의 유래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중국에 있는 돌로 만든 배들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화원에 있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36m 정도 크기의 돌배는 서태후가 프랑스 선박을 모방해 만들었다. 서태후는 그곳에서 매일 같이 달맞이 하며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스팡(石舫)이라고 하는 돌로 만든 배 모형을 그래서 청연방(淸宴舫)이라고도 부르는데, 이화원에서 가장 독특한 수상 건축물이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돌배는 중국의 여행지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계림의 용호공원에도 석주(石舟)가 있다.

중국인들은 물에 뜰 수도 없는 돌로 왜 배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였던 순자의 영향 때문이다. 주로 호수에 돌배를 만드는 건 '군자주야, 서인자수야(君者舟也, 庶人者水也)'라는 성인의 가르침에서 유래한다. 여기에서 '군주는 곧 배요, 백성은 그 배를 받드는 물이다'는 뜻이다. 

백성이 편안하도록 군주가 잘 다스릴 때는 배를 받들지만, 백성을 화나게 만들면 배를 엎어버릴 수 있다는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亦能覆舟)'의 역설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는 대부분 그렇게 흘러왔고, 변함없이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그것은 대국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이러하니, 백성을 물로 보지 말고 일선에서 정치를 잘하라는 뜻일 게다. 

청의 황실에서는 이화원이 반석 위에 세워지기를 기원하면서 '영원히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돌배를 만들었다. 그러나 청나라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으니 권력이란 것은 영원하지 않다. 

완도의 금일읍 황제섬에 전해오는 돌로 깎아 만든 배 이야기가 되뇌어지는 세밑이다. 이제 곧 총선을 앞두고 있다. 정치에 나서는 이들이라면 어느 누구나 성인의 가르침을 덕목으로 삼고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 완도신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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