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거유풍적지방 | 윈난성에서 만든 차가 어떻게 티베트까지…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기자(sky6592@mk.co.kr) 2023. 12. 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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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중국 춘절(春節·음력설) 연휴에 방영된 류이페이(유역비), 리셴(이현) 주연 드라마 <거유풍적지방(去有風的地方)>이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배경으로 나온 윈난(雲南·운남)성 다리(大理·대리)가 올해 중국 내 최고 여행지로 떠올랐다는 전언이다.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거유풍적지방’. 드라마를 보면 제목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그냥 이해가 된다. “이곳이 바로 바람이 머무는 곳이구나” 싶은….

특급호텔 호텔리어 쉬홍티우(유역비·오른쪽)는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후 친구가 가고 싶어했던 윈난 성으로 무작정 떠난다. 그곳에서 세즈야오(이현·왼쪽)를 만나 ‘바람이 머무는 곳’ 윈난의 매력을 물씬 알아간다.
특급 호텔 호텔리어 쉬훙더우(유역비 분). 냉장고에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음식만 들어차 있을 정도로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며 하루하루 정신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가끔 그런 일상을 벗어나는 것은 절친 천난싱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 정도. 그 천난싱이 갑자기 췌장암에 걸려 사망하자 쉬훙더우는 삶의 의욕을 잃는다.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가 평소 “꼭 함께 가보자”고 조르던 윈난성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다.

쉬훙더우가 ‘윈난성 석달살기’를 위해 택한 숙소는 윈먀오촌의 ‘유풍소원’. 일종의 게스트하우스? 민박집? 집 세 채를 터서 하나로 만들었다는, 정감이 물씬 풍기는 시골집이다. 쉬훙더우가 윈먀오촌에 도착한 날부터 맞부딪히기 시작해 계속 인연이 이어지는 세즈야오(이현 분).

세즈야오는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마친 후 투자전문가로 일하다 고향 윈먀오촌을 살리기 위해 돌아온 남자다. 자칭 ‘마을 대표미남’인 그는 자칭에 부끄럽지 않게 잘생기고 성격도 좋다. 무엇보다 세파에 찌든 느낌이라고는 1도 없는, 그래서 더 눈길이 가는 인물. 친할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살면서 고향 마을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또 마을의 여러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주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쉬훙더우가 윈난에 머무는 동안 서로 마음을 열고 장밋빛 감정에 물들어가는 두 사람, 그리고…

윈난·쓰촨에서 시작한 ‘차마고도’ 인도·네팔까지 이어져
도착지는 세계에서 차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 티베트
<거유풍적지방>의 배경이 된 지역 윈난성 다리 지역은 예부터 차마고도(茶馬古道)로 유명한 곳이다. 단어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차와 말을 바꾸기 위해 다녔던 높고 험준한 옛길 높을 고(高’)가 아닌 옛 고(古)자를 쓴다’ 정도 된다.
차마고도는 평균 해발고도 4000m 이상의 험준한 길이 5000㎞가량 이어진다.
차마고도는 2가지 루트가 있었다. 하나는 윈난 루트, 또 하나는 쓰촨(사천)루트다(윈난성과 쓰촨성은 둘 다 티베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두 루트는 각각 윈난과 쓰촨에서 만든 차를 가지고 가서 티베트인에게 건네주고 대신 말을 받아 오는 교역로였다. 이 길은 티베트를 넘어 네팔·인도까지도 이어졌다.

그중 윈난 루트는 윈난성 시솽반나에서 시작해 다리, 리장, 샹그릴라를 거쳐 티베트에 이르는 길이다. 길이 약 5000㎞에 평균 해발고도 4000m 이상인 험한 길이지만 설산(雪山)과 진사강(金沙江),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 등을 지나는 와중에 만나는 아찔한 협곡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 중 하나로 꼽힌다.

다리, 리장, 샹그릴라는 오랫동안 중국 윈난성 여행의 핵심 지역으로 꼽혀왔다. 차마고도를 따라 물건을 교역하던 상인 조직을 ‘마방’이라 불렀는데 이들 마방이 중간에서 말을 바꾸고 휴식도 취하고 하던 곳이 바로 다리, 리장, 샹그릴라다.

차마고도가 네팔·인도까지 뻗어갔지만 가장 중요한 도착지는 중국 서남쪽, 중앙아시아 고원에 자리잡은 티베트였다. 여기서 퀴즈 하나. 중국에서 차 소비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어디일까? 보이차가 생산된다는 윈난성? 아무래도 차가 호사스러운 일상이다 보니 수도인 베이징이나 돈이 많다는 상하이? NO, NO~ 중국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자리한 티베트다.

윈난성 시솽반나의 차마고도 시작점은 현재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티베트와 맞닿아 있는 윈난·쓰촨에서 차마고도 2가지 루트가 시작된다.
티베트는 당나라 시절 ‘토번’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독립국이었다. 세력도 당나라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성했다. 티베트는 종종 당나라를 침략해왔다. 가끔은 수도 ‘장안’까지 쳐들어와 난리를 쳐놓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 티베트를 일거에 ‘순한 양’으로 만든 것이 바로 ‘차’ 였다.

