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㊶] 여유롭지만 아슬아슬…라오스에서 운전하기

데스크 2023. 12. 1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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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두 달 정도 지내다 왔다. 딸과 사위가 운전할 때 조수석에 앉아 있으면 내 발이 먼저 브레이크 잡기가 일쑤다. 언제 어디에서 오토바이가 튀어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관광지에 다닐 때마다 자녀들과 함께할 수 없기에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 날 직접 운전해 돌아보기도 했다. 이에 대비해서 출국 전에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오토바이에 3명이 타고 도로를 달리는 모습ⓒ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은 인구가 95만 명 정도이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 혼잡이 심하다. 직장인들의 근무 시간은 8시에서 오후 4시까지다. 날씨가 덥다 보니 우리보다 1시간 빨리 움직인다. 도로에는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많아 보인다. 작은 오토바이에 두세 명은 기본이고 네 명까지 타기도 한다. 그렇다고 앞사람의 허리를 꽉 잡지도 않는다. 뒤에 타고 가며 핸드폰을 보는 등 거의 달인 수준이다. 도심의 중심 도로가 아닌 이상 인도에 주차하는 것은 보통이고 차선 한가운데 세워놓고 볼일을 봐도 불평 없이 비켜서 간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태도다. 불교 국가라 자비 정신이 몸에 배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큰 사거리가 아니면 신호등도 별로 없다. 눈치껏 앞차를 따라간다. 심지어는 신호가 바뀌어도 꼬리를 물고 계속 지나간다. 지난해 미국 갔을 때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 들어서면 우선 멈췄다가 먼저 들어온 순서대로 한 대씩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여기서는 먼저 왔다고 양보해 주지 않는다. 틈이 생기는 순간 끼어들어야 지나갈 수 있다. 질서가 없어 보이고 먼저 가려도 들이밀지만 사고 나는 경우는 드물다. 또 끼어든다고 화를 내거나 경적을 울리지도 않는다. 무질서 속에서도 물 흐르듯 소통되는 것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불법 유턴하는 자동차를 만나도 그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다. 참을성이 많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나도 저런 경우가 있으니 이해해 주는 것일까. 중앙차선도 없거나 보이지 않아 유명무실하다. 반대편 차선이 비어있으면 언제든지 들어와 달린다. 우리 경우는 경적을 울리거나 라이트를 켜며 강력하게 경고할 텐데. 아이러니하다.

오토바이에 3명이 타고 도로를 달리는 모습ⓒ

음식 찌꺼기나 사료를 주어야 하는 돼지 이외의 가축은 거의 방목한다. 커다란 개들이 골목이나 도로에 한두 마리 또는 떼 지어 돌아다닌다. 걸어가는데 흰 이빨을 드러내 놓은 개가 옆을 스쳐 지나가면 소름이 돋는다. 시골길을 달릴 때는 소나 염소 떼를 조심해야 한다. 여러 마리의 소가 도로에 누워있거나 길을 가로질러 다닌다. 자동차가 가까이 가도 비킬 줄을 모른다. 닭과 오리도 도로를 놀이터 삼아 다닌다. 언제 어디에서 가축들을 만날지 몰라 천천히 달려야 한다. 여유롭게 아름다운 주변 경치를 구경하면서 쉬엄쉬엄 다니는 것이 좋다.

고속도로나 국도의 제한속도가 50~60킬로 정도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송태우를 비롯하여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섞여 다닌다. 언제 어디에서 움푹 파인 곳이 나타날지 모르니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다. 무심코 달리다가는 뒷좌석에 탄 사람은 천정에 부딪힐지도 모른다. 루앙프라방에서 꽝시폭포로 가는 도로는 워낙 요철이 심하여 손주들에게 멀미약을 먹이고 가야 할 정도다. 툭툭이나 송태우는 길 웅덩이를 피해서 잘도 달린다. 어릴 때 커다란 미루나무가 서 있던 고향 신작로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동차가 지나가고 나면 뽀얀 먼지로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비 오는 날이면 도로 웅덩이에 고인 물이 튈까 봐 자동차가 다가오면 길 밖으로 도망가던 일이 생각난다.

움푹 파인 곳이 곳곳에 있어 속도 내어 달리기가 곤란한 도로 사정ⓒ

길거리에서 교통경찰이 검문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얼마 전에 사위와 딸이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서 투덜거린다. 경찰이 차를 세워 면허증을 보여달라고 했단다. 마침 그날 면허증을 소지하지 않아 난감하여 지갑에서 10만 킵 지폐 한 장을 건넸더니 한 장 더 달라고 하여 두 장을 주었다며 억울해한다. 외국인일 경우 실랑이보다는 돈으로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라고 한다. 하루는 낮에 운전하고 가는데 경찰이 차를 세운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괜히 가슴이 벌렁거린다. 창문을 열고 면허증을 보여주자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말도 못 하고 두리번거리자 규정 같은 것을 보여주며 한참을 이야기하는데 낮에 라이터를 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데 여기서는 아닌 모양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10만 킵 지폐 한 장을 내밀자 말도 못 하는 어리벙벙한 외국 노인이라 불쌍해 보였던지 가라고 한다.

얼마 전에 사위가 운전해서 아내와 셋이서 비엔티안 외곽의 소금공장을 구경하러 가는 도중에 경찰이 우리 차를 세운다. 도로 옆에는 경찰 10여 명이 앉아 쉬고 있다. 국제운전면허증을 제시하자 자동차세 납부증명서를 요구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자 날씨가 더워 맥주를 마셔야 하니 돈을 좀 달란다. 외국인이 걸려 한 건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끝까지 못 주겠다며 버틴다 해도 시간만 허비할 것 같아 10만 킵 두 장을 건네자 옷 소매에 끼워 넣는다. 그러더니 세 사람이 탔으니 한 장을 더 달란다. 돈을 받아 이번에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자동차 안을 살피더니 뒷좌석에 탄 아내가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며 꼬투리 잡는다. 옆에 있는 동료들과도 나누어야 하니 한 장을 더 달란다. 벌써 석 장을 준 입장에서 한 장 가지고 다툴 수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또 줄 수밖에. 그러자 창문에 걸쳤던 팔꿈치를 빼더니 웃으며 가라고 한다.

도로를 무리 지어 걸어 다니는 소ⓒ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10만 킵이 우리 돈으로 7000원 정도이니 2만 8000원을 뜯긴 것이다. 대단한 돈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라오스 지폐의 제일 큰 단위가 10만 킵이다. 경찰이 외국인들을 만나면 봉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요구하는 게 다반사란다. 그 이후로 운전할 때 주머니에 10만 킵 2장을 넣고 다닌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는 교통경찰 단속에 걸리면 면허증과 함께 5000원짜리 지폐를 건네기도 했었다. 이런 일화를 들려주면 자식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오랜 세월이 필요했었다.

라오스에서 운전은 아슬아슬하여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경적 울림소리 한번 들리지 않고 원활하게 흘러가는 걸 보면 신기하다. 무질서해 보이는 가운데도 교통사고가 거의 없는 것은 과속할 수 없는 도로 사정과 느긋한 국민 정서도 한몫하는 것 같다. 교통환경이 개선되고 국민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공무원들의 잘못된 시각이 라오스에서도 전설이 되지 않을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본다. 한국에 태어난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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