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천사의 섬, 노을 따라 걷다 보니 바닷속으로…‘폰테 델 인피니또’

장정욱 2023. 11. 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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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어촌체험휴양마을 현장 취재
비 내리는 가을 바다로의 휴식 여행
궂은 날씨에 체험 대신 선택한 ‘걷기’
‘무한의 다리’를 지나며 쏟아낸 감탄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 둔장해변에서 바라본 할미도(오른쪽) 모습. 비바람 탓에 파도가 일고 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이번 취재는 출발부터 기대가 컸다. 어촌휴양체험마을 현장체험인 만큼 기사 가치는 물론 취재 재미도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건 욕심이었다. 출발부터 계획은 틀어졌다. 전날 일기예보 때부터 뭔가 ‘찝찝함’이 시작됐다.

해양수산부 기자단과 대변인실 직원들을 태운 버스는 9시를 조금 넘겨 정부세종청사를 출발했다. 버스가 움직이자, 유리창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3시간쯤 내달렸다. 전라남도 목포를 지나 신안군으로 접어들었다. 갯벌이 창밖으로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내리는 비와 해무(海霧) 탓에 바깥 풍경을 또렷하게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낮 12시 10분쯤 신안군 명물인 ‘천사(1004) 대교’에 진입했다. 왕복 2차로인 천사 대교는 신안군 앞태읍과 암태면을 잇는 다리다. 2019년 개통했는데 전체 길이는 10.71㎞에 달한다.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천사(1004) 대교 모습. ⓒ신안군청

‘천사 대교’라는 이름은 신안군 별명에서 따왔다. 신안군은 유인도 72개, 무인도 932개 등 총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신안군에 속한 섬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 섬 숫자의 26%에 달한다.

천사 대교를 건너는 동안 빗줄기는 더욱 강해졌다. 3시간 넘는 여정에 살짝 멀미가 생길 무렵 버스는 점심 식사를 위해 신안군 자은면(자은도) 한 마을 식당에 정차했다. 일행은 허기진 배를 채우고 첫 목적지인 신안군 자은면 둔장어촌체험휴양마을로 이동했다.

자은도는 ‘자애롭고 은혜롭다’는 뜻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임무에 실패한 명나라 장수가 처형당할 것이 두려워 이 섬으로 피신했는데, 주민들이 따뜻하게 돌봐줘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둔장마을은 해양수산부와 한국어촌어항공단에서 꼽은 바닷가를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올해는 ‘10월에 가기 좋은 어촌 안심 여행지’로 꼽히기도 했다. 둔장해변은 해수부가 선정 ‘해안누리길 5선’ 중 하나로 아름다운 해변과 멋진 일몰이 유명하다.

전남 신안군 자은면 둔장해변에서 바라본 '무한의 다리' 입구.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가족 단위 ‘갯벌·그물 잡이’ 체험 최적지

강경원(75) 둔장어촌체험마을 운영위원장 설명에 따르면 현재 둔장마을에는 약 37개 농가에 여성 32명, 남성 30명이 거주 중이다. 1948년생인 강 위원장은 이곳에서 나이 서열로는 40위쯤 된다고 하니 어촌마을 고령화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단단한 모래 해변과 마을 주위에 잘 다녀진 둘레길이 아름다운 둔장마을은 백합(조개) 캐기와 후릿그물, 삼강망 체험이 유명하다. 지방문화재로 지목된 독살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백합 캐기는 물이 빠진 갯벌에서 백합과 동죽을 잡는 프로그램이다. 물때만 잘 맞추면 갯벌을 긁을 때마다 한가득 잡힐 만큼 백합과 동죽이 많다. 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수 t의 백합 종자를 뿌려서 키운 덕분이라고 한다.

후릿그물은 바닷물이 들고 빠질 때 사람이 직접 그물을 끌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업방식이다. 긴 그물을 가지고 허리 정도 깊이 물속에 들어가 그물을 끌고 나오면서 잡는다. 둔장마을에서는 보리새우와 꽃게, 숭어 등이 많이 잡힌다.

