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 이 여성에 열광했다

양형석 2023. 11. 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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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러셀 크로우-제니퍼 코넬리 주연의 <뷰티풀 마인드>

[양형석 기자]

배우 임지연은 지난 2014년 상업영화 데뷔작이었던 <인간중독>을 통해 대종상과 부일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의 신인상을 휩쓸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임지연은 이후 영화 <간신>과 <타짜: 원 아이드 잭>, 드라마 <상류사회> <불어라 미풍아> <장미맨션> 등에 출연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데뷔 당시에 받았던 엄청난 기대치에 비하면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되는 스타로 성장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임지연은 작년 12월과 올해 3월에 걸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 역을 맡아 데뷔 후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다. 임지연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폭력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희대의 악녀' 박연진을 완벽하게 표현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평과 미움을 한 몸에 받았고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여자조연상을 수상했다. 박연진은 차기작 <마당이 있는 집>에서도 추상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배우들 중에는 임지연처럼 데뷔 당시 크게 주목 받았다가 이른 슬럼프에 빠지는 듯 하다가 다시 대중들에게 재조명을 받는 배우들이 적지 않다. 할리우드에서는 임지연과 비슷한 케이스의 배우가 있다. 1980년대 후반 최고의 유망주로 주목 받은 후 1990년대 슬럼프에 빠졌다가 2001년에 개봉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화려하게 재기한 제니퍼 코넬리가 그 주인공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수학이나 경제학을 잘 모르는 관객도 충분히 재미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 CJ ENM
 
서른 넘어 '연기'로 재조명 받은 여성배우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부터 모델 및 아역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코넬리는 1984년 만13세의 어린 나이에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영화 속에서 엘리자베스 맥거번이 맡은 데보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코넬리는 창고에서 발레를 하는 장면을 통해 주인공 누들스(스콧 타일러 분)는 물론이고 관객들까지 사로 잡으며 대형신인의 등장을 알렸다.

하지만 코넬리는 한창 전성기를 누려야 할 20대 시절에 출연하는 영화마다 번번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기억하는 일부 관객들은 "그저 예쁘기만 할 뿐, 연기는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고 혹평했다. 분명한 사실은 코넬리의 명성이 10대 시절의 높았던 기대치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2000년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레퀴엠>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코넬리는 2001년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부활을 알렸다. 등장할 때만 해도 주인공의 아리따운 여자친구 역할에 그치는 듯 했던 코넬리는 결혼 후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남편과 함께 살며 고뇌하는 아내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다. 코넬리는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아카데미와 골든골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확실하게 도약했다.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길었던 슬럼프를 날린 코넬리는 2003년 이안 감독의 <헐크>, 2006년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출연했고 2008년에는 SF 액션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키아누 리브스와 연기호흡을 맞췄다. 코넬리는 2014년 <레퀴엠>의 애러노프스키 감독, <뷰티풀 마인드>의 러셀 크로우와 재회한 <노아>에서 헌신적인 노아의 아내이자 일라(엠마 왓슨 분)의 다정한 어머니 나메를 연기해 또 한 번 호평을 받았다.

남편 폴 베타니가 MCU에서 토니 스타크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의 목소리 연기를 했던 것처럼 코넬리 역시 2017년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의 수트에 내장된 AI 캐런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캐런은 영화 속에서 피터 파커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코넬리는 작년 36년 만에 개봉한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에서 히로인 페니 벤저민 역으로 출연해 14억9300만 달러 흥행에 기여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1년 만에 검투사에서 조현병 수학자로 변신
 
 러셀 크로우(왼쪽)와 제니퍼 코넬리는 <뷰티풀 마인드>에서 나란히 눈부신 열연을 펼치며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 CJ ENM
 
<분노의 역류>와 <파 앤드 어웨이> <랜섬> <그린치> 등을 연출했던 론 하워드 감독은 특정 장르나 자신만의 색깔에 빠져 있지 않고 관객들이 원하는 대중적인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런 하워드 감독이 자신의 역량을 모두 갈아 넣어 만든 영화가 바로 <뷰티풀 마인드>였다. 그 결과, 하워드 감독은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며 감독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아카데미 수상작이라고 해서 <뷰티풀 마인드>가 상업적으로 재미가 떨어질 거라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해다. 중반까지 첩보스릴러 같은 긴장감이 조성되다가 서서히 드러나는 반전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뷰티풀 마인드>는 다시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세계적으로 3억1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뷰티풀 마인드>는 국내에서도 서울 관객 58만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배우에게 갑작스런 변신만큼 위험한 모험도 많지 않다. 배우들은 그들의 대표작을 통해 이미 그들에 대한 이미지가 관객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러셀 크로우 역시 하지만 2000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레디에이터>에서 연기했던 막시무스 이미지가 매우 강했다. 하지만 크로우는 2001년 <뷰티풀 마인드>에서 정신분열증에 시달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 역을 맡아 <글레디에이터>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로마제국의 용감한 검투사에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수학자로의 변신에 관객들도 적지 않은 혼란을 느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크로우는 천재성과 광기 사이를 오가는 섬세한 내면연기를 통해 존 내시의 고뇌를 잘 표현하며 관객들을 사로 잡았다. 크로우는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영국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미배우조합상,코리틱스 초이스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로 자리 잡았다.

<뷰티풀 마인드>는 199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조현병을 앓았던 천재수학자 고 조 내시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거나 원작이 있는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뷰티풀 마인드> 역시 실제와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다. 특히 헌신적인 아내로 나오는 앨리샤는 현실에서 1963년 내시와 한 차례 이혼했다가 2001년 재혼한 바 있다. 많은 관객들을 울렸던 감동적인 노벨상 시상식 장면 역시 영화를 위한 허구였다.

쟁쟁한 배우들이 연기한 상상 속 인물들
 
 조 내시의 상상 속 인물 윌리엄 파처는 내시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 CJ ENM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정신분열증을 앓는 조 내시가 환상 속에서 여러 캐릭터들을 만들었는데 영화에서는 실제 배우들이 이 가상의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미국 정부의 비밀첩보요원으로 내시에게 암호해독 임무를 맡기는 윌리엄 파처가 대표적이다. 내시는 파처가 주는 임무에 따라 각종 신문, 잡지에 써 있는 글자와 숫자들을 조합해 암호를 해독하고 비밀장소에 갖다 놓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파처는 내시가 상상 속에서 만든 가상인물이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인물 파처 역은 <더 록>과 <트루먼쇼> <설국열차> 등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배우 에드 해리스가 연기했다. 파처는 영화 중반 내시의 주치의 로젠 박사(크리스토퍼 플러머 분)에 의해 가상 인물이라는 사실이 일찌감치 밝혀지지만 영화 후반까지 끈질기게 쫓아 다니며 내시를 괴롭힌다. 하지만 내시는 눈 앞에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파처의 환상을 못 본 척 하고 지나간다.

내시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주변 친구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였다. 그런 내시와 유일하게 어울리며 친하게 지낸 친구가 바로 룸메이트 찰스 허먼이었는데 찰스 역시 사회성이 부족한 내시가 자신감을 올리기 위해 상상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 속에선 러셀 크로우와 결혼한 제니퍼 코넬리가 현실에서는 찰스를 연기한 폴 베타니와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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