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제문' 썼다가 부관참시된 김종직

김삼웅 2023. 12. 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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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인물 100선 34] 김종직

필자는 이제까지 개인사 중심의 인물평전을 써왔는데, 이번에는 우리 역사에서, 비록 주역은 아니지만 말과 글 또는 행적을 통해 새날을 열고, 민중의 벗이 되고, 후대에도 흠모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인물들을 찾기로 했다. 이들을 소환한 이유는 그들이 남긴 글·말·행적이 지금에도 가치가 있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생몰의 시대순을 따르지 않고 준비된 인물들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기자말>

[김삼웅 기자]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경남 밀양 대동리에서 아버지 김숙자와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계온(季溫)이고 호는 필재(畢齋)·점필(佔畢)·점필재(佔畢齋),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고려 말 대학자인 정몽주·길재의 학통을 이은 아버지에게 글을 배웠다. 12살 소년으로 시문을 잘 짓기로 소문이 날 정도로 우수한 재질을 갖고 있었다. 23살이 되는 1453년(단종 1) 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어 28살 때에 별과초시, 29살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权知副正字), 30살에 승문원 저작, 31살에 승문박사, 33살에 사헌부 감찰, 35살에 영남 병아평사, 37살에 홍문관수찬, 38살에 이조좌랑 겸 춘추관기주관, 39살에 전교서 교리, 40살에 함양군수, 45살에 통훈대부, 46살에 선산부사를 거쳐 승승장구, 동부승지와 우부승지, 이조참판, 홍문관제학, 경기도관찰사 겸 개성유수, 전라도관찰사 겸 순찰사, 병조판서, 공조참판, 형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김종직은 단종-세조-예종-성종에 이르는 동안 각급 관직을 지냈다. 주위에는 신진 사류들이 모이고, 훈구세력과 대립이 나타났다. 그는 62살이던 1492년(성종 23)에 세상을 떴다. 제자 김일손이 사관이 되어 훈구파 이주돈의 비행을 사초에 기록했다가 반목이 심해지고,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유지광이 문제삼아 연산군에게 고변하면서 사화가 일어났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꿈에서 항우(項羽)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을 본 뒤에 그를 애통해하며 지은 글이다. 그런데 훈구파는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비방하여 지은 글"이라며 '대역죄'로 몰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김종직은 무덤을 파헤쳐 능지처참하고 김일손 등 그를 따르던 신진사류들은 참형에 처하거나 유배되었다. 무오사화이다.

김종직과 유능한 산림파 학인들을 잔혹하게 죽이거나 귀양 보낸 데 빌미가 된 <조의제문>을 소개한다.

조의제문

하늘이 법칙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四大)·오상(五常)을 따를 줄 모르리오
화(華)라서 풍부하고 이(夷)이라서 인색한 바 아닌 데
어찌 옛날에만 있고 지금은 없겠는가
나는 동이 사람이고 또 천 년을 뒤졌건만
삼가 초나라 회왕을 조문하노라
옛날 진시황이 아각을 휘두르니
사해의 물결이 붉은 피가 되었네
비록 전유 추애라도 어찌 보전했겠는가
그물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으니
당시 육국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시골백성의 호적에 편입하였지
항량은 남쪽 나라의 장수의 후손으로
진승 오광 같은 군웅을 종달아 거사하였네
처음 왕을 모시게 된 것은 백성의 희망을 따름이여
끊어졌던 웅역의 제사를 보존하였네
건부를 장악하고 남면을 함이여
천하엔 진실로 미씨보다 큰 것이 없도다
장자를 보내어 관중에 들어가게 함이여
또한 족히 그 인의를 보겠도다
양과 이리 같은 탐욕으로 제멋대로 관군을 죽임이여
어찌 잡아다 베지 않았는가?
아아,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에 있어
나는 왕을 위해 더욱 두렵게 여기지요
반서를 당하여 해석이 됨이여
과연 하늘은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려
침의 산은 우뚝하여 하늘로 솟음이여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에 가깝고
침의 물은 밤낮으로 흐름이여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 올 줄 모르도다
천지가 장구한들 한이 어찌 다하리
영혼은 지금도 표탕하도다
내 마음이 금석을 꿰뚫음이여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네
자양의 노필을 따르자니
생각이 진돈하여 흠흠하도다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여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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