여행객들이 전남 신안군 자은면 둔장어촌체험마을에서 후릿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 이날 취재진은 비바람과 높은 파도 때문에 그물 체험을 하지는 못 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삼강망 체험은 밀물 때 그물을 쳤다가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들을 잡는 방식이다. 고기가 들어가는 구멍이 세 곳이라 ‘삼강망’이라 부른다.

지방 민속문화재인 독살은 삼강망과 비슷하다. 삼강망이 그물을 활용하는 것과 달리 독살은 자연의 크고 작은 돌로 고기를 가두는 방식이다. 물이 빠진 바다(갯벌)에 돌들을 쌓아 물이 차면 고기를 가둬 잡는다. 삼강망과 함께 아이들에게 조수간만을 이해시키기 좋다.

둔장마을에서는 이 밖에도 소라고동 따기, 망둥어 낚시 등 아이들과 함께 즐길 다양한 체험이 있다. 체험비는 백합 캐기 1인당 1만원, 후릿그물은 1인당 2만원 수준이다.

가족 등 팀으로 하는 섬강망, 독살 체험료는 잡는 물고기양이 달라 계절마다 차이 난다. 보통 인당 3~5만원 정도인데, 잡은 물고기는 모두 가져갈 수 있다. 강 위원장은 “고기 손질이 어려우면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숙소도 있다. 방 2개, 거실 1개짜리 독채가 두 곳인데, 독채 한 곳당 약 60㎡ 크기라 두 가족이 함께 지내도 좋다. 비용은 주말 성수기 기준 1박에 15만원이다. 독채보다 크기가 작은 방갈로는 주말 성수기 10만원으로 최대 수용 인원은 7명이다. 방갈로 숙소는 5개가 마련돼 있다.

아쉽지만 이번 취재에서는 거센 비바람 탓에 둔장마을이 자랑하는 체험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대신 바람이 많아 ‘윈드 비치’라고 불린다는 둔장 해변의 위력(?)은 제대로 느꼈다. 서해에 이렇게 거친 파도라니….

전남 신안군 자은면 둔장어촌체험마을에서 삼강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 이날 취재진은 비바람과 높은 파도 때문에 그물 체험을 하지는 못 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섬과 섬을 이어 한계를 허물다

어촌체험휴양마을 취재에서 ‘체험’은 실패했으니 남은 것은 ‘휴양’이다. 취재진은 휴양법으로 트래킹(Trekking, 도보 여행)을 선택했다. 왕복 3㎞가량 되는 해안누리길을 걷는 일정이다. 비바람 부는 날씨에 하는 트래킹이 과연 휴양일 수 있을까 싶었으나, 판초(poncho) 우의 하나 걸치고 해안을 걸어보니 꽤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출발지에서 400~500m 정도 걸어가니 바다 한가운데로 쭉 뻗은 보행자 전용 다리(데크)가 나왔다. ‘폰테 델 인피니또(Ponte dell Infinito, 무한의 다리)’라 이름 붙은 이 보행로는 둔장해변 명물 중 하나다. 여행객들은 ‘다리에 들어서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기분’이라고 무한의 다리를 설명했다.

무한의 다리는 둔장해변에서 구리도와 할미도라는 작은 섬 두 곳을 연결한다. 폭 2m 다리가 총 1004m 길이로 뻗어 바다 위를 지난다. 2019년 8월 8일 ‘섬의 날’'을 기념해 개통했다. 숫자 8을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를 의미해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디자인은 스위스 출신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우리나라 박은선 조각가가 협업해 만들었다. 다리 입구 안내석에 스페인으로 ‘Ponte dell Infinito’라 새겨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남 신안군 자은면 둔장해변과 할미도, 구리도를 잇는 '무한의 다리'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비바람을 뚫고 건너는 무한의 다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걷는 내내 ‘정말 예쁘다’는 말을 무한 반복했다.

