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가격을 매긴다면 얼마? [테크토크]

임주형 2023. 12. 23. 09: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픈AI, 초기 비즈니스 모델 정립
구글의 공격적 가격 정책에 수세
다가올 빅테크들의 AI '치킨 게임'

그에 앞서 AI 챗봇을 '판매'하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AI가 생성하는 단어의 개수? 혹은 사용자가 AI에 질문을 건네는 횟수?

AI의 비즈니스 모델을 규정하는 건 AI를 만드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입니다. 특히 생성형 AI를 개발하는 빅테크와 스타트업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이제 업계의 포커스는 '가격'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AI 상업화 선구자 오픈AI

샘 올트만 오픈AI 최고경영자

AI 챗봇 서비스 유료화를 선도한 건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입니다. 이미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로 개인, 기업 계정에 GPT-4.0 기반 챗봇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완제품' 서비스입니다. 오픈AI는 다른 회사에 자사 AI 모델의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이식해 활용할 수 있도록 B2B 사업도 벌이는데, 이 경우 가격은 '토큰'으로 책정됩니다.

토큰은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자 단위입니다. 즉 AI가 만들어낼 수 있는 단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오픈AI는 현재 'GPT-4 터보' 모델 토큰 1000개당(영단어 750개 내외) 0.03달러(약 40원)에 판매합니다.

영단어 750개에 40원 안팎이라 하니 상당히 저렴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AI가 본격적으로 상용화하고 모든 대면 서비스에 배치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하루 수억명의 사람이 AI에 질문을 던질 거고, AI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토큰을 생성할 겁니다. 즉 AI 비즈니스의 확장성을 고려하면 오픈AI가 챗GPT를 거저 파는 건 아닌 셈입니다.

구글의 파격적 가격 정책, AI 생태계 뒤흔들다

구글 '제미나이' 관련 이미지 / [이미지출처=구글 공식 블로그]

오픈AI가 자사 모델을 토큰 단위로 판매한 뒤로 현재 많은 후발주자가 토큰을 기준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책정하고 있습니다. 앤트로픽 AI, 미스트랄 AI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최근 구글은 토큰이 아닌 '쿼리'를 기준으로 한 가격 정책을 선보였습니다. 쿼리는 데이터베이스에 특정 정보를 가져오도록 요청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1000 문자(characeter)당 0.0005달러로 책정된 제미나이 프로의 가격. 단 문자는 AI가 인식할 수 있는 최소 글자 단위인 토큰과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유의. [이미지출처=구글 블로그]

구글은 '구글 AI 스튜디오‘에서 자사 모델을 제공하는데, 1분당 60 쿼리를 초과해 사용하는 기업에만 비용을 요구합니다. 즉 1초에 1쿼리 미만의 빈도로만 AI를 사용하면 구글의 최신 AI 모델이 사실상 무료라는 뜻입니다. 이후에는 자체 AI 개발 플랫폼 ’버텍스 AI‘를 통해 문자(characters) 1000개 생성당 0.0005달러(0.65원)의 가격을 책정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이 가격을 토큰 기준으로 환산하면 제미나이 프로 버전의 경우 1000토큰당 대략 0.002달러(약 2.62원)입니다. GPT-4 터보보다 10배 이상 싸다는 뜻입니다.

구글의 가격 정책은 오픈AI를 비롯한 다른 AI 기업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할 뿐만 아니라, 비싼 돈을 마련할 여유가 없는 개인이나 연구소, 신생 스타트업을 구글 생태계로 끌어들이는 구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치킨 게임

치킨 게임은 시장 점유율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기업들이 출혈을 감수하고 가격 경쟁을 펼치는 현상을 뜻한다.

수익 사업화는 AI 시대를 열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AI는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완성된 AI 모델을 스마트폰이나 랩톱에 '배치'하려면 AI 추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여기엔 수많은 그래픽처리유닛(GPU),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설비, 전력 등이 요구됩니다. AI 업체들이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업계의 지속적인 발전도 가능해질 겁니다.

다만 이번에 구글이 보여준 움직임은 모든 AI 기업이 동일한 출발 선상에 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구글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AI 기업이며, 관련 인프라와 엔지니어 인력을 갖추고 있기에 AI 사업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검색 포털 사업자인 구글은 지금도 매초 9만9000개의 검색 쿼리를 처리합니다. 매 1분마다 590만 쿼리, 24시간마다 85억 쿼리, 매년 2조 쿼리에 달하는 작업량입니다. 이처럼 막대한 네트워크 트래픽을 관리해 온 구글의 기술력이 고스란히 AI 상업화에도 적용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구글과 어깨를 견주는 또 다른 빅테크인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지원받는 오픈AI도 여기서 물러서진 않을 겁니다. 사실 오픈AI는 챗GPT의 상업화를 시작한 지난 3월 이후 계속해서 가격을 인하해 왔습니다. 또 MS가 자금과 인프라를 지원해 주는 한, 오픈AI는 앞으로도 구글과 경쟁할 여력이 있을 겁니다.

이런 양상은 빅테크처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는 다른 기업들, 특히 스타트업이나 군소업체들에는 큰 고민을 안겨줄 겁니다. 인프라, 인력, 자본력 모두 부족한 스타트업들이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좋은 AI'를 만드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거대 기업들의 가격 출혈 경쟁을 우회하면서 소비자와 상생할 수 있는 새 사업 모델을 구상하는 게 급선무일 겁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