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㊴] 고향같이 포근한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데스크 2023. 11. 2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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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는 우리의 발길이 드물어 생소하고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비행 노선도 수도 비엔티안 한 곳만 있어 자유롭게 오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번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여유롭게 쉼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꼭 한번 가 볼 만한 곳이 아닌가 한다.

루앙프라방 길거리에 펼쳐진 먹자골목 풍경ⓒ

라오스에 온 지 20여 일이 지났다. 이곳의 대표적인 여행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루앙프라방이라고 거침없이 말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인천에서 직항이 없어 수도인 비엔티안을 거쳐 와야 한다. 비엔티안에서 철도가 개통되어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2019년 코로나 이전에 한번 와 본 적이 있지만, 라오스에 왔으니 다시 발길이 당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1995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란쌍왕국이 건립된 1354년부터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긴 1563년까지 200년 이상 수도로서 왕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곳이다. 메콩강과 칸강과 나지막한 푸씨산으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어 도시 중심지에 들어가면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하다.

루앙프라방 새벽 거리에서 탁발하는 스님들ⓒ

탁발을 준비하는 상인들과 주민들은 새벽 5시쯤이면 어둠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날이 부옇게 밝아오기 시작하면 탁발 물품을 들고 하나둘 중심거리 인도에 자리를 잡는다. 상인들이 놓아둔 나지막한 의자에 앉기도 하지만 불심 깊은 지역 주민들은 길거리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관광객들과는 자세부터 다르고 얼굴에는 온화하고 자비로운 심성이 깃들어 있다. 6시쯤이면 주변에 산재한 사찰에서 스님들이 앞에는 발우를,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거리로 나선다. 맨발이다. 시주하는 사람들은 고슬고슬한 찰밥을 조금씩 떼어 발우에 넣는다. 요즈음에는 어린 스님들을 위한 과자를 담기도 하고 돈도 시주한다. 일부 관광객들은 체험 삼아 하기도 하지만 매일 탁발하는 지역 주민들은 밥을 떼어 손을 얼굴까지 들어 올려 예를 표한 후 발우에 넣는다. 그 모습은 사찰에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머리를 바닥에 대고 절을 올리는 것 못지않게 경건하다. 라오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체험하면서 자라서인지 온순하고 너그럽다. 라오스에서 들을 수 없는 세 가지 소리는 싸움 소리와 자동차 경적과 곡소리라고 한다. 몸에 밴 여유롭고 느긋한 삶의 결과로 보인다. 비록 경제적인 삶은 팍팍해 보일지라도 얼굴과 행동에서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보기기 어렵다.

루앙프라방 앞 메콩강을 오가는 보트ⓒ

카페에서 메콩강을 바라본다. 찜통더위에 강변을 걷다 들어왔건만 후끈거려야 할 체감은 멋진 풍광에 만만해져 견딜 만하다. 날씨가 뜨거워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며 달구어진 속을 식혀도 좋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가슴을 달래는 것도 괜찮다. 강에는 폭이 1미터 정도임에도 길이는 십여 미터도 넘어 보이는 기다란 보트들이 두세 명의 관광객을 태우고 여유롭게 오가기도 하고 커다란 유람선에 몸을 맡긴 채 두둥실 떠 가기도 한다. 강물도 주민을 닮아서인가. 삶의 조급증이 전혀 없이 유유하다 못해 자유롭다.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하염없이 앉아만 있어도 좋다. ‘시간이 멈춘 도시’라는 표현이 그래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모양이다. 느긋하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휴식이고 기쁨이라 더는 바람이 없어진다.

푸씨산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

중심거리는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도 20여 분이면 갈 수 있다. 뚝뚝이를 타고 시가지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좋지만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면 더욱 좋다. 프랑스 식민 시절에 지은 고풍스러운 목조주택이 사람을 유혹한다. 며칠씩 묵으며 많은 사원과 왕궁이나 박물관을 관람하며 조용한 골목길을 걸어 다니면 멀리 유럽 어딘가에 온 느낌일 거다. 2백여 미터 높이의 푸씨산도 10여 분만 오르면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힘들었던 수고스러움이 모두 해소되고도 남는다. 저녁 해가 넘어갈 무렵에는 푸씨산 정상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맑은 날 이곳에서 보는 일몰은 루앙프라방 최고의 경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일과를 마친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며 붉게 물들이는 하늘과 녹음의 그림자로 짙푸르게 변한 강물의 아름다운 풍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발길을 돌린다. 두고 가는 인생이 있는가. 무엇인가 남긴 듯 아쉬움에 뒤를 돌아본다.

란쌍왕국 시절 왕자가 거처하던 곳을 호텔로 개조한 숙소ⓒ

이런 멋진 도시에 눈길을 끄는 한국인이 있다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란쌍왕국 시절의 왕궁이었으며, 지금의 국립박물관인 담장 너머 '로열 피코크 부티크 호텔‘(Royal Peacock Boutique Hotel)에 이틀을 묵었다. 오래된 왕궁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고택이다. 방안에 커튼이 쳐진 침대는 궁전의 임금님이 사용하던 침실 같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야외 탁자에 앉았다. 키가 훤칠하신 분이 다가오더니 수프와 밥과 국수에, 후식으로 과일과 커피까지 모두 드셔보란다. 사장은 20년 전 라오스 여인과 결혼하여 정착한 한국 남자다. 과거 왕자가 거처하던 이곳을 호텔로 개조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직원들과 함께 몸소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모습이 소박하고 인정 많은 아저씨를 보는 것 같이 푸근하여 친근감이 든다. 이틀 밤을 왕자가 된 것 같은 우아한 분위기에서 루앙프라방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즐겼다.

Big Tree 카페 식당ⓒ

메콩강 변에 'Big Tree’라는 멋진 카페에 들렀다. 메뉴판이 한글이다. 반갑다. 루앙프라방 최고의 일몰 포인트에서 16년째 영업을 하는 분이 한국 여성이라니 자랑스럽다. 양식은 물론 김밥, 라면,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에 소주까지 있어 우리의 입맛을 당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이름에 걸맞게 몇백 년은 됨직한 큰 나무 아래에 있어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문을 활짝 열어 놓아 시원한 바람으로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좋다. 서양인 관광객들이 한쪽에서 식사 후 맥주를 마시며 여유롭게 쉬는 모습이 평화스러워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주인분은 한국대사관 영사협력원과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교민들의 칭송이 자자하단다. 이런 분들이 있어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여 루앙프라방에서의 여행은 더욱 행복하다.

Big Tree 카페에서 쉬고 있는 관광객ⓒ
루앙프라방의 명소인 꽝씨폭포ⓒ

옛 왕국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에서의 2박 3일 여행을 통해 마음의 안식과 여유로움을 만끽하였다. 뚝뚝이를 타고 한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인구 6만의 조그만 도시에서 본 고택의 온유함과 자연의 아름다움도 좋았지만, 너그럽고 순수한 라오스인의 은은한 미소에서 오래된 이웃 같은 친근감을 느꼈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앞으로는 좀 더 느긋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쉽지 않다.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깨달음을 통해 점점 성숙해지는 것인 인생이던가. 쉼이 필요할 때 또다시 방문하고픈 매력적인 도시를 뒤로하고 비엔티안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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