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글돈글]'30년 디플레' 맞선 日기업 꼼수 백태

이지은 2023. 12. 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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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기업, 양 줄이며 가격 억제
종류 늘려 가격 인하 요구 눌러
지역별 가격 차등으로 수익성 개선

“정직한 경영 방식이 아니다. 가격을 유지하며 양을 줄여 파는 건 자율이지만,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지난달 2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일갈에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든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재고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슈링크를 레이션은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나 양을 줄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소비자의 비난을 피하면서도 가격을 올리는 일종의 '꼼수'지요.

유통기업들의 이런 꼼수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웃 나라 일본도 비슷한 문제로 최근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슈링크플레이션을 지적하는 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30년간 디플레이션에 빠진 일본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본 기업들의 꼼수는 급이 다른 상황인데요. 오늘은 일본 기업들이 오랜 디플레이션에 맞서 어떤 전략들을 취해 해왔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이미지제공=블룸버그]

日 기업, 디플레에 가격 못 올려…양 줄이고 비용 절감

일본 식품업계는 30년간 물가와 임금이 30년간 제자리를 지속하자 가격 인상보다는 제품 크기를 줄이는 수법을 활용해왔습니다.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은 늘지 않고,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기에는 소비자의 시선이 의식되니 일종의 속임수를 꾀한 것입니다.

일본의 제과 회사 가루비는 지난해부터 자사 제품의 무게를 10% 줄이기 시작했으며 제과제빵 회사인 야마자키 제빵은 크림빵 제품인 '우스카와빵'의 내용물을 5개에서 4개로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SNS상에는 원성이 빗발쳤습니다. 특히 야마자키 제빵에 실망감을 토로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우스카와빵은 2001년 출시 아래로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아온 이른바 '국민빵'이었다는 점에서 국민적 실망감이 표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야마자키제빵의 우스카와 크림빵. 야마자키제빵은 지난해부터 한 봉지당 들어있는 빵 개수를 기존 5개에서 4개로 줄여 판매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야마자키제빵 홈페이지]

이렇게 대대적으로 공표를 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소리소문없이 제품 무게를 줄이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추 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소비자에게 알리고 크기를 줄였으면 좋았을 텐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상황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난 2018년 일본 소비자 청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82%는 3년 사이 제품의 양 또는 무게가 줄어든 것을 체감했다고 답했습니다. 제품의 양이 줄어서 다른 브랜드 상품을 이용하거나 구매를 중단했다고 답한 소비자들도 전체의 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SNS상에도 최근 '편의점 도시락의 양이 줄고 있다'든지 '봉지 과자의 내용물이 줄어든 것 같다' 등 슈링크플레이션을 의심하는 네티즌들의 글들이 잇달아 게시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오랜 디플레이션이 기업들이 속임수를 꾀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기업들이 소비자들을 의식해 가격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매출에서 순이윤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마크업' 비율이 20년간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원가가 오르는 만큼 다른 곳에서 비용을 절감해 기업들이 최대한 제품의 가격 상승을 억제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일본 사회가 가격 인상을 워낙 꺼리는 분위기다 보니 기업들은 일정 수준 이상 비용을 절감하기 어려워지면 제품의 양을 줄이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품군 늘리고 지역별 가격 차등제…가격 인하 요구 방어

그렇지만 일본 기업들이 슈링크플레이션과 같은 속임수로만 난관을 헤쳐 나간 것은 아닙니다. 일본 기업들은 오랜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의 가격 인하 요구를 방어해야 하는 과제도 직면했습니다. 이에 다양한 제품군 출시하는 기업들이 나타났습니다.

일본 킷캣 [이미지출처=CNN]

예를 들어, 네슬레사의 초콜릿 제품인 '킷캣'은 글로벌 브랜드 상품이지만 유독 일본에서만 다양한 종류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킷캣이 처음 출시된 영국에서는 10개의 맛만 판매되는 데 반해, 일본에서는 말차 맛, 일본주 맛 등 여태까지 무려 450개의 맛이 출시됐다고 합니다.

제품 다각화를 통해 수요를 늘리려는 전략으로 분석됩니다. 와세다대학교의 아키조 교수는 여러 종류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일본 기업들만의 생존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경기침체 시기 소비자들이 가격 인하 요구를 막고 지속적인 제품의 소비를 유도하도록 기업들이 택한 전략이라는 것이죠.

최근에는 지역별로 제품의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전략을 택하는 기업도 늘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물건을 단 하나의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이른바 '일물일가의 법칙'이 존재하는데요. 기업들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그간 시장에서 통용되던 원칙을 깨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외식업체 스카이락 홀딩스는 지난해 자사 패밀리 레스토랑 가스토에 지역별 차등 가격제를 도입했습니다. 가스토는 일본 전 지역을 핵심도시, 도시부, 지방도시, 규슈·야마구치현 등 4개의 권역으로 나눠 제품 가격에 차별을 뒀습니다. 도시권에서 먼 지역일수록 가격 인상에 나서는 메뉴 수와 가격 인상 폭을 줄였습니다.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 가스토 [이미지출처=스카이락 홈페이지]

일본의 맥도날드는 지난 7월부터 임대료 부담이 큰 도쿄와 나고야, 오사카 3개 도시권의 184개 점포에 한해 새로운 가격제를 도입했습니다. 빅맥의 경우 일반 점포에서는 450엔에 판매를 하지만 준도심과 도심 점포는 각각 470엔과 500엔까지 가격을 인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격 인상제를 도입한 점포는 일본 내 전체 맥도날드 점포의 6%에 달합니다.

이처럼 일본의 기업들은 저성장, 저임금의 디플레이션에 맞서 다양한 전략들을 구사해왔습니다. 현재 한국은 일본과 달리 물가는 오르는데 경제는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위기에 직면해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가격 인하 요구를 방어하는 동시에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국의 기업들이 취해야 할 전략의 본질은 같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기업들이 상품군의 다양화 또는 지역별 가격 차등화 등의 다양한 방안을 고안해냈듯, 한국의 기업들도 속임수가 아닌 획기적인 전략을 찾아내길 기대해 봅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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