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9년 만에 택배가 왔습니다!
사랑만이 그러할까. 실은 사물만 봐도 그러하다. 열렬하게 환호하다가 당연하게 만끽하다가 심드렁히 지루해하는, 우리가 ‘변심’을 이야기할 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 하면 말이다. 이리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새해 새 목표가 정해진 건가 ‘뚝심’이라 쓰고 보니 웬만하면 약한 척했고 쉽게 주저앉아버렸고 자주 감당할 재간이 없다고 두 손 놓아버린 올해의 이런저런 사정 앞에 나의 면면이 선명하다. 속속들이 내 문제는 내가 가장 잘 아는데 요목조목 고칠 내 속내라면 내가 명의인 것도 맞는데 그렇지, 문제는 미루는 게 아니라 푸는 거 맞지.
엊그제 저녁 늦은 참에 친애하는 화가 선생님으로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2014년 2월 19일 내가 한 시인에게 사인해서 보낸 산문집이 사진 속 거기 들려 있었다. “선생님 제가 소방 점검으로 소화전을 열었다가 이 책이 있는 걸 발견했어요. 택배에 적힌 주소는 이미 풍화되어 안 보이는데 선생님이 보냈던 분에게 제가 대신 보내드리고 싶어요.” 자그마치 9년 전 택배 봉투가 테이핑이 된 그대로 다음 사진 속에 따라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9년 전 살다 이사를 나간 집에 내가 좋아하는 화가가 2년 전 이사를 들어가 살 수는 있었겠으나 소화전을 청소하려 열어보는 손과 봉투를 전하고자 뜯어보는 다정한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우리 셋을 한데 묶는 근 9년 만의 택배는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을 터.
모르는 사이였다가 하루아침에 아는 사이가 되어버린 시인과 화가는 용케도 86년 호랑이띠 동갑내기였다. “이 범상치 않은 인연을 누가 믿겠어요. 우편물이 이어준 사이니까 두 분 주고받는 필담으로 책 한 권 기획해보면 어떨는지.” “지금 당장이요?” “이렇게 갑자기요?” 뚝심을 가능하게 하는 단단한 생각인지 고심의 여지를 재고할 틈도 없이 나는 그만 즉흥의 탬버린을 또다시 흔들어버렸다. 즉흥의 대명사인 나여, 사람 참 쉽게 안 바뀌는 거? 그건 진짜 맞지.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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