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둘러본 팔현습지... '공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선

정수근 2023. 12. 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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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 팔현습지에 필요한 건 개발 아닌 보전이다

[정수근 기자]


올 들어 최고의 한파가 찾아온 22일 동짓날 아침 금호강 팔현습지를 찾았다. 21일  부산MBC와 대구MBC가 함께 제작 방영하는 <예산추적프로젝트 빅벙커>(아래 빅벙커)에서 팔현습지 이야기가 방영된 후라, 팔현습지를 찾고 싶어졌던 것이다.  

<빅벙커>에서 낙동강유역환경청은 팔현습지가 보전지구가 아니라 친수지구라서 개발이 가능하다 주장했다. 그런데 2018년 진행된 엉터리 지구 개악 문제부터 큰 문제지만, 아무리 친수지구라 해도 그곳에 멸종위기종들의 서식이 확인됐다면, 그것도 14종이나 확인됐다면 공사를 강행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빅벙커> 보고 동짓날 아침 팔현습지를 찾다

낙동강유역청의 씁쓸한 태도를 곱씹으며 동구 방촌동 강촌마을에 다다랐다. 동짓날답게 금호강 제방에 올라서니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모자와 장갑으로 손과 머리, 얼굴을 단단히 감싸고 팔현습지로 향했다. 날은 비록 매서웠지만 하늘은 쾌청하니 맑았다. 찬 공기를 마시고 걷는 이런 날이 탐방하기 제격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습지 속으로 들어갔다.
 
 청둥오리, 쇠오리, 묽닭들이 금호강을 점령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앙상한 왕버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름답다.
ⓒ 대구
     
강촌햇살교를 건넜다. 청둥오리, 쇠오리, 물닭들이 열심히 먹이활동을 한다. 그 가운데 천연기념물 원앙 한 마리도 목격된다. 겨울 팔현습지는 이처럼 겨울철새들의 공간이다. 강 가운데는 이들 철새들이 항상 점령하고 있다.

겨울철새들을 뒤로 하고 햇살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 강변숲으로 들어섰다. 잎이 모두 떨어진 왕버들과 버드나무가 나목이 되어 앙상하게 서 있다. 그 사이를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름다웠다.

강물은 가장자리에서부터 얼고 있었다. 습지 군데군데 웅덩이는 꽁꽁 얼었다. 겨울 팔현습지의 모습은 단조로웠다. 하천숲을 벗어나 팔현습지의 터줏대감 수리부엉이 부부가 둥지를 튼 하식애 앞에 다다랐다.
  
 수리부엉이 현이가 하식애에서 졸고 있다.
ⓒ 대구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수리부엉이를 찾았다. 하식애를 일별하고 바로 "저기 있네" 혼잣말을 했다. 암놈 '현이'가 나무 아래 백수의 제왕다운 위용을 뽐내며 앉아 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봐도 그 아우라가 대단하다. 수놈 '팔이'의 모습은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안 띄는 곳으로 꼭꼭 숨어든 모양이다.
현이를 뒤로 하고 왕버들숲으로 향했다. 왕버들 23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이 오래된 숲의 왕버들도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뻗어 있다. 그래도 원시 자연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숲의 위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왕버들숲이 원시 자연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대구환
   
 하식애 틈으로 뻗어있는 고드름이 완전한 겨울풍경을 연출해준다
ⓒ 대구
   
숲 안으로 더 들어가니 고드름이 하식애 바윗틈 사이로 죽죽 뻗어있다. 장관이었다. 겨울만의 풍경이었다. 고드름 다발이 여럿이다. 가장 안쪽까지 들어갔다. 강변에서 서 보니 수달이 배설을 하고 간 흔적이 보인다. 

왕버들숲을 다시 돌아나와 이제 작은 동산과도 같은 이 하식애를 타고 올라 이 일대를 탐사하기로 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 전부터 저 하식애를 올라 능선의 야생의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가파른 길을 어떻게 오르는가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경사가 조금 완만한 곳으로 뭔가가 오르내린 흔적이 보인다. 바로 고라니나 삵 등의 야생동물이 드나들어 좁은 길이 된 오솔길이었다. "바로 저기다" 혼잣말을 한 후 그곳을 공략했다.
 
