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부산 갈매기’, 발마사지로 전도자 되다!

글,김성지 2023. 12. 12. 16:4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후 대전 유성에서 국민일보 창간 지국장이 되고 나니 교회를 가야겠다는 생각에 주일이면 예배를 드렸다.

대전 유성광명교회(김현주 목사) 발혈치유사역팀장 강춘호 안수집사는 12일 이렇게 간증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유성족욕장에서 모일 수가 없어 이후로는 아픈 분들을 직접 찾아가 유성시장, 경로당, 어르신 쉼터, 교회등에서 발혈치유사역팀과 함께 사역하고 있다.

2015년 1월 교회가 유성 시내에서 공주시 하신리로 이전하게 됐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전 유성광명교회 강춘호 안수집사 간증…어르신들 발마시지로 섬기며 복음 전해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30분에서 6시까지 대전 유성 족욕체험장에서 강춘호(오른쪽 세번째) 안수집사를 만날 수 있다.

“넷째인 내게 어머니는 ‘제사는 네가 지내야겠다’고 유언을 하셨다. 놀기를 즐겼던 나는 술이면 술, 노래면 노래 한바탕 멋을 내고 집을 나서면 고향이 부산이라 별명이 ‘부산갈매기’였다. 그런 내게 교회란 맞지 않는 곳이었고, 교회 첫 발걸음은 아이들이 다니던 교회 선교원 재롱잔치라 안 갈 수는 없어서 술을 마시고서야 갈 수 있었다.

이후 대전 유성에서 국민일보 창간 지국장이 되고 나니 교회를 가야겠다는 생각에 주일이면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2003년 여름부터 제사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가족들과 의가 상하도록 다투고 제사를 끊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하게 서서히 술이 나를 삼키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죽겠구나 싶었다. 그날도 술이 잔뜩 취한 밤이었다. 집에서 눈을 떴는데 앞이 캄캄했다. 들었던 풍월은 있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 나가라’ 하면 귀신이 도망간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서 부르짖었다. 울부짖었다. 그날 밤 내 몸에서 이상한 것이 ‘쑥’ 빠져나가는 경험을 했다. 그 사건 이후 술도 담배도 내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대전 유성광명교회(김현주 목사) 발혈치유사역팀장 강춘호 안수집사는 12일 이렇게 간증했다. 강 집사는 이후 목사와 성경공부를 마치고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이셨던 세족식을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 그즈음 교회에서 발마사지 전도집회에 참석해 발자극관리사를 취득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참 고마워 10여년을 유성 족욕체험장에서 새벽 배달 일을 마치면 몸이 불편한 이들을 도와 발마사기를 시작했다. 그 때 당시 많은 분들이 질병과 노환을 이유로 온천수로 족욕을 하기 위해 체험장을 찾곤 했다. 지팡이를 짚고 오셨다가 지팡이 없이 일어서 걷게 되신 분등 많은 치유의 현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유성족욕장에서 모일 수가 없어 이후로는 아픈 분들을 직접 찾아가 유성시장, 경로당, 어르신 쉼터, 교회등에서 발혈치유사역팀과 함께 사역하고 있다.

2015년 1월 교회가 유성 시내에서 공주시 하신리로 이전하게 됐다. 사역팀은 인근 지역 어르신들을 발마사지로 섬기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한참 모이기가 힘들었던 시절. 상·하신리, 봉곡리, 송곡1·2리 지역 어르신 분들이 코로나와 노환으로, 그리고 지병으로 돌아가시기 시작했다. 그 때에도 한 분, 한 분 찾아가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은혜로 섬겼다.

코로나가 한창인 때 봉곡리 쌍둥이 어르신들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형은 발마사지 봉사를 통해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레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가까운 교회로 인도할 수 있었지만, 동생분은 한사코 반대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돌아가셨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참 쉬운 믿음의 도리, 구원의 도리를 그렇게 함께 전하였건만…. 하지만 내게는 믿어지는 은혜를 허락해 주셨다. 또 한분은 말기암으로 고향으로 내려와 삶을 정리하는 여성이 있었다. 그 누구도 찾아 오지 않았던 시절,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사영리로 예수님 영접하시고 그래도 그 고통하는 분과 함께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야기도 나누며 벗이 되었다. 그래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분도 지금 세상에 없다.

“이렇게 무료로 봉사하니 우리는 좋은데 강집사는 노후 대책 잘 세워 놨어?” 묻곤 한다. “그저 누울 집이 있고, 오늘 일용할 양식 주시고 이렇게 섬길 수 있는 마음과 건강 주시고 주님 부르실 날이면 갈 터인데 무슨 욕심이 더 있어요.” 강 안수집사는 감사하며 웃는다.

대전=글 사진 김성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