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우먼 톡]조선 포로를 구한 소현세자빈 강씨의 미소

2023. 11. 2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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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빈 강씨, 혹은 민회빈 강씨가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민회빈 강씨는 강석기의 딸로 17세의 나이에 소현세자와 가례를 치르고 세자빈이 되었다.

그리하여 후금 왕조의 행사에 매번 참여하고 명나라 정벌을 참관해야 했던 소현세자의 생활비 및 노예로 잡힌 조선 백성들의 환속비, 후금의 관리들과 상인들에게 줘야 하는 선물 비용을 충당했던 것은 강씨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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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기억한 그의 공적
억울하게 죽은후 숙종때 신원

소현세자빈 강씨, 혹은 민회빈 강씨가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소현세자는 백성들이 고통받는데도 값비싼 벼루를 탐내다가 아버지 인조에게 맞아 죽은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효종은 나라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론을 주장한 위대한 임금이었다고. 여기에서 민회빈 강씨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연구를 통해 억울하게 죽고 슬프게 잊혔던 민회빈 강씨의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었다.

민회빈 강씨는 강석기의 딸로 17세의 나이에 소현세자와 가례를 치르고 세자빈이 되었다. 나라 안의 여성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가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병자호란이 벌어지고 조선은 후금에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죽고 포로로 끌려갔다. 강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세자빈이었지만 후금은 소현세자를 인질로 데려갔고 강씨도 함께 후금의 수도인 심양에 갔다.

왕족이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나았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괴로웠을 것이다. 노예가 되어 끌려가는 사람들은 본디 조선의 백성들이었고, 그들의 슬픔과 분노는 오롯이 왕족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 외에도 후금의 장수는 세자빈에게 가마에서 나와 말을 타라고 하거나, 자신에게 직접 인사를 올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역시나 살아남는 것이었다. 후금도 조선도 충분한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소현세자에 비해 강씨의 활동은 자세히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소현세자가 머물던 심양관소에는 시장처럼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고 했다. 조선의 특산품을 팔아 자금을 마련했고, 노예가 된 조선 사람들 수백 명을 사들여 농사를 짓게 했다. 그리하여 후금 왕조의 행사에 매번 참여하고 명나라 정벌을 참관해야 했던 소현세자의 생활비 및 노예로 잡힌 조선 백성들의 환속비, 후금의 관리들과 상인들에게 줘야 하는 선물 비용을 충당했던 것은 강씨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사실 양반 여성들이 농장을 관리하고 일꾼들을 부리며 가계를 전담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고, 왕실의 안살림을 주관하는 것이 중전, 그리고 세자빈이었다. 그러나 외국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한 것은 분명한 강씨의 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노고가 보답받는 날은 오지 않았다.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남편 소현세자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강씨에게는 인조가 총애하던 소용 조씨를 저주했다는 혐의가 쓰여졌고, 마침내는 인조를 독살하려 했다는 죄까지 덧씌워졌다. 신하들마저 터무니없는 죄명이라고 여겨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인조는 강씨에게 사약을 내리고 그의 친정 가족들마저 모두 죽였고 강씨의 어린 아들들을 제주도로 귀양보냈다.

그러나 강씨가 궁궐에서 나와 검은 가마를 타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날, 수많은 백성이 모여들어 슬퍼했다. 왕이 역적으로 낙인찍었다 해도 머나먼 외지로 끌려가 고초를 겪고, 그러면서도 백성들을 구해낸 세자빈의 일을 사람들은 기억했으므로. 인조, 그리고 다음의 왕인 효종은 강씨를 역강(역적 강씨)이라 불렀지만 백성들은 강씨를 기억하고 안타깝게 여겼다.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강씨는 신원이 되어 민회빈으로 봉해지고 소현세자의 곁에 위패가 모셔지게 된다. 비록 모함을 받아 몸은 슬픔 속에 죽었다 해도 그 혼이 남아있다면 지금 자신이 구해냈던 수많은 백성의 후손을 바라보며 웃고 있지 않을까.

이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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