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직접 키운 배추, 연말마다 선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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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내가 은퇴하기 전에 근무했던 고등학교에서는 매년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텃밭 가꾸기 활동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학교의 특색사업 중 하나로 교육청에 사업 신청서를 제출하고, 예산 지원을 받아 운영해 오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텃밭 가꾸기가 교육적인 의미도 크겠다 싶어, 재직 중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참여했다. 은퇴한 이후에도 후배 동료 교사들이나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서 학교 사정은 잘 알고 있으며 발전적인 모습을 지속적으로 지켜본다.
최근에도 학교에 재직할 때 텃밭을 같이 했던 후배 교사로부터 텃밭 운영과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를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학교 홈페이지에도 텃밭 관련 사진과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 학교 텃밭에서 학생들이 비닐 멀칭을 하고 지주대를 세우고 있다. 사진은 텃밭을 같이 했던 후배 교사가 찍은 것. |
ⓒ 배진호 |
▲ 선생님과 학생들이 가꾼 학교 텃밭에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
ⓒ 배진호 |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작물이 심기만 하면 그냥 자라는 게 아니라 가꾸는 사람의 정성과 땀이 들어가야 풍성한 수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추, 오이,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 등 각종 채소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아이들은 농산물의 생산과정과 농업인들의 수고로움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채소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어 가꾸는 동안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작물을 매개로 소통하면서 한마음이 된다.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라기보다 작물을 공동으로 가꾸는 농부의 애틋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학생들도 친구들끼리 한층 더 가까워지고 마음으로 다가가는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텃밭이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의 장소가 되는 이유다.
▲ 학교 텃밭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심어 놓은 김장용 배추가 잘 자라고 있다. |
ⓒ 배진호 |
▲ 학교 텃밭에서 한 학생이 자신이 가꾸는 상추를 사랑스럽게 손으로 감싸고 있다. |
ⓒ 배진호 |
봄에 심은 채소의 수확이 끝나면 선생님과 학생들은 8월 말쯤에 거름을 뿌리고 삽과 호미 같은 농기구로 땅을 갈아서 배추 심을 채비를 한다. 9월 초순경에 김장할 배추의 모종을 구입하여 넉넉하게 심는다. 특히 배추 모종은 다른 작물보다 더 신경써서 돌보고 가꾼다. 물을 충분히 주어 수분을 공급하고 배추가 자라는 상태에 따라 웃거름을 조절해서 준다. 이 때 배추벌레도 잡아주면서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정성을 쏟는다.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려서 김장할 준비가 되었다. 드디어 김장을 담그기로 한 지난달 23일. 선생님과 학생들은 학교 안에 함께 모여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김장 담글 준비를 완벽하게 갖춘다. 김장 담그기가 시작되자, 절인 배추 속에 양념이 잘 배이도록 치대면서 사랑도 가득 담는다. 김장을 담그는 표정들이 다들 신나고 즐거워 보인다.
▲ 선생님과 학생들이 어우러져 즐겁게 김장을 담그고 있다. |
ⓒ 배진호 |
이렇게 해서 이제 일 년 동안의 텃밭 가꾸기는 끝이 났다. 텃밭에서 아이들의 손길이 닿은 채소들이 성장하는 동안 아이들 몸과 마음도 많이 성장했을 것이다.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기 위해 퇴비를 뿌려서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지지대를 세우고, 작물들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고 돌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지 않았을까.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배추를 직접 심어서 가꾸고 수확하여 김장을 담그고, 그 김장을 외롭고 쓸쓸하게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에게 전달하는 그 과정 모두가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텃밭 가꾸기는 아이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잔잔한 깨달음과 울림으로 남아 살아가면서 한번씩 꺼내보는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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