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만 관객인데 3편까지 제작된 미스터리한 영화

양형석 2023. 12. 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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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박중훈-박상민 주연의 야쿠자 누아르(?) <깡패수업>

[양형석 기자]

영화가 크게 흥행하면 제작사와 투자사, 그리고 관객들은 한 마음으로 속편제작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완결이 된 영화의 속편이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영화 역사상 21편이 나온 천만 영화 중에서 속편이 제작된 영화는 이미 기획단계부터 속편이 예고됐던 <명량>과 <신과 함께> <범죄도시>를 제외하면 <부산행> 정도 밖에 없다. (<베테랑2>는 내년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후반작업 중이다.)

주인공이 사망했거나(< 7번 방의 선물 >)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들(<택시운전사>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변호인> 등)은 애초에 속편 제작이 불가능하다. <괴물>은 감독을 바꿔 속편을 제작하려 했지만 제작비 등 여러 사정으로 무산됐고 <도둑들>은 영화 개봉 후 잠파노를 연기했던 김수현의 인지도가 급상승해 버렸다. <디워>처럼 10년 넘게 소문만 무성하다가 흐지부지 속편제작이 무산된 영화도 있다.

반면에 1편의 흥행성적과 별개로 꾸준히 속편이 만들어진 영화들도 있다. 물론 속편의 흥행성적은 서울관객 1만 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민망한 수준이지만 1편이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없음에도 이 영화는 속편은 물론 3편까지 만들어졌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일본 야쿠자 세계를 직접적으로 다룬 몇 안 되는 한국영화 중 하나인 김상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깡패수업>이었다.
 
 <깡패수업>은 제목이 주는 강렬함과 조폭영화의 유행에 힘입어 3편까지 제작됐다.
ⓒ 우노필름
 
김두한 이미지 벗지 못한 비운(?)의 배우

1980년대 안성기, 고 강수연 등 주로 스타배우들을 캐스팅해 영화를 만들었던 임권택 감독은 지난 1990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신작 <장군의 아들>을 만들면서 신인배우들을 주요배역으로 캐스팅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시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조선 최고의 주먹' 김두한 역에 캐스팅된 배우가 바로 서울예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상민이었다. 당시 박상민은 그 흔한 단역출연 경험조차 없었던 '생초짜 신인'이었다.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 역을 맡아 쉽지 않은 액션연기를 선보인 박상민은 신선한 이미지를 앞세워 단숨에 스타 배우로 떠올랐다. 3편까지 제작된 <장군의 아들>은 서울에서만 도합 118만 관객을 동원했고 박상민은 단숨에 충무로 최고의 신예배우로 도약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슈퍼히어로를 연기했던 많은 배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박상민 역시 김두한이라는 강렬한 캐릭터 속에 갇히고 말았다.

박상민은 <장군의 아들>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대부분 <장군의 아들>의 김두한을 연상케 하는 거친 역할이었다. 배용준과 전도연이라는 신예스타를 배출한 <젊은이의 양지>의 박인호 역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젊은이의 양지>에서도 박상민이 연기한 캐릭터는 조직 폭력배였다. 박상민은 한창 다작을 하던 1995년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 외에도 무려 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96년 김영빈 감독의 <나에게 오라>에서 최민수와 연기호흡을 맞춘 박상민은 그 해 겨울 당시 한국영화의 '원톱'이었던 박중훈과 함께 <깡패수업>에 출연했다. 박상민은 코미디와 누아르, 액션이 적절하게 섞인 영화 <깡패수업>에서 '재팬드림'을 꿈꾸는 손해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깡패수업>은 청소년관람불가라는 등급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서울 관객 17만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19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전성기가 다소 일찍 저문 박상민은 2000년대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다가 2010년 드디어 <자이언트>라는 '인생작'을 만났다. <자이언트>에서 4남매의 장남이자 안기부 과장 이성모를 연기한 박상민은 주인공 이범수를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2020년에는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을 연기했던 김영철과 만나 합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미화도, 희화도 없었던 야쿠자 영화 
 
