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라가 된 이영애가 지휘봉을 높게 들었다

김명민 2023. 12. 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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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는 이번에야말로 삶을 제대로 지휘할 작정이다. 보이지 않는 음계들이 강처럼 넘쳐흐르던 그 순간의 선율.

Q : 드라마 〈마에스트라〉 촬영을 막 마쳤습니다. 12월 9일 첫 방송을 앞둔 마음은

A : 떨리죠. 걱정과 함께 설레고요. 차세음은 바이올린도 아주 잘 켜는 지휘자거든요. 8개월에 걸쳐 지휘법과 바이올린을 배우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5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전체를 아우르고 지휘한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쏟는 일이기도 하고요.

깃털 장식 드레스와 이너 웨어로 입은 슬립 드레스, 뮬은 모두 Bottega Veneta.

Q : 방송에서 피아노 연주를 선보인 적 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왔습니다. 그럼에도 음악과 이렇게 본격적으로 조우한 역할은 처음이에요

A : 음악을 좋아해도 클래식을 잘 알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깊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촬영을 마친 지금, 약간 공허한가 봐요. 선생님인 진솔 지휘자와 함께 악보를 보며 연구하는 과정이 재미있어 푹 빠져 촬영했거든요. 곡과 작곡가들에 얽힌 이야기도 듣고요.

Q : 기술적으로 힘든 부분이 예상 가능함에도 차세음 역할을 택한 이유는

A : 프랑스 드라마 〈필하모니아〉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원작 구조가 탄탄하고 재미있었어요. 사건이 진행되면서 인물과 인물 사이의 긴장감이 음악과 어우러지죠. 음악을 들으며 대본을 보니 반신반의하던 마음이 차츰 사라지더군요. 물론 여성 지휘자라는 역할 자체도 마음에 들었어요. 내 모습 위로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한 번쯤 해볼만한 경험이다 싶더라고요.

울 셔츠와 허리 부분에 구조적 실루엣을 더한 스커트, 포인티드 토 부티는 모두 Bottega Veneta.

Q :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었다 내리는 순간의 팽팽한 긴장감은 객석에서도 느껴집니다. 배우로서 현장을 장악할 때도 비슷할 것 같아요

A : 지휘자가 포디엄에 오른 후에는 오직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아무도 도와줄 수 없죠. 강인한 정신력 없이 불가능하다고 봐요. 배우도 카메라 앞에서는 혼자 이끌어가야 하니 그런 면에서는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 평소 현장의 긴장감을 즐기는 편인지 지나고 나면 분명 희열이 있죠. 지휘자를 연기한다는 것은 카메라 앞이라는 무대에서 또 하나의 무대를 연기하는 셈이니까 확실히 더 긴장돼요. 그래도 제법 즐기는 편인 것 같네요.

Q : 진솔 지휘자를 비롯해 실재하는 인물이 많은 영감이나 참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A : 그럼요. 정말 많이 찾아봤어요. 진솔 지휘자의 공연 리허설 때 관객석에서 연습도 해보고, 성시연 지휘자의 리허설도 보고요. 정명훈 선생님은 물론 전설적 지휘자 카라얀의 몸짓과 손짓, 스타일링도 찾아봤습니다. 차세음은 강인한 동시에 자신을 연출하는 법을 아는 엔터테이너적 면모도 있기 때문에 젊고 개성 있는 지휘자들도 많이 참조했어요. 구스타보 두다멜, 장한나…. 남녀를 가리지 않은 것 같아요. 유튜브에 오케스트라 리허설 영상이 정말 많더라고요.

Q : 이영애도 유튜브 영상의 도움을 받는군요(웃음)

A : 그러게요(웃음).

테일러드 코트와 스트랩 샌들은 모두 Dolce & Gabbana.

Q : ‘최초’ ‘벽을 허문’ 등의 수식어는 이영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결혼과 출산 후 복귀해 커리어를 이어가는 일 또한 항상 당연한 것은 아니었죠

A : 선배들이 ‘결혼은 (배우 생활의) 무덤’이라던 시절도 있었죠. 지금은 다행히 그런 시기는 아니고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배우라는 직업에 감사함을 느끼는 일이 많았어요.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았거든요.

