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새 한 마리 때문? 윤석열 환경부, '담수 테러' 멈춰라"

김병기 2023. 12. 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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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10만인] '새 박사'로 불리는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김병기 기자]

 이경호 처장이 합강습지에서 새를 촬영하고 있다.
ⓒ 김병기
 
▲ [이 사람, 10만인] “세종보를 폭파하고 싶지만...”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인터뷰 #합강습지 #장남들 #큰고니 ⓒ 김병기

"그깟 새 한 마리, 그깟 꽃 한 송이, 그깟 벌 한 마리가 뭐 그리 중요하냐?"

난개발에 맞서 싸우는 환경운동가들에게 쏟아지는 이런 비아냥거림을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도 자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환경=경제'라는 등식이 뿌리를 내리는 '기후 무역 장벽'의 시대이다. 단지, 돈 때문은 아니었다. 이 처장은 "매일 100종씩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이고, 그 끝은 인간"이라며 "그깟 새 한 마리를 지키는 건 우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명 '새 박사'로 불리는 이 처장과 함께 최근 세종시 연기면에 있는 장남들판과 이곳에서 3~4km 인근에 떨어진 합강습지 등 금강 배후 습지 2곳을 찾았다. 오마이뉴스를 매월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인 그와 함께한 하루 동안의 동행이었다. 이 처장은 환경운동가이자, 오마이뉴스에 새 등 환경과 관련한 기사를 쓰는 시민기자이기도하다.

[장남들] "하루에 100여종의 새를 만날 수 있는 곳"
 
 세종시 장남들에 찾아온 큰고니 떼
ⓒ 김병기
 
"아, 저거, 저거... 긴발톱할미새! 노랑할미새와 발 색깔이 달라요. 쟤는 검은색인데, 노랑할미새는 핑크색. 와, 대박이네!"

세종시 장남들판을 걸으며 이 처장은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기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기막히게 새를 찾아냈다. 실제 그의 카메라를 보니 물웅덩이 앞 수풀 속을 걷는 긴발톱할미새가 찍혔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저건 흰눈썹 뜸북기입니다."
"야~ 저건 북방검은머리쑥새입니다."
"저쪽 하늘에서 선회하는 잿빛개구리매가 보이나요? 앗, 그 옆에 있는 건 황조롱입니다!"

이 처장은 장남들을 걸으며 쉴 새 없이 새 이름을 읊조렸다. 한 눈에 들어오는 2만평 남짓의 장남들판에 이렇게 많은 새가 산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새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셔터를 누르는 그를 보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 한 구절을 떠올렸다. 새를 분별할 줄 안다는 것은 애정이 있다는 뜻이었다.
 
 금강 우측으로 보이는 곳이 장남들이다.
ⓒ 김병기
 
이 처장은 "2015년부터 한 달에 2~3번 정도 이곳에 와서 새 등 동식물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세종시 행복도시가 들어서기 전에 비해 10분의 1로 줄어든 상황이지만, 대한민국에서 하루에 100여종의 새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2시간 동안 논두렁길을 걸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조류인 큰고니 50여 마리와 큰기러기 300여 마리가 도심의 정중앙에 위치한 논밭에서 먹이를 주어먹고 있는 게 믿기지 않았다. 2015년부터 날아오기 시작했다는 흑두루미 2마리와 후투티, 흰눈썹울새, 검은 딱새, 뱁새, 흰꼬리수리, 독수리, 종다리, 쇠물닭... 이 처장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이름 없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을" 새들이 겨울 들녘에 가득했다.

[합강습지] 금강 내륙습지 중 '으뜸'인 곳
 
 세종시 합강습지
ⓒ 김병기
 
합강습지에 도착하자마자, 이 처장은 카메라를 메고 뛰기 시작했다. 뭔가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하늘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말했다.

"물수리입니다. 날개 길이는 2.3~2.4m 정도 되죠. 비행능력이 좋고 물고기를 잡아 끌어올리는 힘이 강력합니다. 그래서 큰 물고기를 잡죠."

이 처장은 장남들과 함께 합강습지도 자주 찾아온다고 했다. 차로 달리면 거주지인 대전에서 30분 정도 거리이기에 부담이 없다고 했다. 이곳은 금강과 미호강이 만나는 합류부에 조성된 습지이고, 바로 옆에 전월산이 있다. 먹이터인 장남들도 인근에 있기에 새들이 살아가는 데에 적합한 곳이다.

"합강습지에는 새들이 겨울철에 더 많이 찾아오는데, 수금류라고 하죠. 물에 떠다니는 오리나 기러기들, 고니와 같은 다양한 수금류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은 모래톱과 하중도가 잘 발달돼 있어서 최상위 포식자인 수리와 매와 같은 맹금류들도 많이 옵니다.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 참수리, 검독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도 많고, 보라매라고 부르는 참매의 어린 새끼를 연중 볼 수 있습니다. 해동청이라고 부르는 송골매도 있죠."

