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프로모션에 뒤죽박죽 영화관람료…중요한 건 콘텐츠의 질(上)

이종길 2023. 12. 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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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 가격…물가에 비하면 과하지 않아"
"같은 영화 다른 가격에 볼 수 있는 게 더 큰 문제"
"'극장용 영화' 따져…블록버스터 외엔 OTT 대기"
"관람객 체감할 상영시스템, 가격 걸맞은 투자 필요"

영화관은 지난달 불어닥친 '서울의 봄' 열풍으로 생기가 돈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은 아니다. 지난달 관람객 수는 764만2831명. 2019년 같은 기간 1860만679명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그해 1000만 명 이상 방문하지 않은 달은 전무했다. 올해는 여섯 달이나 된다. 한국 영화와 영화관 모두 심각한 적자에 허덕인다.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친다. 저마다 가리키는 근본적 원인은 다르다. 대체로 관람객은 인상된 관람료, 배급·제작사는 기준 없는 객단가, 영화관은 흐지부지된 홀드백(영화가 이전 유통 창구에서 다음 창구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을 꼽는다. 서로 간 입장 차가 크고 감정의 골도 깊어 진통이 계속된다.

한국영화관련대담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아시아경제는 간극을 좁히고 정부의 효과적 지원 정책을 유도하고자 CGV 본사에서 토론을 진행했다.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과 김진선 한국영화관산업협회 회장, 윤제균 CJ ENM 스튜디오스 대표이사,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강민아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 등과 함께 한국 영화와 영화관의 현주소를 살피고 위기를 극복할 해법을 모색했다. 첫 번째 주제는 '거듭 인상된 영화관람료, 이대로 괜찮은가'이다.

△아시아경제 "코로나19 시기 세 차례 인상된 가격에 다수 관람객이 적잖은 부담을 토로한다. 배급·제작사도 객단가가 거의 오르지 않아 불만이 많다. 관람객이 실제 내는 비용은 거의 그대로인데 비싸다는 인식만 팽배해진 형국이다."

한국영화관련대담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원동연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저항이 생긴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관성적으로 매주 영화를 보던 시간은 지났다. 이제는 댓글, 평점 등을 보며 사전에 꼼꼼히 점검한다. 데이트로 영화를 감상한다고 가정해보자. 영화에 커피, 팝콘, 저녁 등을 곁들이려면 1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연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구독료와 맞먹는다. 제작자들은 조금 억울하다. '신과 함께' 시리즈 개봉 때 관람권 가격이 1만 원을 조금 넘었다. 배급·제작사에 4000원 정도가 돌아갔고. 지금 같이 1만5000원이면 6000원 정도가 들어와야 한다. 실상은 5000원도 안 된다. 영화계 전체가 매도당할 일이 아닌 셈이다. 영화관도 이익은 크게 늘지 않았다. 도리어 대중의 인식만 나빠졌다. 그대로 방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관람료가 정당한지 점검하고 대책을 찾아야 한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윤제균 "유례없는 어려움이다. 벤치마킹할 대상을 찾으면 적당한 기준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미국 할리우드 관계자들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처한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 이보다 더한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TV·비디오 대중화 등 위기도 넘어섰다며. 그때마다 그들의 기저에 깔린 인식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는 서민을 위한 예술이라는 믿음이다. 오페라, 클래식, 뮤지컬 등 공연과 절대 가격이 같을 수 없다고 단정했다. 오히려 요금 인하를 단행해 친구처럼 다가갔다고 한다. 기업의 목적인 이윤 극대화에 반하는 일이었으나 10년 뒤를 내다봤다고. 서민의 마음이 떠나면 영화산업이 사멸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식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영화는 서민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마음을 위로해준 희망과 같았다. 우리가 함께 발을 맞추지 못한다면 산업 자체가 끝장날 수 있다. 그런 인식을 전제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최정화 "한국 영화산업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과연 그런 인식을 가질 수 있을까. 미래 10년을 내다볼 형편이 될까. 당장 성과를 내기 급급한 구조에선 어렵다고 본다. 관람료로 1만5000원을 요구할 수는 있다. 압구정동 순대국밥 가격이 1만5000원이다. 영화 한 편 관람료가 밥 한 끼 가격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대중의 비싸다는 인식이다. 사실 6개월 정도 지나면 누그러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오래가고 있다. 이제는 기 싸움 국면에 접어든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과거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인의 싸움에는 미학이 있다고 했다. 죽자고 달려드는 게 아니라 그런 분위기만 조성하고 큰 충돌 없이 해결점을 찾는다는 견해였다. 이제는 어느 쪽이든 상대의 의견을 수렴할 때가 왔다."

