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수놓은 하얀 순록 뿔… 雪雪 걸어서 순백의 나라로

남호철 2023. 12. 2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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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오대산 비로봉 눈꽃 산행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비로봉 산행에 나선 등산객이 눈꽃으로 황홀하게 치장된 나뭇가지 터널을 지나고 있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설국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하얀 눈 사이 빨간 배낭과 파란 하늘이 강렬한 색채대비를 이루고 있다.


오대산(五臺山)은 강원도 평창군·강릉시·홍천군에 걸쳐 있다. 주봉인 비로봉(1563m) 외에 호령봉(1531m)·상왕봉(1491m)·두로봉(1422m)·동대산(1434m) 등 고봉을 품고 있다. 이 다섯 봉우리 사이사이에 다섯 개의 ‘대’(臺)가 있어 오대산이다. 삼재가 들지 않는다고 해서 조선시대 사고(史庫)가 자리했던 곳이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지만 설경의 매력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오래되고 기품 있는 전나무·자작나무·신갈나무 등이 눈과 빚어내는 오대산의 겨울 풍경은 깊고 묵직하다.

비로봉 산행은 상원사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한다. 이 코스는 엄동설한에도 인적이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추울수록 찾는 이가 늘어날 정도다.

무료주차장을 나오면 등산로 입구에 ‘관대걸이’라는 버섯 모양의 비석이 눈길을 끈다.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목욕하기 위해 옷을 벗어 걸어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약 30분을 오르면 오대 중 하나인 중대(中臺) 사자암이 나온다. 사자암을 지나 가파른 계단 길을 10분 정도 올라 적멸보궁에 이르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비로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국립공원공단이 설치해 놓은 계단도 눈에 덮여 형태를 찾을 수 없다. 당일 기온 영하 21도에 체감기온 영하 32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 입김은 눈썹에서 하얗게 얼어붙었고, 모자 밖으로 흘러내린 땀방울은 귀밑머리에 고드름으로 맺혔다.

눈 덮인 상왕봉과 강릉시를 좌우로 내려다볼 수 있는 비로봉 정상석(위)과 눈 덮인 관대걸이.


길은 험하지만 아름드리 전나무·물박달나무·들메나무·피나무 사이를 휘돌아 오르면 겨울 산행의 참모습을 맘껏 느낄 수 있다. 나무들은 보물 같은 얼음꽃(氷花)·눈꽃을 달고 영롱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눈을 뒤집어쓴 나뭇가지는 순록의 뿔을 닮았다.

비로봉 직전 가파른 경사길은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한다. 비로봉은 높은 산세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들어놓은 전망대처럼 널찍하고 평평하다. 상왕봉, 두로봉, 노인봉, 동대산 등 병풍처럼 펼쳐진 오대산의 주요 봉우리가 한눈에 담긴다. 하얀 눈으로 덮인 봉우리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동쪽으로 동대산과 노인봉 너머 강릉 주문진 앞바다가 펼쳐지고 북쪽으로 설악산의 장쾌한 마루금이 이어진다. 남쪽으로 황병산과 그 뒤 풍력발전기가 우뚝한 선자령이 아스라이 보인다. 멀리 발왕산까지 시야에 잡힌다.

선재길에 이색적인 섶다리가 오대천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떠내려가 ‘여름다리’로 불렸다.


상원사에 되돌아오면 월정사까지 오대산 선재길이 이어진다. 흙, 돌, 나무, 물을 밟으며 오대천을 넘나드는 약 9㎞ 거리의 사색과 치유의 길이다. 과거 오대산 화전민들이 나무를 베어다 팔던 삶과 애환의 길이기도 하다. 대부분 평지여서 누구나 부담 없이 걷기 좋다. 가을에 붉은 단풍이 수려한 계곡길은 겨울이면 눈꽃 트레킹의 설국으로 변신한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눈 덮인 섶다리가 이색적이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10∼11월에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와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참나무나 소나무로 만든 상판에 섶(잎이 달린 잔가지)을 깔아 겨우내 오대천을 건너는 데 이용했다.

아픈 역사도 남아 있다. 일제는 상원사까지 철길을 깔아 오대산의 울창한 소나무, 박달나무, 참나무 등을 벌채한 뒤 주문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했다. 회사거리는 당시 베어낸 나무를 가공하던 회사(제재소)가 있던 터다.

조선의 역사도 시련을 겪었다. 선재길 중간쯤 ‘섶다리’와 ‘동피골’ 사이에 조선왕족실록과 의궤를 보관하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의 하나인 오대산 사고 터가 있다. 이곳에 있던 조선왕조실록 788책이 일제강점기 때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됐다. 간도 대지진 때 대부분 불탔고 27책만 1932년 우리나라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왔다. 일본이 2006년 또 다른 47책을 우리나라에 넘겨 오대산 사고본은 현재 74책이다.

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을 전시하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지난달 12일 매표소 옆에 문을 열었다. 오대산 사고본 ‘성종실록’ ‘중종실록’ ‘선조실록’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행메모
오대산 비로봉까지 3.5㎞, 왕복 4시간
조선왕조실록박물관 11월 무료 개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은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에서 가깝다. 대중교통으로는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까지 시외버스가 오간다. 2시간 20분가량 소요된다. 진부에서 월정사까지 시내버스로 15분쯤 걸린다.

상원사에서 비로봉까지는 3.5㎞다. 4시간 정도면 왕복할 수 있다. 비로봉에서 상왕봉·미륵암을 지나 소명골로 해서 상원사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약 9㎞에 8시간쯤 소요된다. 다만 눈길 산행에서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게 좋다. 눈이 많이 오면 입산이 통제될 때도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 값진 유산을 만나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겨울철(11~4월)에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입장할 수 있다. 매주 화요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 당일은 휴관이다. 관람료는 무료다. 오대산은 입장료는 면제됐지만 주차료는 내야 한다.

오대산 입구에 산채전문식당가가 조성돼 있다. 오대산에서 나는 산나물을 사용하고, 정갈한 것이 특징이다. 대관령에서 말린 황태구이와 오징어와 삼겹살이 곁들여진 오삼불고기 역시 평창의 별미다.

진부 오대천 둔치에서 오는 29일부터 평창송어축제가 열린다. 내년 1월 28일까지 얼음낚시, 팽이치기, 썰매 타기, 눈썰매 등 전통 놀이를 비롯해 스케이트, 스노 래프팅, 얼음 자전거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오대산(평창)=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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