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에는 전구가 필요 없다

최원형 2023. 12. 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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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의 오늘하루 지구생각] 나무들도 겨울에는 좀 쉬고 싶다

[최원형]

 상모솔새
ⓒ 일러스트 최원형
 
초겨울로 접어든 어느 날 서울 광진구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에 갔다. 내게 이곳은 어린 시절 아이스크림을 먹고 놀이시설을 즐기는 공원이었는데 이제는 탐조1)하기 좋은 장소로 애용하고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정부가 '서울컨트리구락부'라 불리던 골프장으로 조성했다가 1973년 어린이날에 맞춰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곳이 바로 어린이대공원이다.

한때 골프장이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너른 풀밭에는 50년이 넘는 공원의 역사만큼이나 울창한 나무들이 있어서 새들이 찾아들기에 좋다. 요즘에는 누렇게 변한 잎들이 바닥에 뒹굴고 기온마저 뚝 떨어져 사람들 발걸음도 확연히 줄었다. 이렇게 공간은 호젓하고 나목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겨울은 새를 보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더구나 겨울이면 텃새의 두 배가 넘는 종류의 겨울 철새가 이 땅을 찾는다. 올해엔 귀한 나무발발이, 쇠동고비, 흰머리오목눈이 등이 많이 보인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가슴이 뛴다.

나뭇가지며 줄기 사이로 만나고 싶은 새를 찾느라 잔뜩 집중하던 중에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해마다 겨울이면 들리는 상모솔새 소리다. 가까이에 있는 전나무 위에 상모솔새가 무려 3마리나 보인다. 상모솔새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새 가운데 가장 작은 새다. 몸길이 10㎝에 몸무게는 고작 5g 안팎인 이토록 작은 새가 저 먼 시베리아, 백두산 근처에서부터 추운 겨울 동안 지내려고 이 땅을 찾는다.

상모솔새는 깃 색깔이 풀빛에 가까운 회색인데, 정수리에 노란 깃털이 있으면 암컷이고 노랑 바탕에 빨강이 곁들여지면 수컷이다. 그 모습이 알록달록 족두리를 쓴 듯 귀엽다. 상모솔새는 침엽수를 좋아하는데 나뭇가지에 숨어있는 벌레나 거미, 씨앗을 찾아 먹는다. 몸집이 작은 만큼 동작도 재빨라 카메라에 담기가 좀체 어려운 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따라 상모솔새가 가까이에서 곁을 내주고도 한참이나 모습을 보여줬다.

귀엽고 앙증맞은 상모솔새를 쳐다보고 있자니 전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그 먼 곳에서 찾아왔는데 상모솔새가 좋아하는 침엽수가 사라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모솔새는 먹이활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대부분 시간을 나무 위에서 보낸다. 그러니 내가 그 시각 그 자리에서 상모솔새와 조우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전나무 덕분이다.

인공조명 대신 버드 피더로 새들과 연대하자
  
 나뭇가지에 달린 버드 피더
ⓒ 일러스트 최원형
 
한 그루 나무는 나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새는 나무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어 새끼를 기른다. 곤충도 나무줄기 어디쯤 알을 낳거나 제 몸을 숨겨 겨울을 난다. 겨울 동안 새들은 나무에 깃든 곤충을 먹으며 먹이가 부족한 계절을 견뎌낸다. 한 그루 나무가 지닌 생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무가 있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올 5월 영국의 킹스칼리지 런던의 정신의학·심리학 및 신경과학 연구소는 새를 보거나 새소리를 듣는 것이 정신건강에 긍정적일 뿐만 아니라 우울증이나 불안 등의 치유에도 좋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나무를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도시의 나무는 도로 경계에 서서 종일 자동차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는데, 한 해 끝자락이면 반짝거리는 불빛마저 이고 지고 지내야 한다. 추운 겨울에 대비하려 나뭇잎을 다 떨궈버린 나무에다 우리는 왜 전구의 무게를 지우는 걸까?

서양 명절인 추수감사절 즈음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나 새해를 맞이할 때까지 소비를 부추기는 마케팅이 연례행사가 돼 버렸다.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시키는 반짝이는 조명이 가로수에 드리워진다. 들뜬 분위기로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기려는 오늘날의 우리 문명을 만약 예수가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2020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공물의 무게는 1900년대 초만 해도 자연에 존재하는 동·식물을 모두 합친 생물 총량 무게의 3%였다. 120년이 지난 2020년에 이르자 인공물의 무게가 생물 총량의 무게와 같아졌다. 오차를 감안해서 아직 인공물의 무게가 적다고 쳐도, 인공물이 생물의 무게를 넘어서는 지점은 대략 2014년에서 2026년 가운데 어디쯤일 것이다. 가히 '거대한 가속'이라 명명할 만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우리는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기며 이 지구를 온통 인공물로 덮어버리겠다는 심산인가?

나무에 설치한 야간 조명은 나무 생장에 교란을 일으키고 호흡량까지 증가시킨다는 빛 공해 관련 연구도 있다. 가뜩이나 도시의 밤은 밝은 인공 불빛으로 너나없이 잠들기 쉽지 않은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한 해의 끝자락엔 나뭇가지에 촘촘하게 조명을 달아 나무를 괴롭히는 것이다.

나무에 굳이 무언가를 달고 싶다면 전구가 아니라 다양한 '버드 피더(새 모이대)'를 달아볼 것을 제안한다. 가을에는 전나무의 열매나 소나무의 솔방울이 많이 떨어진다. 여기에 밀가루 반죽이나 조청 등을 바른 뒤 견과류를 붙여서 나무에 달아놓자. 겨우내 야생에서 추위를 견뎌야 하는 새들에게 귀한 에너지원이 된다. 우유 팩으로 버드 피더를 만들어 집 베란다에 설치하고 겨울 동안 새들의 급식소를 운영해보는 건 또 어떨까? 먹이가 부족한 겨울 동안 새들과 연대하는 마음이 어떤 크리스마스트리보다 아름다울 것 같다.

1) 자연 상태의 새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즐기는 행위이다.

덧붙이는 글 | 글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12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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