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돼 바다에 버려진 왕자 이름이 지명으로 남은 곳

이상기 2023. 12. 2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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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스 기행, 카스피해 바쿠에서 흑해 바투미까지 (30)] 고니오 요새

[이상기 기자]

바투미 경기장과 음식 이야기
 
 흑해로 들어가는 문과 바투미 스타디움
ⓒ 이상기
 
바투미 문화유산 기행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바닷가를 동서로 연결하는 해변도로를 따라간다. 동쪽 루스타벨리 대로에는 쉐라톤 호텔, 힐튼 호텔, 매리어트 호텔이 있다. 이어지는 힘쉬아슈빌리 대로에는 콜로세움 모양의 마리나 센터와 아쿠아 파크가 있다. 샤르타바 대로를 따라 시내 쪽으로 들어오면서 넥스트 호텔이 보인다. 이들은 바투미의 랜드마크 건물로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다. 우리는 흑해로 들어가는 문(Black Sea gate)이라는 이름의 조형물을 지나 바투미 스타디움 쪽으로 간다.
바투미 경기장의 공식 명칭은 아자라벳 아레나(Adjarabet Arena)다. 2020년 7월에 완성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10월에야 공식적으로 개장했다. 2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디나모(Dinamo) 바투미 축구팀의 홈구장이다. 2023년에는 이곳에서 21세 이하 UEFA 챔피언십 결승전이 열리기도 했다. 바투미 스타디움 주변은 신도시로 건설이 한창이다. 주변에 카르푸, 웬디스, 덩킨 도너츠 같은 해외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근 호텔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아자라 하차푸리
ⓒ 이상기
 
점심은 아자라 하차푸리(khachapuri)다. 보트 형태의 빵 안에 치즈와 버터를 넣어 녹인 다음 달걀 노른자를 얹어 만들었다. 피자의 사촌 쯤으로 여겨지는 하차푸리는 그 역사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하차푸리는 조지아의 중세시대인 12세기경 나타났다고 한다. 바탕은 이스트를 사용해 부풀어 오르게 만든 빵이다. 하차푸리를 먹을 때는 이 빵을 뜯어 치즈와 달걀을 찍어 먹는다. 엊그제 그리골레티 호텔에서 먹었던 메그룰리(Megruli) 하차푸리와는 모양과 맛이 조금 다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점심이 조지아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다. 오후에는 국경을 넘어 튀르키에 아르하비(Arhavi)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고니오 요새를 살피다 
 
 고니오 요새
ⓒ 이상기
 
식사 후 우리는 바투미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고니오(Gonio) 요새로 간다. 길은 바투미 국제공항을 지나 초로키강(Chorokhi River)을 건너 고니오 요새로 이어진다. 고니오 요새의 그리스식 이름은 압사로스(Apsaros)고 로마식 이름은 압시르투스(Apsyrtus)다. 압사로스는 콜키스 왕국의 왕자로, 메데아의 이복동생이다. 황금 양가죽을 가지고 떠나는 메데아가 압사로스를 납치해 아르고호에 태우고 떠난다. 그리고 아버지 아이에테스 왕의 추격을 받자 압사로스를 찢어 죽여 사지를 바다에 버린다.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수습해 이곳 고니오 요새에 묻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곳의 지명이 압사로스, 압시르투스가 되었다.
압시르투스 요새는 1세기에 살았던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의 <자연사(Natural History)>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다. 압시르투스는 2세기에 콜키스 땅에 있는 로마의 요새가 되어 있었다. 이때 이미 극장과 원형경기장이 있는 조그만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고니오라는 이름은 14세기 그리스 관리이자 역사가인 파나레토스(Michael Panaretos)의 <연대기(Chronicle)>에서 처음 확인된다. 고니오는 1547년 오스만 터키의 땅이 되었고, 1878년 산 스테파노 조약으로 러시아 땅이 되었다. 1991년 조지아 땅이 된 고니오는 아자라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바투미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적 요충이다.
 
 로마시대 목욕탕
ⓒ 이상기
 
고니오 요새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성곽으로, 길이가 228m 폭이 195m 면적이 4.5ha나 된다.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문이 있고, 성벽을 따라 18개의 망루 겸 탑이 남아 있다. 원래는 22개의 망루 겸 탑이 있었으나, 역사 속에서 네 개가 사라졌다. 성벽의 높이는 5m고, 탑까지 포함하면 7m나 된다. 성벽의 아래층에는 가로 세로가 70㎝ 높이가 80㎝ 되는 육면체 돌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 발굴을 통해 기원전 7~8세기 주거지 유적, 기원후 1~3세기 로마시대 유적, 6~7세기 비잔틴시대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13~14세기에는 요새 복원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547년부터 1878년까지 오스만 군대가 이곳에 주둔했다.
고니오 요새 내부는 현재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가 로마시대 목욕탕이다. 목욕탕은 열탕(caldarium), 온탕(tepidarium), 냉탕(frigidarium) 그리고 탈의실 겸 휴게실(apoditerium)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 목욕탕 건물은 사라졌지만 온수 배관과 건물 바닥은 아직도 잘 남아 있다. 황토색 도기(陶器)로 관을 묻어 온수를 보일러실에서 목욕탕 안으로 끌어들였음을 알 수 있다.
 
