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김포족’도 반한 배춧속 온정…인생 첫 김장 [해봤더니]

이예솔 2023. 12. 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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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충북 진천 동원F&B 진천공장에서 김치에 양념을 바르고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서 본격적인 김장철을 맞았다. 과거처럼 온 동네 사람이 모여 시끌벅적 김장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반면 김장을 편하게 하고 싶은 김장족과 김장을 포기하거나 김장을 모르는 ‘김포족’ ‘김모족’은 늘고 있다.

“김치 사 먹어요” 늘어나는 김포족

1일 쿠키뉴스가 만난 최모(26·회사원)씨는 “김장 안 한 지 몇 년 됐다. 김장하는 데 품과 시간이 많이 들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김장을 안 하는 것 자체가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필요할 때 마다 구매해 먹는 게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수지타산이 맞는다는 얘기다. 최근 부모님과 70포기 김장을 한 김모(38·회사원)씨는 “이제 연세도 드셔서 몸도 힘드신데 김장 안 하시면 좋겠다”며 “김장 계획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스트레스 받는다. 사 먹으면 모두가 편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서 김장보다 사먹는 김치가 흔한 일이 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FIS)가 지난 3월 발간한 ‘김치 산업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 가정 내 김치 조달 방법 중 ‘상품김치 구입’이 33.1%로 가장 많았다. 부모·형제에게 얻거나, 직접 담금을 하는 경우는 각각 29.1%, 22.6%였다. 포장김치 구입 비중도 지난 2017년 10.5%에서 2020년 31.3%로 3년 새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28일 충북 진천 동원F&B 진천공장에서 김장 투어 참가자들이 김치를 담그고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생애 첫 김장 해보니…3포기 만에 녹다운

특히 젊은 직장인 사이에선 김장 문화를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다. 김장 김치를 선호하지 않은 건 ‘비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김장에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 외에도 배추를 절이고,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양념을 만들어 묻히는 것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자가 직접 김장을 해보니 쉽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동원F&B가 매년 진행하는 김장 행사에 참여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과 함께 김장에 도전했다. 하얀 위생모, 위생복에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작업장에 들어서자 겉절이용 배추, 절인 배추 10㎏, 배추소(새우, 굴, 배, 잣 등)가 준비돼 있었다.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힘들다는 배추 절이기, 속 재료 만들기가 준비돼 배추에 양념만 바르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었다. 20대 초반으로 힘과 속도에는 자신 있었지만, 착각이었다.

김치 양념을 절인 배추에 바르기 시작하자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재료를 칼질하다 고무장갑을 썰고, 재료를 바닥에 떨구기도 했다. 겨우 절인 배추 3포기를 버무렸을 때쯤 허리가 쪼개질 듯 아프고 진땀이 났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한 참여자는 “배추 절이고 재료 준비가 제일 힘들다. 여기서 제일 쉬운 것만 하는데 그렇게 힘드냐”며 웃었다. 양념을 얼마나 배추에 발라야 하는지 판단도 어려웠다. 새빨갛게 변한 배추에 놀란 다른 참여자가 “그렇게 하면 엄청 짜다”고 말리기도 했다. 그렇게 주변 참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빨갛게 속을 채운 김치는 포장 용기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단순하지만 고된 작업이었다. 그만큼 보람은 컸다.

기자가 만든 생애 첫 겉절이. 사진=이예솔 기자

달라진 김장의 의미

모든 세대가 김장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김치를 즐기지 않아도 가족·지인과 김치를 나누거나 문화 체험, 교육 등을 이유로 김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는 줄였다. 동원F&B와 같은 김장투어, 김장 밀키트 등으로 김장을 비교적 편하게 하고 싶은 김장족이다.

이날 이십년지기 친구와 함께 김장 행사에 참여한 김정은(39)씨는 “김장을 처음 해봤다”며 “항상 사 먹기만 했는데, 직접 눈으로 배추를 보고 체험할 수 있었어 좋았다”고 말했다.

권은주(53), 현진(51), 영란(49) 자매도 김장 투어를 이유로 이날 오랜만에 모였다. 서로 얼굴을 보며 김장을 하면서 그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며느리에게 김치를 선물하고 싶어 김장 행사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배우자와 김장 행사를 찾은 이모(61)씨는 “김장은 가족 화합의 의미가 있다. 예전에는 부모님과 함께했는데, 연세가 드셔서 지금은 각자 저희끼리 만든다”며 “다음에 또 올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에서 온 이미경(57)씨는 올해로 6년째 김장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어릴 적 고향에서 김장 100포기씩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씨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라도 김장 문화가 지켜지길 바란다. 더 어린 세대들도 참여했으면 좋겠다”며 “추억으로 먹고사는데, 추억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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