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 대신 특촬물 촬영 고집한 감독, 혹평 쏟아졌다
[김성호 기자]
흔히들 일본을 가리켜 아날로그의 나라라고들 한다. 디지털로 쉽게 대체가 될 만한 것도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는 게 다른 나라와는 다른 문화라는 것이다. 21세기에도 여적 현금 중심의 결제가 이뤄지고, 방송 등에서도 컴퓨터그래픽(CG) 대신 직접 제작한 시각자료를 사용하는 모습이 흔하게 눈에 띈다. 누군가는 답답하다 하겠으나 또 누군가는 대단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날로그에 대한 일본의 애착이 아닌가 한다.
일본의 아날로그 애착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드라마는 물론이고 예능프로그램에서까지 CG로 보정한 영상을 흔히 마주하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후반작업 없이 직접 촬영하는 것에 대한 애착이 그야말로 엄청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장인이 그러하듯 일본 영화의 아날로그 선호 또한 상당한 수준이어서 특수촬영이라 할 만한 장면까지도 최대한 아이디어를 짜내어 촬영하고 보는 것이 일본의 문화라고들 한다.
▲ 신 울트라맨 포스터 |
ⓒ 와이드 릴리즈(주) |
일본 특촬물의 기둥, 울트라맨
특촬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라면 역시 <울트라맨>이다.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습격하는 가운데 일본 내 과학 중심 특수부대원들과 울트라맨이라는 미지의 거대 영웅이 이를 저지하는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1966년 이래로 꾸준히 제작된 이 시리즈는 소위 '후레쉬맨', '바이오맨' 등 <슈퍼전대 시리즈>에 이어 특촬물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한화로 따지면 약 8조 원 가량의 누적 수익을 달성했다(위키피디아 게재 '미디어 프랜차이즈 순위').
그랬던 <울트라맨>도 위기를 겪는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마블 등 할리우드 작품의 공세 속에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진 탓이다. 반세기 넘게 이어온 시리즈가 새로운 세대에게는 식상한 무엇처럼 여겨진 영향도 없지 않았다. 한국으로 치자면 <아기공룡 둘리>나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가 여전히 경쟁을 하고 있다는 뜻일 텐데, 콘텐츠와 캐릭터의 노쇠한 이미지를 극복하는 작업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 신 울트라맨 스틸컷 |
ⓒ 와이드 릴리즈(주) |
일본 대표 작가, 배우 총출동
<신 울트라맨>은 이처럼 부활의 날갯짓이 시작된 <울트라맨> 시리즈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각본을 쓰고 보조연출까지 맡은 이가 무려 <에반게리온>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노 히데아키다. <신 에반게리온> 제작을 성공시키며 과거 시리즈의 영광을 다시 구현한 그가 <신 울트라맨>까지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됐다.
출연진 또한 공을 들여서 <드라이브 마이 카>의 니시지마 히데토시, <13년의 공백>의 사이토 타쿠미, <눈물이 주룩주룩>의 나가사와 마사미 등 일본 영화계의 기수라 불러도 좋을 배우가 총출동한다. 특촬물에 등장하는 일류 배우들의 모습이 어딘지 낯선 감상을 일으키는 가운데, <신 울트라맨>을 반드시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제작진의 야심이 그대로 엿보이는 듯하다.
▲ 신 울트라맨 스틸컷 |
ⓒ 와이드 릴리즈(주) |
사양길 접어든 특촬물, 부활의 날갯짓 하나
작품은 시작부터 특촬물의 향수를 잔뜩 일으킨다. 첨단 기술로 예쁘게 매만져진 최신 영화에 익숙한 관객은 때아닌 아날로그적 연출에 당혹스러움까지 느낄 수 있다. 도시를 습격한 거대 괴수들이 연속하여 등장하고, 도심에서 그와 대격전을 펼치며 이를 물리치는 울트라맨의 활약 또한 그려진다.
건물에 내동댕이쳐지는 괴수의 모습은 CG가 아닌 특촬기법, 즉 작은 모형을 통해 연출된 것이다. 한 때는 수도 없이 마주했을 이와 같은 연출을 이제는 어디서도 쉽게 마주할 수 없기에 더욱 인상 깊게 느껴진다.
▲ 신 울트라맨 스틸컷 |
ⓒ 와이드 릴리즈(주) |
대대적 투자에도 두드러지는 단점 아쉬워
아쉽게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두드러진다. 특촬물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는 건 분명하지만, 그 영향이 초반 15분을 넘어서지 못한다. 안노 히데아키가 직접 쓴 각본은 그의 명성에도 독이 된 듯, 특촬물과 잘 어우러지지 못한다. 거듭되는 전투의 맛보다는 울트라맨을 둘러싼 애먼 음모가 긴 시간을 차지하니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작품의 중추가 될 어떤 정신을 불어넣고자 함이겠으나 영화를 보려는 관객의 요구와는 전혀 따로 놀아 아쉬울 뿐이다.
안노 히데아키가 직접 찍지 않은 부분도 아쉽다. 감독인 히구치 신지는 <일본 침몰>부터 <진격의 거인> 시리즈, <신 고질라> 등 장르물 촬영에 특화되었다곤 하지만, 일류라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언제나 과학 설정에 연출적 재능이 따르지 못해 작품을 그르치곤 했던 것이다. 이번 작품 또한 다르지 않아서 거의 총력을 기울여 찍은 작품이 무엇 하나 괜찮은 구석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뒤처진 특촬물로 남았을 뿐이다. 일본 아카데미상이 지대한 관심에도 주요부문에서 상을 주지 않은 것 또한 그에 대한 실망을 반증한다.
영화를 본 이들이 거듭 혹평을 쏟아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야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한 유서 깊은 <울트라맨> 시리즈가 이대로 고꾸러지고 마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한국에선 일회적으로 불법 수입되어 인지도에 비해 시리즈를 제대로 아는 이 얼마 되지 않는 이 시리즈가 또 한 번 한국팬을 만들 기회를 놓치는 듯해 아쉽다. 아날로그에 대한 집착도, 특촬물로서의 정체성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신 울트라맨>은 실패작이라 해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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