이 처장은 "육상생태계와 하천생태계, 습지생태계가 골고루 발달돼 있어서 새뿐만 아니라 수달과 삵 등 멸종위기종 포유류가 많이 살고 있고, 물속 모래여울에서 사는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흰수마자와 미호종개 등의 물고기도 서식하고 있다"면서 "합강습지는 금강의 내륙습지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냥중인 흰꼬리수리와 피하는 가창오리들
ⓒ 이경호
  
[토막 인터뷰] 왜 새를 쫓아다니나? 그 물음에 답하다

그와 함께 합강습지를 걷다가, 100여 마리의 황오리 떼가 한가롭게 물질을 하고 있는 금강의 합강습지를 배경으로 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 환경운동의 분야가 많은데, 새만 쫓아다닌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는 않나?

"대학교 1학년 때 '야생조류연구회' 활동을 했다. 10년 넘게 새에 푹 빠져 살았다. 새와 함께한 세월이 켜켜이 쌓여서 나름대로 전문성도 있다. 하지만 다른 영역도 섭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새에 대한 지식이 환경의 제반 문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가령 수상생태계와 육상생태계의 먹이사슬로 환경활동영역을 확장시키려 하는데, 새를 기반으로 하면 접근하기가 더 용이하다."

- 왜 새를 쫓아다니나?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나도 그렇다. 새가 있기에 새를 보러 다닌다.

- 새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아름답다. 그렇다고 모든 새가 예쁜 건 아니다. 못생긴 새도 있다. 화려한 새도 있고 수수한 새도 있다. 모든 새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 새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이 이 처장을 환경운동으로 자연스레 이끈 것인가?

"새를 보면서 환경활동을 하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를 보호하는 분들과 소통을 하다가 환경운동가가 됐다."
 
 세종시 합강습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우)
ⓒ 김병기
 
- 새를 좋아하는 자신이 환경운동에 입문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던 때도 많을듯한데, 가장 보람이 있었던 순간이 있다면?

"기본적으로는 새를 보고 지키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행복하다. 개인적인 취향과 일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이 지켜내지는 못했지만, 대전의 관평천과 서대전 골프장을 막아 새의 서식지를 지킨 것도 의미가 있었다. 또 최근에는 주변의 단체와 많은 시민들과 함께 대전의 월평공원 습지를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데 기여했다."

- 합강습지에서 본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꼽으라면?

"맹금류 4마리가 조그만 모래섬에 함께 앉아있던 장면이다. 보통 한두 종이 섞인 경우는 있는데, 멸종위기종인 참수리와 흰꼬리수리, 검독수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이곳의 생물종 다양성이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특이한 경험이었다. 또 금강 하구에서 볼 수 있는 가창오리 5만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것도 봤다. 그 정도의 대규모 무리가 머물려면 그만큼의 넓은 은신처와 서식처, 먹이터 등 생태 용량이 충분해야 가능한 일이다. 합강습지의 생태환경과 생명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 윤석열 정부가 이곳으로부터 5km 정도 하류에 있는 세종보를 담수하려고 하고 있다. 장남들과 합강습지의 새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

"2012년에 4대강 16개 보가 완공됐는데, 금강의 경우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 등 보의 수문을 개방하기 시작한 2018년 이전에는 죽은 강이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시궁창 펄에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드글거렸다. 하지만 2018년부터 금강에서 녹조가 사라졌다. 큰고니 개체가 급격히 많아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최근에는 재두루미나 흑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도 찾아온다. 수문을 닫으면 이런 새들뿐만 아니라 저 뒤에 보이는 황오리도 사라질 것이다."
 
 29일 오전 11시경, 한화진 환경부장관은 세종보 재가동 공사 상황을 알아보려고 현장을 시찰했다.
ⓒ 환경부
 
- 왜 그런가?

"큰고니와 같은 섭금류는 주로 물가나 습지에서 살면서 긴 다리와 목, 부리로 먹이사냥을 한다. 지금은 세종보 수문을 연 상태이기에 수심은 평균 80cm 정도 된다. 그런데 세종보 높이는 4m이다. 이를 담수한다는 건 섭금류들에게 '너 나가라'라는 말과 같다. 큰고니나 황오리와 같은 새들에게 재앙이다. 수문을 막으면 모래톱이 펄밭으로 변할 것이다. 모래여울에 사는 흰수마자나 미호종개들에게는 그야말로 '담수 테러' 행위이다."

이 처장은 "잦은 기름 유출 사고로 세금을 축내는 세종보를 폭파해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금강과 영산강, 낙동강에서 4대강사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 온 환경사회단체들이 연대체를 구성했다"면서 "4대강 보를 해체하고 강이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그날이 되기까지 지치지 않고 싸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 처장은 인터뷰 마무리를 하면서도 '그깟 새 한 마리'를 강조했다.

"그깟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난 정권에서 면밀한 검토를 한 결과, 세종보를 해체하는 게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환경이 곧 밥'이라는 말입니다. 또 세종보를 담수했을 때 '악취' '발전기 진동' 등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보는 뭇생명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건강도 해치는 존재라는 게 증명된 겁니다. '그깟 새 한 마리'를 지키는 게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죠."
 
 세종시 합강습지를 걷고 있는 이경호 사무처장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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