 수리부잉이가 오리류를 잡아먹은 흔적으로 보인다. 오리의 발이 선명하다.
ⓒ 대구
   
조금 완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라 가팔랐다. 겨우 무게 중심을 잡아 산을 올랐다. 그래도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올랐다. 오르면서 수리부엉이가 식사하고 남긴 모습 같은, 오리류의 털과 발 등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흔적은 오래되지 않았다. 바로 어제 저녁에 식사하고 남긴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지그재그로 산을 올라 비로소 능선에 다다랐다. 능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 보았다. 조금 안 가 철망을 만났다. 그 철망 너머 50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넓은 야외 주차장이 나오고, 그 너머는 바로 호텔 인터불고다.
 
 호텔 인터블고 야외주차장에서 내려다 본 팔현습지
ⓒ 대구
     
그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니 팔현습지가 고스란히 눈앞으로 다가온다. 이곳에서 조망하는 풍경이 아마도 팔현습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금호강을 따라 길게 쭉 뻗어 있는 팔현습지가 고스란히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인터불고 주차장을 돌아나와 이제 반대편 쪽을 향해 야생 친구들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곳곳에 고라니 똥에 눈에 들어오고, 네발 짐승이 몸을 비빈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네발 야생동물이 들을 비빈 흔적
ⓒ 대구
 
그 흔적들을 살펴본 후 능선에 올라서니 조금 넓은 오솔길이 있고 그 오솔길을 따라 더 올라가니 참나무가 이상한 형태를 보인다. 옹이 같은 구멍이 숭숭 나 있다. 한두 그루가 아니라 여러 그루가 그런 형태를 띄고 있다.

하늘다람쥐의 둥지와 똥을 발견하다

동굴 같은 그 구멍에도 생명의 흔적이 있을 거 같았다. 대여섯 그루의 나무 중에서 두 그루에서 아주 조그마한 똥을 발견했다. 그 정체가 궁금했다. 추적자학교 하정옥 대표에게 연락했다.
 
▲ 하늘다람쥐 둥지와 똥 ⓒ 정수근

   
하늘다람쥐 똥이란 설명이 들려온다. 하늘다람쥐의 둥지를 찾은 것이다. 깊은 산속에서나 주로 목격되는 하늘다람쥐가 이곳을 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다. 팔현습지의 생태적 온전성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다.

하늘다람쥐까지 14종의 법정보호종이 이곳 팔현습지를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팔현습지 중에서도 이 하식애 주변의 좁은 지역에 말이다. 이곳이 숨은 서식처(cryptic habitat)인 이유다. 멸종위기종들의 최후의 보루.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이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바로 이 하식애 앞으로 8미터 높이의 교량형 보도교를 건설하려 하고 있다. 길이 완공돼 사람들이 밤낮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게 되면 이곳의 생태계는 교란되고 생태적 온전성이 사라질까 두렵다. 
 
 팔현습지에 공사를 알리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공사가 임박했다.
ⓒ 대구환경
   
다시 하식애 절벽을 내려와 아래에서 하식애 절벽을 바라본다. 수리부엉이 현이가 좀 전 모습 그대로 앉아 졸고 있다. 보도교가 설치되면, 수리부엉이 부부가 하식애를 떠나게 되지 않을까. 
 
 하식애 밑 강변에 수달이 왔다갔다. 수달 똥이 놓인 이 앞으로 교량형 보도교가 건설된다.
ⓒ 대구
   
"인간과 자연은 공존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의 화두다. 공존을 하려면 공존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 질서는 이렇다. 인간이 많이 살아 개발해야 할 곳은 개발해야 할 것이고,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은 야생의 친구들을 위해서 개발이 아닌 보전을 해야 한다.

사람이 많이 사는 방촌동 쪽은 개발하고, 강 건너 팔현습지 쪽은 사람이 살지 않으니 보전해서 야생의 친구들이 평화로이 살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공존의 원리인 것이다. 야생의 영역인 팔현습지까지 개발을 하겠다는 것은 인간의 지나친 욕심으로 그것은 탐욕이다. 탐욕을 버리고 공존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

<빅벙커>에 출연해 필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렇다. 공존의 질서를 위해서라도 팔현습지 보도교 공사는 중단돼야 한다. 그것이 공존의 원리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지난 15년 동안 우리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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