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가 돌아본 2023년, FLASHBACK! (2)

이마루 2023. 12. 15.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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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 그리고 우리가 조금 더 소리높여 자꾸 말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 ELLE MEETS GEN-Z! 」
MZ세대. 특히 Z세대 특징을 나열하거나 비방하는 온갖 ‘밈’과 보도방식에 피로를 느끼던 차, 진짜 Z세대 친구들을 연속적으로 만났다. 〈엘르〉에게 올해는 Z세대를 향한 멋진 추진력과 이들의 뚜렷한 철학을 확신하는 해였다. 그 첫 번째 ‘젠지’는 〈슬램덩크〉 열풍에 휩쓸려 3월호에 만났던 수원여자고등학교 농구부. 딱 다섯 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깔깔거리는, 영락없는 ‘고딩’이었지만 농구 이야기가 시작되거나 코트에만 들어가면 눈빛이 돌변했다. “가슴에 태극 마크 딱 달고 미국을 단번에 이겨버리는 거! 매일 잠들면 꾸는 꿈이에요”라고 당차게 말하던 주장 오시은.

그리고 든든하게 각자의 포지션을 지키는 멤버까지. 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동자에선 큰 야심이 빛나고 있었다. 11월호에 만난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 〈더 데뷔:드림아카데미〉 소녀들의 기세는 또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12개국에서 모여든 18명의 소녀들은 자신만의 정체성과 열정으로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체성을 찾기보다는 집단의 방향성에 휩쓸려 다닌다’며 한 신문 기사가 한 줄로 축약한 젠지 세대의 특징과는 달리 실제로 만난 이들의 정체성과 인생관, 해결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던 시기, 풋풋한 젠지들의 연애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열아홉, 스물〉의 주역 열 명은 편견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촬영 스튜디오’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만나 더 생경하게 느껴졌던 어리고,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 올 한 해 이들을 만나며 무언가를 끈질기게 좇는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원한다’ ‘이루고 싶다’는 언어 속에 살짝 숨겨뒀던 애정과 사랑을. editor 정소진

「 50’S BEAUTY 」
30~40대를 지나 50대의 여성들이 다채로운 서사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는 게 더이상 낯설지 않다. 〈엘르〉는 올해 그 최전선에 있는 여성들을 만났다. 특히 〈닥터 차정숙〉으로 여성들에게 ‘전성기’라는 의미를 재정의하게 만든 엄정화(5월호). 20년 차 주부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고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정숙을 그는 진심으로 사랑했다. 누구든 인생에서 무언가를 크게 자각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때 흔들리거나 위축되기보다 되레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여자로서, 엄정화 또한 30년간 히트곡을 노래하는 디바로, 다양한 여성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로 또 다정한 언니로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 동력을 물었다. “뭐든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끝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앞으로 계속 가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5월호의 또 다른 전사, 김윤아도 물론이다. 끝없이 자신의 고통을 노래하고, 여전히 젊은 여성들을 연대하게 만드는 그의 용감한 노래는 올해도 울려 퍼졌다. 스스로 아동이자 여성으로서 학대받았던 경험을 털어놓았던 김윤아는 자신의 음악에 공감하는 외롭고 취약한 여성들의 곁에 선다.

전무후무 여성 정치 드라마로 쾌감을 안긴 〈퀸메이커〉의 김희애와 문소리는 물론(4월호), 전 세계 단 5%뿐이라는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로 돌아온 이영애(12월호),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여성 서사도 흥행 ‘올킬’할 수 있음을 증명한 〈밀수〉의 김혜수와 염정아, 〈길복순〉의 전도연까지. 장르 불구, 나이 불구, 역할 불구! 굳세게 나아가는 언니들의 발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editor 전혜진

「 사라지지 마 」
ⓒ문선희
기후변화, 빈번해지는 자연재해와 질병들. 이런 변화를 아무것도 모른 채 받아들이고 있을 ‘다른 생명들’에 주목했던 2023년. 그렇게 깊이 파고드니 상상조차 못했던 세계가 펼쳐졌다. 핑크돌고래, 흑고니, 자바코뿔소, 오랑우탄, 대서양 철갑상어, 넓적부리도요…. 4월에는 멸종위기 동물들을 일곱 명의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아티스트와 함께 이미지로 남겼다. 매년 2000여 마리의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그중 40%를 살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는 야생 너구리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고, 황조롱이 · 참매 의 부러진 날개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세계적 멸종위기종이지만 한국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야생 고라니의 정면 초상을 10여 년에 걸쳐 작업한 문선희 작가와의 만남은 어떻게 이토록 순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작업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걱정하는 거예요. 그렇기에 사람들의 사랑과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멈출 수 없도록”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전염병으로 생매장당한 가축들이 묻힌 땅의 흔적도 기록한 적이 있다.
영화 〈수라〉

문선희 작가와 함께 10월에 만났던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는 올해 관객 5만 명을 동원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바닷물을 간절히 기다리는 갯벌 생명들. 덩달아 먹이와 쉴 곳을 잃은 철새들. 〈수라〉의 영어 제목은 ‘A Love Song’. 소외된 생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들의 ‘사랑’에 〈엘르〉도 기꺼이 힘을 보태고 싶다. editors 이마루, 정소진

「 할머니들 」
〈엘르〉는 할머니에 진심이다! 지난 5월호에서 ‘우리 할머니들은 어떤 물건을 좋아했을까? 그걸 자세히 들여다본 적 있던가?’ 하는 물음으로 ‘할머니템’을 찾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물건이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우리가 택한 방법은 창신동 장수마을을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띵똥. 할머니템 취재하러 왔는데요”라며 냅다 벨을 누르며 하는 해괴망측한 소리에도 할머니들은 기꺼이 대문을 열고, 사과를 깎아 내오고, 자신들의 아이템을 이것저것 꺼내놓으셨다. 쉰 살 된 자개 문갑, 돌절구, 맥심 커피믹스, 구몬 학습지까지. 우당탕탕 할머니 방을 휩쓸고 돌아서는 길에 결국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 보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셨으니까. 6월에는 올해 팔순을 맞이한 신달자 시인도 만났다.