윤제균 CJ ENM 스튜디오스 대표이사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원동연 "비교가 잘못됐다. 압구정동 순대국밥 가격 1만5000원은 고정가다. 영화관람료는 프로모션에 따라 1만 원 또는 1만1000원으로 변하고. 1만5000원을 지불하고 감상한 관람객이 호구가 되는 구조다. 압구정동 순대국밥 사장에게 말을 잘한다고 1만2000원을 받는 건 아니지 않나. 요즘은 '원 플러스 원' 같은 파격적 할인 혜택도 있다. 이 또한 모든 관람객에게 적용되진 않는다. 그렇게 깨져버린 신뢰는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 비싼 가격에 대한 경계보다 '내가 바보짓을 했구나'라는 자책을 심어주기 쉽다. 그런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프로모션으로 가격을 내릴 거라면 1만5000원을 고집하는 게 큰 의미는 없을 테니."

△최정화 "동감한다. 엄밀히 따지면 영화관만 프로모션을 하는 게 아니다. 배급·제작사가 앞장서서 할 때도 있다. 그래야 관람객을 많이 유치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어쩌면 영화산업에서만 나타나는 고유의 특수성 같다. 지금부터 서서히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관도, 배급·제작사도."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김진선 "말씀하신 대로 영화는 서민의 대표적인 문화생활이다. OTT가 대세라는 지금도 여가 활동 선택 폭에 꼭 들어간다. 국민적 사랑을 받는 데 영화관이 상당 부분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열악한 관람환경을 크게 개선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전하기 위해 4DX(오감 체험 상영관), 스크린X(스크린을 3면으로 확장한 상영관) 등 다양한 기술도 개발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나 관련 업계로부터 지원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펜데믹으로 침체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인상된 영화관람료를 비싸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평균과 비교해도 높지 않은 수준이다. 물론 코로나19 기간 연이은 세 차례 인상은 논란이 될만하다. 하지만 1만5000원이 과연 과도한 책정일까. 그렇다면 적당한 가격은 얼마일까. 분명한 건 지금 가격이 물가 수준을 대비해 거부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대중의 반발은 이보다 단기간에 급격히 이뤄진 인상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영화관을 뒷받침하는 콘텐츠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펜데믹 시기에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올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류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완성도가 떨어져 생긴 불만이 자꾸 인상된 가격에 맞춰지고 있다. 가격 저항에 있어 분명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다."

△아시아경제 "다수 배급·제작사는 객단가 산정이 불투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승승장구하는 '서울의 봄'도 1만 원(4일 기준)이 되지 않는다. 카드, 통신사 등 할인에 다양한 이벤트까지 더해져 지지선이 무너졌다고 우려한다. 관람객 기준으로 BEP(손익분기점)을 넘었는데 정산해보니 손해를 본 영화도 있다고 한다."

김진선 한국영화관산업협회 회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김진선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정한 부율을 손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영화관과 배급·제작사가 똑같이 나눠 가진다. 한쪽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배급·제작사의 제작비가 올랐듯 영화관도 시설 유지·보수비, 관람환경 개선비 등 부담이 커졌다. 그걸 해결할 길은 관람료 인상뿐이었다. 관람객의 저항으로 프로모션이 무분별하게 많아지는 일은 개선돼야 한다. 물론 영화관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만들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는 시점에 업계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자리를 마련해준다면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

△윤제균 "김진선 회장께서 생각하는 영화계 회생 해법은 무엇인가."