Q : 그게 꼭 모성애적 측면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테죠

A : 그럼요. 사물에 대한 시선 자체가 달라져요. 여유도 생기고, 감정의 결이 좀 더 풍부해지죠.

핀스트라이프 수트 드레스는 Alexander McQueen.

Q : 한편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깨는 데도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친절한 금자씨〉(2005)나 〈구경이〉(2021)가 대표적이죠

A : 매일 똑같은 음식만 먹으면 맛없잖아요? 도전이기도 하고, 내가 나를 새롭게 알아가는 작업이기도 해요. 내가 그때의 나이대에 느끼는 것과 보여줄 수 있는 것, 그 새로운 것을 하나하나 시간 흐름에 맞춰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좋은 점이죠. 새로움은 제게 중요한 요소예요. 작품이 새롭거나, 그 속에서 내 역할이 새롭거나.

Q : 제가 연출자라면 이영애의 존재감과 이미지를 활용하고 싶은 욕심이 날 것 같거든요. 누군가의 뮤즈가 되기를 기꺼이 원하는 배우도 있고요

A : 작품에 내가 일종의 소재처럼 쓰이는 일은 주체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부수적 존재로서 나를 상상하기는 어렵네요.

수트 재킷과 크리스털 이어 커프는 모두 Givenchy.

Q :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저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선물〉(2000) 〈봄날은 간다〉(2001) 같은 영화로 10대 때 배우 이영애를 인지했습니다. 가장 여러 번 본 것은 〈구경이〉고요. 이처럼 1990년에 데뷔한 배우 이영애의 궤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를 텐데요.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구간은

A : 다 비슷해요. 20대 때는 일년에 서너 작품을 하며 내달렸죠. 어쩌면 그렇게 체력이 좋냐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요. 그 시간이 밑거름이 됐는지 30대를 〈공동경비구역 JSA〉로 시작하며 좋은 작품들과 함께 배우로 제법 자리 잡게 됐어요. 이후 결혼과 출산을 겪고 고민을 하며 호흡과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게 40대예요. 많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지만 또 한 번 토대를 다졌다고 생각해요. 모든 시기가 배우로서 전환기가 되어준 소중한 시간이었죠. 후회는 없어요.

Q : 그런 이영애가 살면서 가장 용기를 낸 적은

A : 〈친절한 금자씨〉를 마친 직후, 어쩌면 배우 생활의 절정처럼 보이는 시기에 결혼을 택했어요. 내 가정을 꾸린 뒤 다시 배우로서 나만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 속에 결정을 내린 게 가장 큰 용기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일이 너무 좋아서 조금씩 그 시기를 미뤘다면 아마 지금과는 많은 게 달라졌겠죠.

프린지 장식의 코트는 Bottega Veneta.

Q : 6년 전 〈사임당 빛의 일기〉 공개를 앞두고 〈엘르〉와 만났을 때 “작품을 보는 동안만큼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구경이〉 작가 성초이도 〈엘르〉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답한 적 있는데요. 두 답이 이어진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A : 현실은 허구보다 지리멸렬하죠. 이런저런 작품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봤을 때 여운이 남고 힘이 되는 드라마를 내가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했던 말 아닐까 해요.

Q : 최근에 만난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A : 백미경 작가와 인연이 있어 〈힘쎈여자 강남순〉을 찾아봤어요. 작가의 세계관이라고 할까요. ‘적을 무찌르자’ ‘나쁜 것을 이기자’ 같은 인과응보 세계가 있거든요. 그걸 잘 그려냈더라고요. 재미있었어요.

울 셔츠와 롱스커트, 앵클부츠는 모두 Bottega Veneta.

Q : 인과응보를 믿는지

A : 세상은 썩 공정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물론 저는 너무 많은 혜택을 받아서 감사할 것이 많지만, 전쟁이나 분쟁 등 지금의 여러 상황을 봤을 때 좌절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죠.

