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소원, 드디어 산타를 만났습니다
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오영식 기자]
지난 기사 : 외국인이 차 싣고 국경 넘는데 아무도 검사를 안했다 https://omn.kr/26rqj
친절한 핀란드 공무원
헬싱키 항구에 도착해 배에서 차를 내렸다. 그런데 육지에 내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차량을 한 대씩 길가에 세우고 있었다. 경찰이나 세관 공무원인 것 같아 '번호판도 특이한 우리 차는 분명 검문 대상이겠구나!' 생각했고, 역시나 제복을 입은 사람이 우리에게 한쪽에 차를 세우라는 수신호를 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안녕하세요. 어디에서 오셨나요?"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경찰이 아니라 세관 공무원이었고, 질문하는 표정이 밝고 친절했다. 나는 먼저 우리 여행 얘기를 했다.
"9살 아들과 한국에서 한국자동차를 운전해서 러시아를 횡단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 그래요? 이 차가 한국에서 온 차인가요?"
"네. 1만 km 넘게 주행했고, 핀란드를 여행한 후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지나 포르투갈로 갈 겁니다."
세관 직원은 계속 밝게 웃으며 아주 친절한 말투로 질문을 이어 갔다.
"혹시 차에 술이나 담배가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과 담배 아무것도 없습니다. 옷이랑 여행용 짐이 전부입니다."
"그럼 차 문을 열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보세요."
나는 차 문을 열고 짐을 보여주려 내렸지만, 세관 직원은 그냥 의심스러운 사람인가 질문만 한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내가 적극적으로 짐을 보여주려 하자 아주 친절하게 우리 차를 보내줬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즐겁게 여행하세요."
"핀란드 공무원들이 아주 친절하네요. 핀란드 첫인상이 아주 좋아요. 감사합니다."
▲ 바다에서 바라본 헬싱키 우뚝 솟은 둥근 돔 건물이 헬싱키 대성당이다 |
ⓒ 오영식 |
우리는 헬싱키시청, 대법원, 대통령궁 등 관공서부터 헬싱키 대성당과 우스펜스키 대성당까지 볼거리가 모여 있는 시청광장으로 갔다. 시청광장 주차장 바로 길 건너에 있는 건물이 대법원 건물이고 그 바로 옆에 대통령궁이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물인데도 우리나라처럼 경찰이나 경비 인력이 보이지 않았고, 건물 앞으로는 차와 사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심지어 대통령궁 외부는 울타리만 쳐져 있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 핀란드 대법원과 대통령궁 (왼쪽) 대법원, (오른쪽) 대통령궁 |
ⓒ 오영식 |
우리 부자는 더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북쪽으로 이동했다. 아들에게 현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며칠 전 핀란드 사람인 이다(Iid)에게 '하룻밤 재워줄 수 있냐?'고 요청했고, 이다는 흔쾌히 우리 부자를 받아줬다.
그래서 핀란드 중부의 작은 마을 토홀람피(toholampi)로 찾아갔다. 큰길에서 한참을,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울창한 자작나무 숲속에 저택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시골집을 생각했는데 족히 100평은 넘어 보이는 2층짜리 큰 집이었다. 마당에 주차하고 아들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영식이라고 하고, 여기는 제 아들 오태풍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코(Miko)라고 합니다. 여행을 오래 했다고 들었어요. 환영합니다. 이다(아내)는 조금 이따 올 거예요."
이다의 남편 미코는 우리가 잘 방을 안내해 주고 얘기를 조금 나누다 오늘은 교회에서 모임이 있다고 미안해하며 가족과 함께 나갔다. 졸지에 핀란드의 아주 큰 농촌 주택에 우리 부자만 남게 되어 저녁을 해 먹고 잠이 들었다.
▲ 카우치 서핑을 한 이다네 집 울창한 자작나무 숲속의 저택 |
ⓒ 오영식 |
어릴 적 꿈에 그리던 산타
▲ 로바니에미 북극 구분선 북극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북극으로 구분된다 |
ⓒ 오영식 |
내가 어린 시절인 30여 년 전 한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북유럽에 있는 핀란드라는 나라에 산타 마을이 있고, 거기에는 300살 된 산타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산타 할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쓰면 이곳으로 전달되어서 운이 좋으면 답장도 받아 볼 수 있다.'
대충 이런 내용과 함께 눈이 내린 산타 마을의 사진 한 장을 봤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와 살며 여행 한 번 못 가본 나는 그저 꿈을 꾸었었다. 서울 여행도 가볼 형편이 안 되는데 하물며 비행기와 해외여행은 내 인생에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나는 정말로 꿈을 꾸었다.
'나도 한 번 산타 마을에 가서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소원을 빌면 그래도 하나는 들어주지 않을까?'
▲ 로바니에미 산타 클로스 우체국 전 세계에서 산타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면 이곳으로 온다 |
ⓒ 오영식 |
11월 중순이었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해는 일찍 졌고, 도로에는 차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오후 4시 무렵 도착했는데 날은 벌써 어두워 있었다. 주차하고 아들과 함께 산타가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산타를 만나는 건 무료였지만, 사진이나 영상은 개인이 마음대로 찍을 수 없고 직원이 찍은 걸 나중에 구매할 수 있다고 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아들과 함께 산타 방에 들어갔다. 산타는 영어를 할 줄 알았고,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한국말로 간단한 대화는 할 수 있었다. 아들이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산타 할아버지!"
산타도 아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나도 어린아이가 되어 산타에게 인사했다.
"와,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 꼭 와서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30년 만에 아들과 함께 올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몇 분간 대화를 나눴고,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한 얘기를 듣곤, 아들에게 힘 나는 말을 해주었다. 신기해하는 아들과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 로바니에미 산타 마을 저 건물안에 핀란드의 공식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 |
ⓒ 오영식 |
사실 산타를 만나면 한국에서 아들 몰래 가져온 게임팩을 산타에게 부탁해 산타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선물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분명히 차에 감춰 놓았던 게임팩이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산타를 만나러 갔었다.
그동안 고생했을 아들에게 깜짝 선물하려 했는데 하지 못해서 너무 아쉽고 속이 상했다. 그래서 아들과 자리에 누워 크리스마스 선물 얘기를 하다 나의 어릴 적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빠는 어릴 때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셨고, 그래서 80이 넘은 할머니랑 살아서 여행도 못 가봤다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초코파이 하나 받아 본 게 전부였다'고. 아들은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빠의 어릴 적 얘기를 들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깜짝 놀라 왜 우냐고 묻자, 아들이 말했다.
"나도 아빠가 일찍 하늘나라에 가면 그럴 것 같아서 슬퍼."
"아빠는 그럴 일 없어. 나중에 너랑 손자랑 여기 또 올 거야!"
아들을 안심시키며 품에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자기 눈물을 닦아주는 아빠의 눈을 보며 불쌍하게 바라본 9살 아들의 진심 어린 공감에 나는 어렸을 적 받았던 상처가 모두 치유되는 것 같아, 마치 산타 할아버지에게 진짜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 로바니에미 산타 할아버지 핀란드 로바니에미에 가면 공식 산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
ⓒ 오영식 |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작성하였으나, 사건 등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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