△김진선 "일단 홀드백이 다시 지켜져야 한다. 그게 무너져서 입은 피해가 수치를 산정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다들 체감하고 있을 거다. 요즘 관람객들은 대체로 영화관에서 볼만한 영화인지 아닌지를 중요시한다. 드라마 장르나 제작비가 덜 들어간 영화는 조금 기다렸다가 IPTV나 OTT에서 감상한다. 배우 마동석이 주연한 '압꾸정(2022)'이 대표적 예다. 영화관에선 60만8639명 동원에 그쳤으나 IPTV에선 꽤 선전했다. OTT에서도 9주 동안 인기를 끌었고. 두 달만 있으면 OTT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심리가 존재하는 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면 영화관에서 굳이 봐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듯하다. 그런 차원에서 영화관람료와 관련해 콘텐츠별 다변화를 논의해보고 싶다. 아무래도 현재 관람료로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에 접근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배급사와 영화관이 사전에 협의해 적당한 가격대를 산정한다면 새로운 수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는 산업과 정부 사이에서 협력을 끌어내는 위치에 있다. 수장에 오른 지난해 1월부터 꾸준히 지원의 필요성을 설파해왔다. 제작 촉진 지원금도 강력히 요청했고. 윤제균 감독 말씀처럼 영화는 서민의 예술이다. 그런데 정부 관계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지원의 당위성부터 의문을 제기한다. "왜 도와줘야 하느냐?"고. 그들도 영화가 가진 서민적 상징성을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관람료를 올려놓고 도와달라면 어쩌자는 거냐고 되묻는다. 업계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맞장구를 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사실 영화관람료는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지, 정부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멀티플렉스 3사(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가 단합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고. 그렇다고 정부 지원을 포기해선 안 된다. 영화관을 포함한 산업 관계자들이 자체적으로 변화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강민아 "물가 등을 고려하면 영화관람료 상승에 우려가 크다. 박기용 위원장 말씀대로 국회나 정부 내부에서 예산 등을 논의할 때 자구책을 찾으면서 영화관람료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대체재인 OTT와 비교하면 그렇게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조금 더 소비자 편에서 합의를 끌어내려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김진선 회장 말씀처럼 관람료 다변화나 할인 프로모션도 효과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전체적인 관람료를 조금 인하하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경제 "최근 한국영화관산업협회에서 도입하려고 한 매주 수요일 7000원 할인 정책이 다수 제작·배급 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하나같이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진행한 점에 유감을 보이더라. 이 밖에도 갖가지 문제에서 대화 부재로 갈등이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모든 사안에 일일이 대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강민아 과장 말씀대로 관람료를 먼저 내리고 상생하는 방법을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

강민아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윤제균 "결국 다시 얼마가 적당하냐의 문제다. 처음 영화가 도입됐을 때도 관람료 책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미국에선 한 끼 비용을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국밥 한 그릇 가격을 표준으로 삼았고. 식사 내용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요즘 서민들이 생각하는 가격은 1만 원~1만2000원이라고 생각한다."

△원동연 "사실 영화가 재미있으면 5만 원을 주고 봐도 아깝지 않다. 그 반대라면 무료로 감상해도 욕이 나올 테고. 자기 시간을 뺏겼다고 투덜거릴 거다. 결국 관람료 못지않게 중요한 게 콘텐츠의 질이다. 그동안 충무로에서 너무 낡고 편익한 기획에 치중한 면이 있다. 유명한 배우와 감독 섭외에만 집착하며 안이하게 대처했다. 내부적으로 자성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건 결국 관람료 때문이다. 업계에 비싸지 않다는 의견이 적잖은 듯한데, 그렇다면 대중에게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예컨대 영화관은 1만5000원이 합당하다는 근거로 관람객이 체감할 만한 상영 시스템 등 시설 투자 효과를 입증받아야 한다. 제작·배급사는 기대에 상응하는 콘텐츠를 꾸준히 내놓아야 하고. 이게 자꾸 들쑥날쑥하면 지지받기 어렵다."

△박기용 "상영관마다 관람료를 다르게 책정하는 방안도 해법일 수 있다. 나이, 시간대 등으로 차등을 두는 정책도 고려해볼 만하고. 특히 영화관의 미래 관람층이 될 청소년에게 대대적인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면 영화산업에까지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영화관은 관람객이 없어도 돌아간다. 그렇다고 텅텅 빈 채로 방치할 텐가, 아니면 몇 명이라도 더 유치하려고 노력할 텐가.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유명무실 홀드백, OTT 견제할 길은…(下)'에서 계속.

대담=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정리=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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