Q : 한국영화의 어떤 면을 사랑하고 응원하나요? 얼마 전 독립영화 〈너와 나〉를 추천하고, 이경미 감독의 단편 〈아랫집〉에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A : 오래전이지만 해외 영화제를 많이 찾던 시기가 있었어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이었고요. 덕분에 세계적인 영화제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정말 부산국제영화제만큼 에너지 넘치는 영화제는 없는 것 같아요. 참여하는 연령층도 젊고요. 감독, 배우 등 우리나라 인재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는데, K팝이 세계적으로 떠오른 지금은 이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더 커졌죠. 지금 젊은 배우들을 보면 정말 뛰어나거든요. 동분서주하던 제 20대 때와 달리 훨씬 준비되어 있어요.

오버사이즈 재킷과 체크 쇼츠, 삭스 부티는 모두 Balenciaga.

Q : 연기에 굉장히 체계적이고 학구적으로 접근한 배우이기도 한데

A :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죠. 왜 연기가 잘 안 될까, 내가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싶어서 연극영화과에 가고, 박사 과정도 시도해 보고요. 저는 항상 뭔가 배우려는 과정에 놓여 있었던 것 같아요. 책을 읽든, 같이 호흡하며 이야기를 나누든.

Q : 예능 〈방구석1열〉 ‘친절한 금자씨’ 편에 출연한 정서경 작가가 첫 대본 리딩 때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은 적 있어요. 리딩 중인 당신에게 “지금 너무 사극 같지 않나요?”라고 지적해 관계자들이 당황했다는 에피소드였죠. 당시 상황이 기억나나요

A : 그 상황은 이해해요(웃음). 1년 가까이 했던 〈대장금〉을 마친 직후였기에 금자라는 캐릭터를 잘 준비하지 못했나 봐요. 연구 없이 갑작스럽게 리딩을 하게 돼 저도 당황했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오버사이즈 재킷과 체크 쇼츠, 삭스 부티는 모두 Balenciaga.

Q : 정작 배우는 바로 수긍하고 다른 톤으로 연기했다는 훈훈한 일화였습니다

A : 당연히 그래야죠. 배우는 혼자서 할 수 없어요.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Q : 그나저나 유튜브 촬영 때 세븐틴, NCT 등 여러 K팝 아티스트의 이름이 나와서 놀랐습니다. 자녀들의 영향일까요

A : 딸도 노래를 좋아하고, 그걸 엄마와 공유하고 싶어 해요. 그 공통분모로 훌륭한 유대관계가 형성됐죠. 정작 10대 때의 전 누군가를 좋아해서 보러 다니는 경험을 한 적 없거든요. 그때 하지 못했던 걸 지금 딸과 함께하며 새로운 재미를 느껴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공연 티켓을 사서 같이 보러 가고, ‘조공’도 하고요(웃음).

오버사이즈 블레이저와 시폰 드레스는 모두 Givenchy.

Q :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대, 다양한 세대와 소통해 온 배우이자 기부 등의 나눔을 꾸준히 실천해 온 사람으로서 다른 이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를 들려준다면

A : 대단한 철학을 가진 건 아니에요. 소리 없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분도 정말 많고요. 뻔한 표현이지만 저는 말 그대로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잖아요. 작더라도 좋은 영향을 보여주는 게 나잇값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Q : CF, 영화, 드라마 관계없이 상징적인 시각 이미지를 여럿 갖고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한다면

A : 저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나 상징적 역할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아요. 어떤 상징이 되기보다 가늘고 길게 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오버사이즈 재킷과 체크 쇼츠, 삭스 부티는 모두 Balenciaga.

Q : 이미 가늘지 않은 것 같은데요(웃음)

A : 정말 점점 가늘어져도 상관없으니 길게 가고 싶어요. 그렇게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제 삶도 균형을 이뤄야겠죠. 결국 배우로서 그리고 엄마이자 아내로서 조화를 이룬 사람, 이영애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Q : 끝없이 의심하는 것과 절대적으로 믿는 것.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A : 태생적으로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에요. 누군가가 보여준 진실을 믿으려 하다 상처받고, 또 그런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죠. 그래서 일부러라도 해야 해요,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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