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달러는 어떻게 미국의 '금융무기'가 됐는가

서믿음 2023. 11.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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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전 세계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저자는 세계가 달러를 '금융 무기'로 휘두르는 미국 경제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미국은 언제부터, 어떻게 세계 경제에 이처럼 큰 영향을 끼치게 됐을까. 저자는 달러 화폐사를 중심으로 미국 경제 패권 형성 과정과 위력을 파헤친다. 세계 기축통화가 기존 영국 파운드에서 달러로 대체된 배경, 미국독립전쟁부터 제2차세계대전이 미친 영향, 미국 금융 개혁을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부터 ‘금융 시스템의 구원자’ J. P. 모건, ‘혁명의 물주’ 모리스 등의 활약을 들여다 본다. 아울러 브레턴우즈 협정, 마셜 플랜, 도스 플랜 등 세계 질서 변화에 영향을 끼친 사건과 현재 달러가 행사하는 힘을 상세히 분석한다.

2018년 12월 1일,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40대 중국인 여성이 체포됐다. 그는 홍콩을 출발해 멕시코행 비행기로 환승하기 위해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의 이름은 멍완저우(孟晩舟),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 기업인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이자 부회장이었다.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딸이기도 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차기 회장으로 유력한 인물이었다. 멍완저우는 2009년까지 캐나다 시민권자였으며 밴쿠버에 두 채의 저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이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은 캐나다 측에 그를 체포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 당시 화웨이는 최첨단 5세대(5G) 모바일 통신장비의 선두 기업이었다. 미국은 사이버 안보를 이유로 자국에 화웨이 제품이 들어오는 것을 제한하고, 영국과 호주 등 동맹국에도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등 화웨이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중(對中)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것이었다. - 「1장 무소불위의 화폐, 달러의 위력」 중에서

1862년 2월 25일, 링컨은 의회를 통과한 법정통화법에 서명했다. 이 법으로 미국에 불환지폐가 도입됐다. 금속화폐와 무관하게 오로지 국가의 권력만을 근거로 한 화폐가 창출되었다. 이는 제2차 미합중국은행 폐쇄 이후 처음으로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화폐이기도 했다. 이 지폐는 뒷면이 녹색이라서 ‘그린백(Greenb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링컨 달러’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린백은 금에 비해 2% 할인된 금액에 거래되었다. 가치는 계속 하락했고, 연말 즈음에는 1달러 금화 대비 1달러 그린백의 가치가 겨우 75센트에 불과했다. 1862년에 북부 물가는 12% 상승했는데 이는 그린백의 영향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린백은 순기능이 더 컸다. 북부연방 정부 재무부는 병사의 월급 지급과 군수품 구입에 그린백을 사용했다. 북부연방 정부의 신용이 올라가 더 좋은 이율로 돈을 빌릴 수도 있게 됐다. 사용 가능한 화폐가 마련되자 은행도 활력을 찾았다. 그린백은 절박한 시기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 「2장 식민지 핍박 속에서 피워낸 미국의 화폐제도」 중에서

전후 유럽 은행가들의 고민은 전 세계에 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 금이 미국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1923년, 미국은 국가 경제 운영에 필요한 수준을 훨씬 초과한 약 45억 달러의 금을 보유했다. 이 중 약 4억 달러를 주화 형태로 유통하고, 나머지는 연준과 재무부 금고에 보관했다. 이런 미국에 비해 유럽, 특히 영국과 독일은 만성적인 금 부족에 시달렸다. 전쟁 전에는 30억 달러 상당의 금을 기초로 운영됐던 유럽의 세 대국에 남겨진 금의 양은 고작 절반 정도였다. 금에 대한 수요가 계속되자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여러 조치를 취했는데 유통 중인 금화를 회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1920년대 중반에 금화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미국뿐이었다. 당시 전 세계 금본위제 체제는 마치 한 플레이어가 거의 모든 칩을 차지한 포커게임과 같았다. 그런 상황에 놓인 게임은 계속되기 어려웠다. - 「8장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달러의 도약」 중에서

금융위기가 한국으로 번지자 미국 재무부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무너져서는 안 될 방화벽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당시 가장 최근에 OECD에 가입했고 세계 경제 순위는 11번째인 국가였다. 한국이 무너지면 자칫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이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재무부 장관 로버트 루빈은 전 세계에서 미국만이 이렇게 크고 중요한 이슈에 대처할 리더십이 있다고 믿었다. 일본이 한국의 긴급 대출 요구를 거절하자, IMF가 관여했다. 그러자 미국 재무부에서는 즉시 립튼을 서울로 보내 협상 과정을 모니터링했다. IMF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 처음에는 약 3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플랜을 생각했다. 주요 조건으로는 긴축정책과 종금사의 폐쇄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는 더 큰 구제금융 패키지를 제공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구제금융은 두 배 가까이 증액됐다. 대신 미국이 조건을 걸었다. 미국은 IMF 협상을 기화로, 1990년 미국과 한국의 금융정책회담이 시작된 이래 한국이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었다. - 「12장 금융국제화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의 외환위기」 중에서

달러의 힘 | 김동기 지음 | 해냄 | 656쪽 | 3만3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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