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기업의 놀이터’ 언제까지…삼성·LG도 뛰어드는 게이밍 기어 시장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11. 3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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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6일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가 열린 부산 벡스코. 곡선으로 휘어진 모니터가 가득 찬 삼성전자 부스가 눈에 띈다. 커다란 모니터에 게임 캐릭터가 선명한 모습으로 움직이자 “우와”라는 소리와 함께 감탄이 쏟아진다. 일부 체험자는 모니터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직원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언뜻 보면 게임사가 마련한 행사장으로 보일 정도다. 삼성전자가 만든 행사장이지만 인기는 대형 게임사 행사장 못지않다. 부스 앞은 게임을 체험하려는 인원으로 북적거린다. 모니터를 살펴보러 온 30대 직장인 A씨는 “집에 게임용 모니터를 장만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알아보던 차에 행사장에 왔다.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뛰어난 성능의 모니터를 사용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일부 게임 마니아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게이밍 기어(장비)’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게이밍 기어는 말 그대로 게임을 즐기는 데 필요한 장비를 뜻한다. 게임용 모니터, 마우스, 의자, 헤드셋 등이 대표적이다.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높은 수준의 그래픽이 들어간 게임이 대거 쏟아지며 고성능 게임용 기기를 찾는 수요가 급등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퓨처소스는 게이밍 기어 시장 규모가 2024년 60억달러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성장에 힘입어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까지 적극 뛰어드는 중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에서 오디세이 모니터 체험 공간을 열고 대대적으로 게이밍 모니터 제품을 홍보했다(위). LG전자는 게이밍 특화 브랜드 ‘울트라기어’를 선보이며 게이밍 기기 시장에 적극 뛰어든다(아래). (삼성전자, LG전자 제공)
삼성·LG 각축전 게이밍 모니터

OLED 수요 해결해줄 ‘구세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게이밍 모니터 시장에 공을 들인다. 게이밍 모니터는 게임을 즐기는 데 최적화된 크기와 디스플레이 성능을 갖춘 모니터를 뜻한다. 높은 사양의 게임을 끊김 현상 없이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TV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요구한다.

삼성전자는 게이밍 브랜드 ‘오디세이’ 라인업을 내세운다. ▲오디세이 네오 G9 ▲오디세이 OLED G9 ▲오디세이 아크 2세대 등이 주력 상품이다. 모니터 화면이 휘어져 게임 이용자의 ‘몰입감’을 높인 게 특징이다. 오디세이 모니터 시리즈는 e스포츠 최고의 스타 T1 소속의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애용하는 제품으로 알려지며 판매량이 급등하기도 했다.

LG전자는 게임에 특화한 ‘LG 울트라기어’ 브랜드로 모니터부터 노트북, 스피커 등 주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e스포츠팀과 협력해 전 세계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에 나섰다. T1의 라이벌이자, 국내에서 인기가 상당한 ‘젠지 e스포츠’ 팀에 울트라기어 제품을 후원 중이다. OLED TV 시장에 이어, 게이밍 모니터 시장에서도 프리미엄 이미지를 내세워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두 회사가 게이밍 모니터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진한 TV 수요를 대체할 수 있어서다. 게이밍 모니터는 계절적 성수기와 글로벌 경기 여파를 잘 타지 않는다. 경기와 성수기를 많이 타는 TV와 다르다. 매출이 안정적이다. 또, 게임 이용자 중에는 충성 고객이 많다. 고사양 제품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비교적 낮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성능만 좋다면 게임 이용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실제 게이밍 모니터 선전에 힘입어 두 회사의 올해 OLED 모니터 출하량은 급등했다. IT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전체 OLED 매출은 전년 대비 7% 감소하겠지만, 모니터용 OLED는 매출이 300% 증가할 것이다”라며 “2분기 출하량을 늘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비슷한 점유율을 가져갈 전망이다”라고 분석했다. 트렌드포스가 예측한 올해 전 세계 OLED 모니터 판매량은 50만대, 2024년은 100만대에 달한다.

중견기업 중에서는 ‘앱코’와 ‘제닉스’의 선전이 눈에 띈다. 앱코는 게임용 키보드, 헤드셋, 마우스 등을 제조하는 업체다. 주요 브랜드로는 ‘해커’ ‘콕스’ 등이 있다.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는 ‘키보드’다. 현재 국내 PC방에서 사용하는 키보드 10개 중 9개가 앱코 제품이다. 제닉스는 키보드와 게이밍 가구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다. 게임 이용자의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게이밍용 의자와 책상이 인기 상품이다. 2020년 매출 200억원을 돌파하며 매년 성장 중이다.

외산 놀이터 된 게이밍 기어 시장

모니터·키보드 외에는 ‘전멸’

게이밍 기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에 ‘장밋빛 미래’만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모니터와 키보드 외 다른 분야에서는 국내 기업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 프리미엄 기기 시장은 이미 선발 주자에 시장을 다 뺏겼다. 특히 게이밍 컴퓨터 시장은 압도적인 가성비를 내세우는 중국·대만 업체들에 잠식당했다.

프리미엄 게이밍 헤드셋, 마우스 시장은 스위스 회사 ‘로지텍’과 미국 브랜드 ‘커세어’ ‘레이저’가 점령했다.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력을 토대로 이들 기업은 일찌감치 국내에 진출, 시장을 선점했다. 게임 기기 이용자들은 충성도가 높다. 바꿔 말하면 브랜드를 한번 정하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미 외산 브랜드에 익숙한 고객들은 뒤늦게 나온 국내 기기를 외면했다. 앱코 정도만 PC방 키보드 시장을 뚫어 겨우 안착했다. 다만, 가정용 키보드 시장에서는 국산 최강자라 불리는 앱코도 밀리는 게 현실이다.

게이밍 모니터만큼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불리는 ‘게이밍 컴퓨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마저 밀리는 형국이다. 두 기업은 ‘오디세이 노트북(삼성)’ ‘울트라기어 노트북(LG)’ 등 게임용 PC를 내놓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한참 뒤처져 있다.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에이수스(대만), 레노버(중국), 에이서(대만), 기가바이트(대만), HP(미국) 등의 공세에 밀렸다. 국산 게이밍 PC는 ‘AS 외에는 강점이 없다’는 혹평을 받으며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외산 브랜드 중 에이수스는 게이밍 컴퓨터 매출 확대에 힘입어 2022년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노트북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게임용 기기로 각광받는 UMPC(Ultra Mobile PC) 시장 진출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UMPC는 작은 크기로 편하게 고사양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신형 컴퓨터다. 올해 전 세계 PC 판매량이 7% 감소하는 와중에도, UMPC 판매량은 394% 증가한 신흥 시장이다. 국내 UMPC 시장은 이미 ‘스팀덱’ ‘에이수스로그’ 등 외산 업체의 놀이터가 됐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게임 문화가 발달해 인구 규모 대비 매출이 높은 매력적인 국가로 꼽힌다. HP를 비롯한 외산 게이밍 기기 업체들이 기를 쓰고 한국을 공략하려는 이유다. 국내 업체들도 애국 소비에 기대기보다는 가격, 성능 등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6호 (2023.11.29~2023.12.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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