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대입 고액 컨설팅 키운 주범은 ‘끝없는 불확실성’

이도경 2023. 12. 27.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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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종로학원 주최로 지난 10일 열린 ‘2024 정시전략 설명회’에서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정시 배치표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수시는 모평, 대학별고사 가채점
정확한 자료 없이 깜깜이 응시
원점수 나와도 표준점수·등급 등
내 성적 객관적 위치는 오리무중

대입 내내 도박 같은 레이스 강요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
공교육 내에서 전략 세울 수 있게
수요자 위주로 제도 뜯어고쳐야

몇 년 전 ‘스카이캐슬’이란 드라마가 나왔을 때 교육부는 마치 사교육과의 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교육부 간부들이 모두 나서 입시 컨설팅을 현장에서 단속한다며 전국 사교육 특구라고 불리는 지역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단속 실적이요? 드라마 열기가 사그라들자 조용히 뒤로 묻어 버리더군요.

이런 ‘블러핑(허풍)’은 이후 연례행사처럼 됐습니다. 입시 철만 되면 단속한다고 소문만 내고 나중에 뭘 어떻게 단속했고 어떤 후속 조치를 했고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는 입을 꾹 닫아버립니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육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불법 고액 학원 점검 나선다’란 자료를 최근 뿌렸습니다. 교육부 간부들이 단속에 나선 것도 비슷합니다.

2024학년도 대입은 수시 모집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고 이제 정시 원서접수를 앞두고 있습니다. 수시 합격자들이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정시를 지원하는 수험생들은 지원 대학을 결정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교육 입시 컨설팅 수요가 마지막으로 폭발하는 시기죠. 고액의 사교육 입시 컨설팅은 왜 필요할까요. 수험생 입장에서 풀어봤습니다.

대입은 기본적으로 누군가 합격하면 누군가는 떨어지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남보다 잘하는 게 더 중요하죠. 그래서 수험생들은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를 가늠해야 합니다. 입시 전략은 그다음 단계입니다. 공교육에서 수험생들이 자신의 객관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첫 기회는 고3 때 치르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6월 모의평가입니다. 그 전에 몇 번 교육청들의 학력평가가 있긴 하지만 n수생이 포함되지 않은 시험이어서 한계가 뚜렷하죠.

6월 모의평가 역시 모든 n수생이 참여하지 않습니다. 9월 모의평가와 실제 수능에 나서는 n수생 규모는 상당히 다릅니다. n수생의 실력도 가늠하기 어렵죠. 하지만 수험생들은 6월 모의평가 성적과 9월 모의평가 가채점 점수를 갖고 첫 번째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받게 됩니다. 바로 수시 원서를 제출하는 것이죠. 수시 원서 접수는 9월 모의평가 성적표 나오기 전에 마감합니다.

수험생에겐 가혹한 일입니다. 현행 대입제도는 수험생들이 수시 원서를 제출할 때 몇 달 뒤 치를 자신의 수능 성적까지 예측하도록 요구합니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는지는(수시에 합격해도 수능에서 일정 등급이 나오지 않으면 탈락한다) 일부분일 뿐입니다. 정시에서 갈 수 있는 대학 라인이 나와야 전략적으로 수시 원서를 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결정을 6월 모의평가 성적과 9월 모의평가 가채점만 갖고 결정해야 합니다. n수생이 얼마나 밀려올지 그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수능이 끝났다고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증폭되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습니다. 수능 시험 직후 수시 대학별고사가 이어집니다. 수험생들은 수능 가채점 결과를 갖고 대학별고사 응시 여부를 정해야 합니다. 정시에서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점수를 쥐었더라도 수시 대학별고사에 응시해 합격하면 이른바 ‘수시 납치’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나 의대 갈 수능 점수를 쥐고도 가지 못할 수 있는 함정을 파놓은 셈입니다.

가채점을 통해 알게 되는 원점수로는 객관적인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실제 입시에선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이 활용되니까요. 교육부는 수험생들이 가채점 결과라는 불안한 점수를 갖고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수험생들이 원점수를 들고 가면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을 추정해주는 사교육 컨설팅에 기댈 수밖에 없도록 제도를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수험생들은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친 뒤에야 수능 성적표를 손에 쥡니다. 그렇다고 불확실성과의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표준점수와 백분위, 대학별로 다른 변환표준점수로는 객관적인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당락을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정시에 지원할 대학을 정해야 하는 것이죠.

현행 제도는 이처럼 대입 레이스 내내 불확실성에 고통받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불확실성을 파고드는 존재가 사교육 입시 컨설팅입니다. 이들은 그간 축적한 데이터와 상담 노하우를 기반으로 수험생들의 불확실성을 줄여준다고 현혹하고 있습니다. 시간당 상담 비용이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곳도 많습니다. 불확실성 속으로 수험생을 던져놓고 팔짱 끼고 있는 교육부가 과연 이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을까요.

수능 시행 시기를 앞당기거나, 좀 더 근본적으로 수시와 정시를 통합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교육계에서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수험생들이 적어도 공교육 내에서 자기 위치를 파악해 대입 전략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강남 학생이든 도서벽지 학생이든 공정하려면 말이죠.

교육부는 이런 목소리를 외면해왔습니다. 지극히 공급자적인 마인드로 말입니다. 대학이 학생을 안정적으로 뽑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시 납치’ 제도일 것입니다. 수시 합격자에게 정시 지원 기회를 주면 대입 전반이 흔들린다는 것이죠. 하지만 당하는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땅을 칠 일입니다.

수능에서 킬러문항 몇 개 들어냈다고(실제 없어졌는지도 의문이지만) 사교육 부담은 줄지 않습니다. 업체 몇 곳 때려잡는다 한들 사교육 수요를 키우는 제도를 그대로 두고 효과는 없을 겁니다. 수요자 중심으로 제도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사교육으로 향하는 줄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 “높으신 분 누가 사교육 단속에 직접 나섰다”같이 사교육과 싸우는 시늉으로 학생·학부모를 기만하는 ‘쇼’, 이제 그만 좀 보고 싶습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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