 성 마태오 무덤
ⓒ 이상기
 
두 번째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성 마태오(마태우스)의 무덤이다. 그가 콜키스 왕국의 서남쪽에서 기독교 교리를 전하다 순교해 이곳 고니오 요새에 묻혔다는 전승이 있다. 그 때문에 조지아 정교회의 영광을 보여주는 이콘화에 마태오가 안드레아와 함께 그려져 있다. 셋째가 파괴된 이슬람 모스코 유지(遺址)다. 모스크는 이슬람교가 전파된 후 생겨났다가 러시아 종교탄압으로 파괴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니오 고고학박물관
 
 로마시대 유리기
ⓒ 이상기
 
고니오 요새 발굴에 처음 관심을 보인 사람은 독일의 사업가 겸 고고학자인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다. 미케네 유적 발굴에서 크게 성공한 슐리만은 그리스 신화 속 아르고호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러시아 제국 황실에 고니오-압사로스 요새 발굴을 신청했다. 그러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세기 초에야 러시아 학자들에게 발굴허가가 떨어졌다고 한다. 발굴은 빨리 이뤄지지 못했고, 1974년 요새 안에서 기원후 2~3세기 금장신구가 발견되었다. 고니오 요새는 1994년 조지아 정부에 의해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95년부터 폴란드 역사학자들에 의해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발굴 유물을 보존 전시하기 위해 로마시대 목욕탕 옆에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박물관 유물은 시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기원전 7-8세기 흑해 연안 언덕에 살던 원주민의 유물이 가장 오래되었다. 이들은 청동으로 만든 무기, 제기와 생활용기인 도기다. 그리고 기원 후 1~3세기 로마시대 유물이 가장 많다.

무덤에 부장된 금과 보석으로 만든 귀족의 장신구가 보인다. 동전, 철제 마구와 청동 제기, 도자기 등도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로마시대 유물 중 눈에 띄는 것이 유리기다. 푸른 빛을 띤 얇은 유리기로 정교하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대개 둥근 형태지만, 네모난 모양의 병도 보인다. 가장 정교한 것은 유리기에 원형의 무늬를 만들었고, 손잡이까지 만들어 붙였다.
 
 도기와 자기
ⓒ 이상기
 
도기와 자기는 수준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콜키스가 로마의 동쪽 변방으로 생활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출토 유물이 생활용기이기 때문이다. 전시된 도기는 황색이 대부분이고, 자기는 흑색이다. 청동기는 비교적 소품으로 이들 역시 부장품으로 보인다. 동전도 몇 점 없다. 장신구는 목걸이, 팔찌, 귀걸이인데, 이들 역시 단순소박한 편이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보니 유물보관실에 커다란 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도기는 조지아 포도주 용기인 크베브리의 원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지아와 튀르키에 국경을 넘다
 
 조지아 사르피 국경
ⓒ 이상기
 
고니오 요새를 나온 우리는 버스를 타고 고니오 마을을 지나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5㎞ 정도 달리니 국경마을 사르피(Sarpi)가 나온다. 그리고 마을이 끝나는 지점 길 가운데 특이한 건물이 나타난다. 이곳이 조지아쪽 출입국 사무소다. 사무소 앞에는 튀르키에로 입국하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편이다. 사무소로 들어가기 전 면세점이 있어, 조지아 돈을 다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부 터키 사람들이 담배를 사서 옷 속에 숨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튀르키에가 이슬람 국가여서 담뱃값이 비싸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지아에서 튀르키에로 넘어가는 출국수속은 비교적 간단하게 끝난다.
국경을 넘어가면 튀르키에 출입국 사무소가 있다. 사무소 건물이 현대적이다. 또 창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흑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가방을 끌고 복도를 지나면 입국사무소가 있다. 입국심사를 하는 직원들도 까다롭게 굴지 않고 바로 입국도장을 찍어준다. 도장을 보니 Sarpi가 아니고 Sarp다. 조지아 사람들은 이곳을 사르피라 부르고, 튀르키에 사람들은 이곳을 사르프라 부른다. 입국사무소를 나오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웅장한 모스크다. 이를 통해 기독교 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로 넘어왔음을 알 수 있다.  
 
 튀르키에 아르하비: 왼쪽으로 흑해가 펼쳐져 있다.
ⓒ 이상기
 
저녁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아르하비 시내 볼거리를 찾아 나선다. 호텔 앞으로 오르치(Orçi)강이 흐른다. 강을 건너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도심 뒤로는 높은 산이 바로 연결된다. 가장 높은 산(Kiziltepe)은 해발이 3200m가 넘는다고 한다. 시내 쪽으로 가니 저녁이 가까워서인지 시장도 파장이다. 다시 돌아오면서 흑해 쪽으로 나가보려고 한다. 그런데 해안 쪽이 일부만 개방되어 있어 해안을 따라 산책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 도로를 따라 돌아오면서 다리 위에서 흑해로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본다.

붉은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지만, 바다는 붉게 물들이질 못한다. 그래서 검은 바다 흑해라 부르는가 보다. 우리는 아르하비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리제-아르트빈 공항으로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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