 <게임의 법칙> 이용대와 닮았던 캐릭터 손해구(오른쪽)는 이용대와 비슷한 최후를 맞는다.
ⓒ 우노필름
 
김상진 감독은 1999년부터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귀신이 산다>를 연속으로 흥행시키며 코미디 영화 전문 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다. <깡패수업>은 김상진 감독이 코미디 영화 감독으로 정점에 오르기 전, 일종의 '과도기'를 겪던 시절에 만든 영화였다. 실제로 <돈을 갖고 튀어라> 때의 코미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깡패수업>이 주는 뜻밖의 무거운 분위기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깡패수업>은 배경이 일본으로 바뀌고 성공을 꿈꾸는 멋 모르는 젊은 청년 역이 박중훈에서 박상민으로 바뀌었을 뿐, 1994년에 개봉했던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과 진행과정이 상당히 비슷하다. 심지어 출세를 위해 보스를 죽이고 의기양양하던 손해구(박상민 분)가 허무하게 총에 맞고 살해되는 결말까지도 <게임의 법칙>과 유사하다. 중간중간 관객들이 쉬어가라고 추가된 코미디 요소가 있다는 게 <게임의 법칙>과의 가장 큰 차이점.

하지만 <깡패수업>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돼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주류였던 조폭 코미디나 조폭 미화영화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주인공 황성철(박중훈 분)과 손해구를 비롯해 일본의 야쿠자 등 <깡패수업>에서 등장하는 깡패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결말이 좋지 않다. 적어도 <깡패수업>은 깡패와 조폭들의 우정과 의리를 미화하거나 알고 보니 그들도 인간적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1996년 12월에 개봉한 <깡패수업>은 커플 또는 여성관객들이 연말 시즌을 맞아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여성을 구타하는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오는 점은 상당히 불편하다. 물론 영화에서는 스토리의 흐름상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때리는 장면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깡패수업>에서는 불과 30분 전에 사랑을 속삭였던 연인의 뺨을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7대나 연속으로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서울에서 17만 관객을 동원한 <깡패수업>은 1999년 6월 김보성이 주연을 맡은 속편이 개봉했다. 전편의 흥행성적에 기댄 속편이라기 보다는 그 즈음 떠오르던 조폭 영화의 유행에 기댄 속편제작에 가까웠다. 하지만 <깡패수업2>는 서울 관객 3600명으로 흥행에서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0년 최재성이 주연으로 나선 <깡패수업3> 역시 서울 관객 519명으로 흥행참패를 벗어나지 못한 채 <깡패수업> 시리즈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분량에서 피해 본 <깡패수업>의 여주인공
 
 삼숙 역의 조은숙(왼쪽)은 나름 여주인공 포지션이었음에도 영화에서 많은 분량을 가져가지 못했다.
ⓒ 우노필름
 
1995년 영화 <이도백화>로 데뷔한 조은숙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통해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깡패수업>에서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일본 술집에서 일하는 삼숙 역을 맡았다. 자신을 야쿠자로부터 구해준 손해구와 티격태격하다가 연인 사이가 되지만 손해구가 조직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이 커지자 심한 다툼 끝에 결별했다. 조은숙은 <깡패수업>의 여주인공 포지션이지만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두사부일체>를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마이 보스 마이 히어로> <쩐의 전쟁> 일본판 등에 출연했던 일본 배우 오스기 렌은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대중들에겐 제법 익숙한 얼굴이다. <깡패수업>에서는 하리모토파의 부두목 가네다를 연기했는데 성철과 해구의 등장 후 자신의 입지가 좁아진 것에 불만을 가지며 사사건건 이들과 대립한다. 오스기 렌은 2015년 최민식 주연의 한국 영화 <대호>에서 일본군 고관 마에조노를 연기하기도 했다.

강우석 감독의 처남으로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강성진은 1996년 <깡패수업>에서 히카리파 소속의 재일교포 야쿠자 이타이 켄지를 연기했다. 히카리의 부하 사토와 손해구의 러시안 룰렛 심판을 본 것을 계기로 손해구의 부하가 됐지만 라이벌 조직 출신이라는 이유로 손해구와 함께 하리모토 조직에서 왕따를 당한다. 켄지는 형님으로 모시던 손해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다가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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