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동해 바닷가에 도루묵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김두용 2023. 12.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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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말 강원도 바닷가에 미국 함선이 좌초하였습니다. 미국 독립 기념물을 싣고 프랑스로 향하던 배였습니다. 배에는 중국에 체류를 하여 한자에 밝은 선원이 있었습니다. 그 선원이 나서 바닷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였습니다. 선원은 관아에 신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프랑스로 가져갈 물건을 나누어주며 환심을 샀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은 관아에 신고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배를 고치는 일도 도왔습니다.

배가 고쳐질 동안 심심하였던 선원들은 모래밭에서 야구를 하였습니다. 이를 신기하게 보던 바닷가의 한 소년에게 미국인들이 야구를 가르치며 함께 놀았습니다. 그 소년의 이름은 ‘묵’이었습니다. 한자를 잘 아는 미국인 선원은 야구 용어를 한자로 번역하여 ‘묵’을 가르쳤습니다. 소년은 민첩하여 도루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도루묵’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미국인 선원들 먹으라고 생선을 잔뜩 가져왔습니다. 부드러운 살에 알이 톡톡 터지는 맛있는 생선이었습니다. 소년에게 생선의 이름을 물으니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인들은 이 생선에 소년의 별명을 붙여 도루묵이라 불렀습니다. 오래지 않아 미국 함선은 떠났고, 이 이야기와 함께 도루묵은 동해안에서 유명한 생선이 되었습니다.

그럴 듯하게 들리는지요. 제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에게 익숙한 도루묵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도루묵 어원’으로 검색을 하면 네이버 어린이 백과의 글이 최상단에 뜹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조선 시대 선조 때의 일이에요.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한양으로 밀고 올라오자 선조는 북쪽으로 피난을 가야 했어요. 피난길에 임금이 먹을 것이 적다는 소문을 들은 어느 어부가 선조에게 ‘묵’이라는 물고기를 바쳤습니다.

무척 배가 고팠던 선조는 ‘묵’이라는 물고기를 아주 맛있게 먹었지요. 그러고는 “이렇게 맛있는 생선 이름이 ‘묵’이 뭐냐? 앞으로는 ‘은어’라고 부르도록 해라!”하고 말했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한양 궁궐로 돌아온 선조는 어느 날 피난길에서 맛있게 먹었던 은어가 먹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은어를 다시 먹어 보니 맛이 형편없었어요. 피난길에서는 배가 고파서 맛이 있었지만 궁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니 그 맛이 예전 같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선조는 “맛이 형편없구나. 도로 묵이라고 해라”하고 말했답니다. 이렇게 해서 ‘은어’는 ‘도로묵’이 되었어요.

그 뒤 ‘도로묵’이 ‘도루묵’이 된 것이지요. 이때부터 하던 일이 아무 소득 없는 헛된 일이나 헛수고가 되었을 때, “말짱 도루묵이네”라고 말하게 되었답니다.

이 이야기도 허구라는 것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 선조는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을 갔습니다. 선조가 동해의 생선인 도루묵을 먹었을 리가 없습니다. 왕이 은어라고 이름을 주었다가 다시 묵(혹은 목)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조선의 여러 문헌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왕은 선조가 아니라 다른 왕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것도 허구입니다.

허구에 순기능이 있습니다. 선조가 어떠니 임진왜란이 어떠니 하며 도루묵을 먹다 보면, 도루묵이 더 맛있습니다. 말이 맛을 만듭니다.

도루묵은 돌에 붙어서 산란을 합니다. 그래서 돌묵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강원도 사람들은 돌을 도루라고 발음을 하여 돌묵이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이게 도루묵의 진짜 어원입니다. 진짜 어원도 허구처럼 음식에 맛을 보탭니다.

겨울이 되면 도루묵으로 ‘김장’을 담갔습니다. 도루묵을 소금과 함께 차곡차곡 장독에 넣습니다. 한겨울 눈이 팔팔 날릴 때 도루묵을 꺼내어 하룻밤 물에 담가 짠맛을 빼고는 김장김치를 더하여 찌개를 끓입니다. 이 전통의 도루묵찌개를 저는 강원도 토박이들한테서 말로만 들었습니다. 사라진 강원도 전통 도루묵찌개가 제게는 ‘진짜 허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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