티베트는 평균 해발 4000m가 넘는 고원 지대에 위치해 있다. 당연히 여름이 짧고 농사를 짓기 어렵다.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풀이 자라는 곳을 따라 이동하며 소와 양을 키우고 그 소와 양을 잡아먹으며 살았다. 곡물이라고는 짧은 여름 한철 잠시 자라는 청보리가 전부였다. 육식 위주 식단에 익숙한 티베트 사람들을 오래도록 괴롭혀온 질병이 있었으니, 바로 괴혈병, 각기병 등 비타민이 부족해 나타나는 질병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차를 마시기 시작한 후 어느 순간부터 그런 질병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차’에 들어 있는 무엇인가가 고질병의 해결사라 믿게 된 티베트 사람들은 ‘차’에 엄청나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당나라가 차를 주면 대신 티베트의 질 좋은 ‘말’을 주겠다고 먼저 제안하고 나선 것도 티베트 사람들이었고, 그때부터 차마고도가 극도로 번성한다.

티베트에 처음 차를 전한 인물은 당나라 황제의 조카딸 문성공주였다고 전해진다.

티베트가 심심하면 당을 쳐들어와 괴롭히자 당나라 황실은 공주를 보내 결혼시키고 평화를 도모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중국 왕조가 채택했던 이민족 정책 중 황실 여성을 이민족의 처로 보내는 정책이 있었는데, 이렇게 떠나는 여인을 화번공주(和蕃公主)라고 불렀다. 당시 티베트는 최초 통일왕국을 세운 송첸캄포가 다스리고 있었다. 당나라 황실은 송첸캄포의 며느리가 될 화번공주로 당시 황제의 조카인 문성공주를 선택했다. 일반적인 스토리라면, 먼 변방 오랑캐 국가에 시집간다고 슬퍼했을 테지만 문성공주는 달랐다. 자신이 당나라와 티베트 사이 가교가 돼 두 국가가 평화롭게 지내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의지를 다지며 티베트로 떠났다. 시집갈 때 문성공주가 바리바리 싸간 물건에 차가 포함돼 있었고 그렇게 티베트에 차가 알려졌다는 후문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캔디처럼 떠나온 굳센 의지가 무색하게 문성공주의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젊어서 과부가 된 문성공주는 그러나 시아버지인 송첸캄포의 부인이 돼 오래도록 금슬 좋게 살았다. 당시 유목민 사이에서는 남편이 죽은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결혼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차를 알게 되면서 지긋지긋한 질병에서 벗어난 티베트 사람들은 “식량 없이는 3일을 살아도 차가 없으면 하루도 살지 못한다”면서 물처럼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차’라는 무기를 쥐게 된 당나라는 티베트에 조금이라도 수가 틀릴라치면 “차를 보내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곤 했다. 티베트는 차를 얻기 위해 어떻게든 당나라 비위를 거스리지 않으려 했고, 그렇게 당나라는 티베트라는 골칫거리를 해결했다.

당나라 시절 강성한 ‘토번<티베트>’국이 심심하면 쳐들어오자
토번 달래기 위해 당나라 황제 조카딸 문성공주 보내
티베트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차를 수입해 갔는데, 그 양을 다 대기 힘들자 중국인들은 싸구려 차를 대거 만들어 티베트에 보냈다. 당나라 때는 쓰촨성에서 만든 차가, 명나라 때는 후난성(호남성)에서 만든 차가 주로 들어갔다. 그러다 청나라 때는 윈난성에서 만든 차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차마고도가 티베트와 국경이 맞닿아있는 쓰촨, 윈난 두 곳에서 시작하는 이유다. 후난성에서 만들어진 차 역시 쓰촨, 윈난으로 옮겨진 후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로 들어갔다.

티베트에 들어간 싸구려 차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찻잎은 어린잎이 가장 비싸다. 어린잎에 영양분과 좋은 맛을 내는 성분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어린잎으로 만든 차를 우리면 차가 부드럽다. 어린잎이 비싸다는 것은 곧 많이 자란 잎은 싸다는 의미가 된다. 많이 자란 잎으로 차를 만들어 우리면 거친 느낌과 쓰고 쇠한 맛이 난다. 중국인들은 많이 자란 저렴한 잎으로 만든 차와 좋은 차를 만들고 남은 찌거기로 만든 차를 티베트에 보내 비싼 값에 팔았다.

거친 싸구려 잎으로 만든 흑차는 주로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모양 차를 ‘전차’라 부른다.
그래도 마지막 양심이 있었는지, 그렇게 만들어낸 맛없는 차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맛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은 한 모양이다. 고민 끝에 찾아낸 방법이 차를 만든 후 차에 물을 듬뿍 뿌려 습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습도가 높으니 자연스레 미생물이 발생했고 그 미생물이 찻잎을 발효시켜 훨씬 달고 부드러운 차맛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발효시켜 주로 티베트로 들어갔던 싸구려 차를 ‘흑차’라 부른다.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6대다류 중 흑차는 지금도 제일 가격이 저렴한 차에 속한다.

모든 음식의 역사는 값싼 재료로 만든 맛없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맛있게 만들어 먹으려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다. 티베트인들도 싸구려 흑차를 조금이라도 맛있게 우려 마시기 위해 자기네만의 방식으로 변형을 가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티베트식 밀크티인 ‘수유차’다.(밀크티 역시 맛없는 홍차를 조금이라도 맛있게 마시기 위해 만들어졌다.)

티베트 수유차는 진하게 우려낸 차에 수유를 넣어 만든다. 수유는 야크나 양, 소의 젖을 끓인 후 식힐 때 생겨나는 지방 덩어리를 가리킨다. 수유뿐 아니라 소금도 조금 넣고 막대기로 오랫동안 휘저으면 수유차가 완성된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 수유차를 수시로 데워서 마시는데 하루 평균 15~20잔을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윈난성 차마고도 공원에 가면 유적으로 남아 있는 예전 ‘마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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