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관 옷 화려해 수능 망쳐" 이런 민원까지, 결국 보험 든다

장윤서 2023. 11. 25.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험생들이 16일 전북 전주시 한 고사장에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1교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전북도교육청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부정행위로 적발된 한 수험생의 학부모가 감독관이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가 항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학부모를 고발하기로 했다. 교육계에선 감독관에 대한 보호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24일 서울교사노동조합(서울교사노조)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서울의 한 학교에서 수능이 치러지던 중 한 수험생이 시험 종료 벨이 울리고 마킹을 하려고 하자 감독관 A씨가 이를 적발해 부정행위로 처리했다.

해당 수험생의 학부모는 시험 다음 날인 17일 A씨가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가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학부모는 A씨에게 본인이 변호사라고 밝히면서 “우리 아이의 인생을 망가뜨렸으니 네 인생도 망가뜨려 주겠다”고 말했다. 또 “A교사 파면, A교사의 인권 유린 사례를 제보 바람”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21일에도 시위를 이어갔다. 서울교사노조는 “두려움을 느낀 A씨는 병가를 쓰고 학교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23일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이는 수능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매우 잘못된 이의제기 방법으로 명예훼손, 협박 등의 범죄행위로 보인다”며 “해당 학부모를 즉시 고발 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수능 민원 매년 1000건 이상…“복장, 냄새까지 안내”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민원은 수능이 치러질 때마다 매년 반복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9~2021년 3년간 수능 관련 민원은 5448건으로, 3분의 1이 수능일 전후(수능 전일, 당일, 다음 날)에 발생했다. 이중 수능 감독관의 행동이나 복장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도 상당수다. 감독관 경험이 있는 한 교사는 “같은 자리에 계속 서 있다 보면 몸이 결리는데, 기지개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면 항의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수능이 치러진 이후에도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감독관이 기침하고 종이(매뉴얼)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어 집중이 안 됐다”,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감독관이 쳐다봐서 부담스러웠다” 등의 불만 글이 이어졌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각 시·도교육청은 약 50장 분량의 ‘수능 감독관 유의사항’을 통해 추후 민원 소지가 있는 행동을 금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수차례 감독관 연수와 회의를 열고 소음을 낼 수 있는 구두나 복장, 향수나 진한 화장품을 자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원은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21학년도 수능에선 서울 덕원여고 시험장에서 방송 담당 교사의 실수로 시험 종료종이 2분가량 일찍 울렸는데,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교육 당국과 교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부 수험생이 감독관 매뉴얼의 ‘단정한 옷’이나 ‘발걸음 소리’ 등 주관적인 기준으로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며 “일일이 규정하면 감독관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감독관 개인정보 보호 대책 마련해야”


교원단체들은 수능 감독관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평가원은 현재 수능 감독관 전원을 대상으로 소송비용을 지원하는 단체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수능 시험일 기준 1년 동안 감독관 업무 수행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한 손해 배상금과 소송 시 변호사 비용, 중재 및 조정 비용 등을 보장한다. 하지만 막상 이번 사건처럼 수험생 측이 감독관에 직접 위해를 가하는 경우에는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다는 주장이다.

서울교사노조는 관계자는 “감독관 신분은 비밀에 부쳐야 하는데도 이름표를 달고 있고, 본부실 상황판에 감독관의 이름과 근무교가 쓰여있다. 수험생이 수험생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수능 감독관의 개인정보 노출이나 수험생의 위협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대응 매뉴얼을 제작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첨예한 수능 시험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부정행위 적발을 빌미로 교사를 개인적으로 위협하는 일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당장 내년부터 시험에서 교사 개인의 신상이 노출될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