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2일' 섬 산행, 무조건 다시 가겠습니다

유영수 2023. 12. 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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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수우도

[유영수 기자]

 수우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 유영수
 
네이버 카페 트래킹 동호회인 "트래킹 거북이 날다(아래 '트거날')"에 업로드된 통영 수우도에 대한 공지글을 확인한 건 11월 말경. 며칠 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신청을 하게 되었는데, 고민한 이유는 그날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해 낸 다음에 다시 무박2일 산행을 해야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건, '통영'과 '무박2일'이라는 키워드 덕분이었으니 한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남해를 대표하는 통영과 여수. 그 중 한 곳을 연휴 중 토요일 딱 하루만 쓰면서 다녀올 수 있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부분이었고,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수우도라는 섬의 지명 또한 공지글에 신청 댓글을 달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주중에 파김치가 되도록 업무에 매진하고 나면, 누구나 주말 이틀 동안에는 푹 쉬고 싶은 것이 직장인의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활동에 대한 욕구가 움틀거리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무박2일 산행은 참 매력적이다. 이번 트거날의 수우도 산행 역시 금요일 밤 11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저녁 8시반쯤 귀가할 수 있었으니, 시간 활용도로는 최고의 선택이다. 남해로의 여행은 최소 1박2일의 일정이 필요할텐데, 그러려면 주말 이틀을 다 헌납해야 하고 숙박을 해야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말이다. 

물론 차에서 자야하는 불편함이 따르긴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틀 동안의 워크샵과 당일 저녁 송년모임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난 뒤라, 정말 피곤했는지 다소 소란스런 버스에서 바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3시간 정도 후에 깼는데 그 정도만 푹 자면 무박2일 산행의 고단함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강력하게 추천해 드리고 싶다. 시간과 경비를 아끼면서 해볼 수 있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니 말이다.  

새벽 4시. 칠흑같은 어둠 때문에 이곳이 통영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분명 통영에 위치한 삼천포항에 도착했다. 매우 이른 아침식사를 단체로 한 후 6시 조금 넘어 수우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40분 정도 항해를 마치니 역시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수우도 선착장이 우리를 반긴다. 

섬에 도착하니 잠시의 여유도 없이 바로 각자의 배낭을 메고 조용히 산행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엄청난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등산로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불편하고 좁은 결정적으로 꽤 험난한 각도의 등산로를 30분쯤 말없이 따라간다. 그 힘든 산행 후 처음 도착한 고래바위.
 
 고래바위 앞에서 바다를 보며 촬영한 사진. 높은 봉우리를 운무가 감싸고 있는 듯하다.
ⓒ 유영수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직 환하게 볼 순 없었지만 그래서 더 신비감이 느껴지는 풍경. 여명 가운데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은 마치 높이 솟은 산봉우리를 운무가 감싸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공지글을 꼼꼼히 보지 않아서 '가벼운 트래킹이려니'하고 따라왔다가 '이게 무슨 트래킹이냐 엄청 빡센 산행인데'라며 속으로 투덜거리던 마음이 순간 녹아내린다. 
거기에 해가 떠오르기 전 붉게 물든 건너편 사량도의 풍광은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자연을 통해 치유받는 또 한 번의 경험을 쌓는다.
 
 해뜨기 전 붉은 여명이 섬과 바다를 멋지게 물들이고 있다.
ⓒ 유영수
 
이후 이어지는 섬투어를 통해 백두봉과 해골바위 등 수우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뷰포인트들을 감상하게 되는데, 멋진 풍광들을 눈에 담기 위해선 꽤 힘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군대에서나 해봤을 법한 밧줄타기와 70도는 족히 돼보이는 험난한 경사로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거나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밧줄에 의지해 바위산을 오르고 있다.
ⓒ 유영수
 
 해골바위 전경과 클로즈업한 사진
ⓒ 유영수
 
특히 해골바위를 보기 위해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도 험한 편인데, 혹자는 도봉산 Y계곡이나 공룡능선 1275봉 정도의 난이도에 비견하는 곳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수우도까지 방문하는 목적이 해골바위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과감히 해골바위를 보기 직전 중간 정도의 지점에서 내려가지 않기로 선택했다.  
체력이 달려서도 아니었고 다만 쉴새없이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던 중, 잠시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며 '바다멍', '섬멍'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 선택은 제법 탁월했고 일행이 해골바위의 기이한 모습을 감상하는 동안, 바다에 비치는 햇살의 아른거림과 유려한 섬 풍경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바다와 섬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는 순간.
ⓒ 유영수
 
연휴만 되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아직 국내에도 볼 만한 좋은 곳이 많이 남아있다'라고 말하는 이들 역시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딱히 섬여행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뭘까.

'트거날'의 멤버인 산길님(경기도 부천)은 이렇게 말한다. "섬여행을 산과 함께 하다보니 저는 섬앤산이라고 명명하거든요. 섬앤산은 고지가 높지 않은 반면 워낙 가파른 곳이 많아서 산을 힘들게 탄 것 같은 보람이 느껴저서 좋아요. 거기에다 섬앤산은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지 않아서 오히려 오지를 탐험하고 있다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죠".

등산을 하면서 파란 바다와 섬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는 그의 말이 확 공감된다. 

실제 수우도를 탐방하면서 바다와 하늘색이 거의 비슷해서 '어디까지가 바다야?' 생각한 적이 종종 있었고, 산행보다는 서바이벌 게임을 하면서 유격훈련까지 체험한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평소 스릴을 즐기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의 코스였다. 

이날 동행했던 '트거날'의 멤버 파스텔님(서울시 양천구)에게 혼자 다니는 산행과 동호회 멤버들과 어울리는 산행의 장단점을 물었다.

"서로 장단점이 있긴 해요.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동호회가 맞는 것 같고, 그 반대라면 혼자 다니는 게 편하죠. 처음에는 산에 대해 잘 모르니까 어울려서 다니면서 여러 경험을 한 후에 혼자 다니는 것도 좋습니다. 혼자 다닐 때는 오롯이 자연에 집중할 수 있고, 여럿이 다닐 때는 사람에 집중하게 되면서 관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요".

그렇다. 쉬는 날까지 남들을 배려하며 신경쓰고 싶지 않다면 혼자 즐기는 산행도 나름 나쁘지 않다. 다만 함께 식사하며 각자의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준비해 온 행동식을 골고루 나눠먹는 기쁨은 여럿이 어울릴 때만 가능한 즐거움이 아닐까. 동호회 공지에 무박2일 산행이 뜨면 주저없이 신청해야겠다는 각오를 하며 이번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은박산 정상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삼아 찍은 사진.
ⓒ 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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