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실천의 힘

2023. 12. 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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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작가로서 깨달은 것일단 아무렇게라도 쓰자어설프더라도 실천이 낫다해가 바뀌면 소설가로 데뷔한 지 15년 차다.

그렇지만 한 명의 직업 작가로서 그럴 수는 없다.

그 결과 머리는 터져나가고, 손가락은 무거워지고, 키보드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고민했던 아이디어들이 마침내 응축되고 발전해 '일필휘지로 원고를 써내는 기적이 일어났다!'면 좋겠지만, 내 생을 통틀어 가장 부끄러운 글들만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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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소설가

전업 작가로서 깨달은 것
일단 아무렇게라도 쓰자
어설프더라도 실천이 낫다

해가 바뀌면 소설가로 데뷔한 지 15년 차다. 그동안 쓴 에세이는 약 500편에 달하는데, 늘 새로운 소재를 다루려 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이제 내 안에서 나올 새로운 글감이 없다는 뜻이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는 여기서 마칩니다’라고 쓰면 좋겠다. 그렇지만 한 명의 직업 작가로서 그럴 수는 없다.

고백건대 에세이는 이미 3~4년 전에 더는 못 쓰겠다며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럼에도 200편 정도를 더 썼다. 어찌 쓸 수 있었을까.

글이 쓰기 어려워질 때는 욕심이 앞설 때다. 작가 생활을 한 지 10년이 됐을 때 새해 결심을 했다. 이제 데뷔한 지 10년이 지났으니 좀 더 농익은 글을 쓰자고.

그때부터 펜대가 카드 결제 후 서명을 할 때만 움직였다. 과장이 아니라 한동안 아예 글을 쓸 수 없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 계획이 가득했다. 진중한 방식의 A계획, 유쾌한 스타일의 B계획, 감동적 색채의 C계획, 냉소적 시선의 D계획,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른 ‘ABCD 섞어찌개형 계획’.

그 결과 머리는 터져나가고, 손가락은 무거워지고, 키보드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결심했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일단 아무렇게나 쓰기로. 글이 엉망이면 나중에 고치자고 작정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고민했던 아이디어들이 마침내 응축되고 발전해 ‘일필휘지로 원고를 써내는 기적이 일어났다!’면 좋겠지만, 내 생을 통틀어 가장 부끄러운 글들만 써냈다.

그때 유일하게 잘한 게 있다면 스스로 이럴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민하게도 마감을 늘 닷새 정도 앞두고 이 희대의 엉망진창 초고를 써뒀다. 그 후 닷새 동안 현실을 받아들인 채 원고를 연신 고쳤다. 이게 바로 지난 4~5년간 내가 원고를 써온 과정이다.

나는 안다. 더 이상 쉽게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역시 안다. 그럼에도 글을 쓸 수는 있다는 것을. 비록 매번 휴지조각과 같은 초고를 써내지만 그 휴지조각을 펴서 다듬고 매만지면 언젠가는 그럴싸한 종잇조각, 즉 신문의 지면과 책의 페이지가 된다는 것을. 그래서 몇 년 전부터 계획을 수정했다. ‘일단 써보기로.’

타이슨이 말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두들겨 맞기 전까지는.”

이 말은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아무리 개요가 완벽해도 막상 써보면 막힐 때가 있고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글감도 써보면 놓쳐버린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기막히게 풀릴 때가 있다. 그렇기에 적어도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완벽한 계획보다 어설픈 실천이 낫다.

소설가는 자발적 고용인이자 피고용인이다. 자신을 고용했기에 늘 이해가 충돌한다. 일을 시키려 하는 자아와 일을 회피하려는 자아가 부딪힌다. 트렌드를 추종하는 내 자아는 노동자의 권익을 중시하는 흐름을 따라 휴식할 권리를 강경하게 외친다. 그리하여, 쉴 때마다 이렇게 자위한다. ‘지금은 작품 구상 중이야.’ 하지만 글쟁이들은 모두 안다.

작품 구상은 ‘딴짓’의 동의어이자, ‘허튼짓’의 고상한 표현인 것을. 게다가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쓰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그렇기에 일단은 쓰고 봐야 한다. 성에 안 차서 버릴지언정 시도라도 해야 고칠 가능성이 생긴다. 이 글도 우선 써보고 며칠에 걸쳐 매만진 것이다.

비록 부족하고 설익었을지라도, 시작부터 해놓고 보는 것. 이는 비단 글쓰기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제 일을 해내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그러니까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게 있다면, 어느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카피처럼 ‘저스트 두 잇!’

최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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