어쩌면 〈엘르〉 사상 최고령 인터뷰이. 80세쯤 되면 몸의 변화에 익숙할 줄 알았건만, 시인은 여전히 자신의 늙어가는 몸과 분투 중이다. “젊을 땐 육신을 몰라요. 언제든 당연히 있을 줄 알고, 아파야 비로소 진짜 내 몸을 깨닫게 되죠. 저도 한때는 정신이 가장 근사한 줄 알고, 그것만 좇으려 애썼지만 마치 복수하듯 몸이 나를 괴롭히며 정신세계를 잃게 만드는구나 싶어요. 결국 시로 몸과 화해하게 됐어요.” 시인이 청한 몸과의 화해는 맹렬하고 다정하다. 열일곱 살에 처음 펴낸 시집을 품에 안고 있는 사진에는 소녀의 희망이 보인다. 할머니는 그런 존재다. 가장 아이 같고, 가장 선생 같으며, 우리와 가장 닮은 존재. 여성들의 거울이자 등대. editor 전혜진

「 동물을 데려오는 일 」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나는 〈엘르〉를 만드는 한 해 동안 수십 마리의 개와 마주한다.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못 하는 인터뷰이, 그러나 가장 많은 말을 전하는 〈엘르〉의 어여쁜 손님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쓸 땐 수십 번 고민하고, 가장 적합한 단어를 고른다. 지난 9월호에는 아홉 마리의 특별한 히어로 견들을 만났다. 119구조견, 마약탐지견, 은퇴 군견까지. ‘특수목적견’이라는 이름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청춘을 바쳤건만, 나이 든 이들이 은퇴 후 새 가족을 찾는 일은 녹록지 않다. 이 어려운 ‘동물을 데려오기로 결심한’ 이를 2월호에 앞서 만났다. 해외로 입양 간 개들의 현재 삶을 추적한 〈캐나다 체크인〉을 통해 알려진 동물활동가 고인숙은 ‘진짜 집을 찾기 전’ 보호소에 머무는 그의 임시보호견들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처음 보내기가 가장 힘들어요. 또 버림받았다고 인식할까 봐 미안하고, 그리울 테니까요. 하지만 개들은 새 가정에 가면 뒤돌아보지 않고 잘 살아요. 서운할 정도지만 사회화가 잘 된거죠!” 역시나 베테랑 ‘임시보호러’인 작가 홍조는 새로운 집을 찾는 강아지, 입양된 개들의 얼굴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그렇다면 이 버려진 개들은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수의사이자 동물행동수정 전문가 설채현은 상처받은 개는 키우기 어렵다는 잘못된 인식, ‘블랙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번식장과 펫 숍, 소비자의 3단 고리를 끊기 위한 방법에 관해 명확하게 들려줬다. 인간과 개는 지구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동물을 우리 세계로 데려오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 앞에 지녀야 할 태도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운 나는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유기견을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editor 전혜진

「 이태원을 기억하며 」
이태원 참사 1주기인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그 풍경을 보며 올해 2월 〈엘르〉가 돌아본 이태원 모습이 떠올랐다. 참사가 벌어진 지 3~4개월이 지난 시점, 조심스럽게 이태원을 찾아 주민과 상인이 애정하는 공간과 풍경, 그 이후 달라진 모습을 짚었다. 여전히 이곳으로 출퇴근하며 살아가는 카피라이터, 레스토랑 마이첼시 앞에서 더 이상 친구들과 만날 수 없다는 바 퀘스트의 오너들, 왁자지껄한 케이크 숍의 열기를 그리워하며 ‘이태원 사랑해’ 파티를 열기도 했던 김현아와 넷갈라, 교환 학생 파올라와 여전히 반려견과 산책을 멈추지 않는 주민 비혼세 등. 〈엘르〉가 만난 여덟 명은 전과 같은 일상을 영위하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던 누군가의 부재를 슬퍼했고, 잊지 않으려 했다. 이 마음만은 우리 모두 함께하길. editor 정소진
「 작은 영화의 힘 」
대형 자본 시리즈가 터져나올수록 〈엘르〉는 작은 영화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한 해였다. 배두나와 김시은이 서로의 진심을 껴안고 완성한 〈다음 소희〉가 고발한 실습현장의 현실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통과시키며 영화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해냈다(2월호)! 안소니 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차별을 감내하며 성장하는 여느 이민자 가족들과 함께 걸었다(6월호). 죽음 이후 남겨진 여성이 낯선 땅에서 포착한 희망을 사려 깊게 눌러 담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주역 박하선은 “점점 더 좋지 않은 뉴스가 들려오는 시기, 좋은 영화는 바로 이때 힘을 발휘한다”며 고개를 끄덕인다(5월호). 축복이라 여겨지는 임신이 삶을 가로막는다면? 모성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고뇌하는 여성들이라면 이번 호 〈나의 피투성이 연인〉 감독 유지영의 인터뷰를 읽어보길. editor 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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