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쓸어담던 유커 없이도 대박…명동이 다시 살아난 비결

최선을, 이수정 2023. 12.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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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온 리아 팡(13)양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 가수인 txt의 수빈 얼굴이 들어간 네임 스티커를 만들었다. 이수정 기자


20일 낮 12시쯤 서울 중구 명동역 앞 12층짜리 다이소 매장. 1층은 외국인 관광객 50여 명이 셀프 계산대에 줄을 서는 등 북적였다. 3층은 계산대도 없지만 대기 줄이 생겼다. 원하는 사진을 넣어 ‘네임 스티커’를 만드는 기계 2대가 있어서다. 홍콩에서 연말을 맞아 모녀 여행을 온 리아 팡(13)양은 평소 가장 좋아하는 K팝 아이돌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수빈의 얼굴을 넣은 스티커를 만들었다. 그는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친구들에게 선물로 줄 스티커도 잔뜩 만들었다”며 웃었다.

다이소 명동역점 3층에 마련된 포토 네임 스티커 제작 기계 앞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수정 기자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형태가 바뀌면서 ‘관광 1번지’ 명동의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명품과 고가 화장품을 쓸어 담던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은 찾아보기 어렵고, K콘텐트를 체험하려는 수요가 급증했다. K패션·K뷰티 매장은 개별 관광객이 좋아하는 상품과 초대형 매장을 앞세워 ‘핫플레이스’를 노린다.

눈이 내린 지난 1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SPA 패션 브랜드 ‘스파오’ 명동점은 지난달 단일 매장 역대 최대 매출(30억원)을 기록했다. 올 1~11월 외국인 관광객 방문은 전년 동기 대비해 2배 늘었고, 해외 카드 결제 건수도 3.2배 증가했다. 포켓몬·산리오 같은 캐릭터나 K팝 아티스트와 협업한 아이템이 인기다. 올 5월 재단장한 이 매장은 기존에 창고로 사용하던 3층 공간을 ‘컬래버 존’으로 새롭게 꾸몄다. 스파오 관계자는 “새로 확장한 3층 공간에서 미니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 등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트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파오 명동본점 1층 출입구 앞에는 캐릭터 잠옷을 전시하는 마네킹이 있다. 이수정 기자


이날 방문해보니 캐릭터 ‘담곰이’로 꾸며진 포토존이 눈에 띄었다. 피카츄·잔망루피 등 다양한 캐릭터 잠옷을 사이즈별로 전시하고, 고객이 잠시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마련했다. 홍콩에서 여행 온 타미(30)는 추운 날씨에 외투를 구매하러 들어왔다가 캐릭터를 좋아하는 아들 손에 이끌려 3층에 들렀다. 결국 이들은 잠만보 등이 그려진 캐릭터 잠옷 3벌을 추가로 샀다. 그는 “캐릭터가 귀엽고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아 한국에서 입다가 가져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스파오 명동본점에서 잠옷을 구매한 로리(11)군이 담곰이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수정 기자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23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해 158.3% 늘었다. 올해 들어 월 최대 기록이다. 국적별로 보면 일본(25만5000명)이 가장 많고 이어 중국(24만9000명), 미국(11만6000명), 대만(9만7000명), 태국(4만6000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김경진 기자


방한 외국인 관광객의 국적이 다양해지면서 명동 상권의 중국 관광객 의존도도 크게 낮아졌다. 명동 지역 올리브영 매장 6곳의 국가별 고객 비중은 2019년만 해도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영미권 순이었지만 올해는 동남아시아, 일본, 중국, 영미권 순으로 바뀌었다. 이날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에서 만난 수잔(24)은 “호주에는 색색의 화장품을 쉽게, 하나씩 써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한국에 오면 이런 매장에 꼭 들르고 싶었다”며 “오늘은 오전 내내 여기서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특화 매장으로 지난달 재단장한 이 매장은 1157㎡(약 350평) 규모로, 올리브영 점포 중 전국에서 가장 크다. 방문객의 90%가 외국인이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K뷰티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명동에서 꼭 들러야 하는 관광 코스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올리브영의 명동 매장들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약 7배 올랐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4배 늘었다. 명동 상권이 살아나면서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꼽히는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부지(169.3㎡)의 내년 공시지가(㎡당 1억7540만원)도 올해보다 0.7% 오르며 3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2022년엔 8.5%, 지난해 7.9% 하락했었다.

호주에서 한국을 찾은 케빈(25)과 수잔(24)이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에서 웰컴기프트를 받으려고 QR코드를 찍고 있다. 이수정 기자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는 “글로벌 물가 상승으로 가성비 쇼핑 성향이 강해지고, 여행의 목적이 체험으로 이동하는 중”이라며 “기업들이 유동인구가 많은 명동에 체험형 매장을 늘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난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과거 명품 싹쓸이 쇼핑에 나섰던 중국인 해외 관광객들이 달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 소셜미디어(SNS)가 성장하면서 젊은 층이 여행할 때 관광 명소에서 ‘셀카’를 찍는 것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특화 매장인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에서 고객들이 색조 화장품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올리브영

이런 변화에 면세점도 개별관광객 선점을 위해 나섰다. 신세계면세점은 전날 홍콩 최대 항공사 캐세이퍼시픽항공과 마케팅 업무협약을 맺었다. 캐세이퍼시픽 회원 1000만 명은 내년 2월부터 마일리지로 신세계면세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여행과 면세의 새로운 시장 패러다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최선을·이수정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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