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언어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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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공책에 글을 쓰다가 문득 이러한 방식의 읽기가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쓰기의 행위는 시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인식을 우리의 무의식에 심어주는 것 같다.
언어는 이처럼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과 유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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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공책에 글을 쓰다가 문득 이러한 방식의 읽기가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고 쓰듯, 시간이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끝이 있는 곳을 향해 선형적으로 흐른다고 감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글을 쓰는 동안 글자들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선을 그리며 나타난다. 이미 도래한 과거는 하나의 선 위에서 글자의 형태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공백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쓰기의 행위는 시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인식을 우리의 무의식에 심어주는 것 같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공간 속에 사물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왜 과거는 사라진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사실 과거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곳에 닿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시 번역가인 나의 영어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 시인들은 시에서 시제를 잘 구별하지 않더라고요. 한국 시에는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이 뒤섞여 있어요.” 그는 한국어 시들을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시인과 논의해 시제를 새롭게 맞춰야 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한국어의 이러한 불명확함을 모종의 결함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어가 다른 언어들처럼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독립된 개념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훨씬 유기적으로 다루는 언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는 다른 언어권에서보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더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뜻한다. 과거는 현재와 떨어질 수 없고, 현재 역시 미래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한국어 사용자들은 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이처럼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과 유관하다.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곧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시간이란 언제나 어려운 난제처럼 느껴지지만, 언어를 통해서라면 보다 가깝게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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