썰물 때는 다리 아래 갯벌이 펼쳐진다고 한다. 취재진이 갔을 때는 밀물 때라 바닷물이 가득했다.

다리를 건너 첫 번째로 만나는 구리도는 아주 작은 무인도였다. 구리도는 옆에서 보면 섬 전체가 거북이를 닮았다. 그래서 거북 구(龜)를 써서 구리도인가 싶었는데, 정확한 사실은 알 길이 없었다. 물이 찼을 때 낚시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리도를 지나 더 걸어가면 할미도를 만나게 된다. 할미도는 구리도와 비교하면 훨씬 큰 섬이다. 물론 그래봤자 30분이면 충분히 돌아볼 정도 크기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할미도는 오른쪽에 파란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있다. ‘사진 명소’라고 표기해 놓은 건 아니지만 누가 봐도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전남 신안군 자은면 할미섬에 위치한 할미바위 관련 전설을 풀어놓은 안내석.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그곳에서는 할미도를 대표하는 ‘할미바위’를 볼 수 있다. 할미바위에 얽힌 전설을 설명하는 비석도 있다. 비석 내용은 금실 좋은 노부부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고, 할머니는 바닷가에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바위가 됐다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내용이다.

할미바위 반대편에는 해발 50m쯤 되는 언덕을 오르는 길이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누런 황톳빛 산길이 나온다. 실제 황토는 아니고 콘크리트에 흙색을 칠한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황톳길(?)을 따라 잠시 언덕을 오르면 섬의 반대편을 내려다볼 수 있다. 시원한 풍경과 파도 소리에 잠시 숨을 고르면서 나무들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그래 이런 게 힐링이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할미도에는 작은 매점도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엔 운영하지 않았지만, 여름철에는 문을 연다고 한다. 매점 앞 자갈밭에는 삼삼오오 앉아서 도시락을 펼치면 좋을 법한 평상(平床) 같은 것도 보였다.

자은도는 9개 해수욕장과 50여 개 해변이 있어 휴양의 섬이라 불린다. 여름에는 백산리 분계해변도 가볼 만한 곳이다. 울창한 해송군락으로 이뤄진 산책로는 여름 뜨거운 햇살을 피해 산림욕을 즐기기 안성맞춤이다.

전남 신안군 자은면 할미섬에 있는 사진 찍기 좋은 장소.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아이들을 위한 볼거리로는 ‘1004 뮤지엄파크’와 ‘신안 자생식물 뮤지엄’이 있다. 내년에는 무한의 다리를 만들었던 마리오 보타와 박은선 조각가가 협업한 ‘인피니또 뮤지엄’이 문을 연다.

이 밖에도 신안 김환기 고택, 팔금도 채일봉 전망대, 암태도 기동삼거리 벽화, 안좌면 퍼플교, 반월마을 당숲 등이 신안군 대표 볼거리다.

이번 신안 자은도 현장 취재는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이었다. 준비했던 체험은 날씨 탓에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가족 단위 여행지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무한의 다리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걷기 좋은 곳이었다. 섬은 아름다웠고, 음식은 ‘역시 남도’였다. 취재가 아닌 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쉬움은 교통편이다. 세종시에서 버스로 3시간 30분을 내달리다 보니 멀미가 났다. 물론 체력 좋은 사람들에겐 상관없을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수도권 사람들에겐 열차를 타고 목포역으로 와서 차량을 대여(렌트)하는 것을 추천한다. 서울 기준 KTX로 2시간 30분 정도면 목포역에 도착한다. 목포역에서 버스를 타도 된다.

전남 신안군 자은면 '무한의 다리'에서 바라본 구리도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전남 신안군 자은면 '무한의 다리'에서 바라본 할미도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
전남 신안군 자은면 할미섬 언덕을 오르는 돌계단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취재진이 전남 신안군 자은면에 위치한 할미도를 둘러보고 '무한의 다리'를 통해 육지로 나가고 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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